"부유한 서양 여성들이 먹는 쪽을 선택" 하지 못하는 병이 도는 지금, 우리는 여성과 음식의 관계가 한층 빈곤했던 예전의 전통이 지속되는 것을 본다. 여성은 늘 남성과 다르게 먹어야 했다. 덜 먹고 덜 좋은 것을 먹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연구가 사라 포머로이sarah Pomeroy는 헬레니즘 시대 로마에서는 남자아이에게 16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 (로마제국의 최소 화폐 단위 ― 옮긴이)어치 식사를 주고 여자아이에게는 12세스테르티우스어치 식사를 주었다고 한다. 역사가 존 보스웰John Boswell에 따르면, 중세 프랑스에서도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분배된 곡식 3분의 2가 분배되었다고 한다." - P305
중세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도 저렇다. 이케아 내의 식당처럼 접시에 원하는 음식을 담아주는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는 성차별이 일어난다. 여자도 배고프다. 나도 많이 먹을 수 있다. 덩치 큰 남자인 옆지기의 접시는 수북한데 내 접시는 내용물이 바닥에 깔린다. 좀 더 주세요 말을 해야 한다. 덩치가 작으니까, 무엇보다 '여자'니까, 적게 먹을 거라고 생각하며 음식을 담아주는 그 사람도 역시 여자이다. 여자는 많이 먹으면 살찔 거라고 늘 걱정하는 존재인 것이다. 여자들의 눈에도.
"이러한 양상은 제3세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의 서양 여성도 어머니나 할머니의 식탁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을 대부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이 고기를 먹고서 남긴 기름에 전 빵을 먹고, 이탈리아와 유대인 아내들은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를 먹을 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원치 않을 부위를 먹었다." - P306
너무 익숙해서 진저리쳐지는 음식 희생과 양보. 아 진짜 그러지 말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었던 게 아니라고! 생선 꼬리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배 안 고픈 게 아니라고!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랬다.ㅠㅠ 내 그릇에 맛난 거 한 조각 더 올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아니 부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게' 덩치 큰 옆지기에게 많이 퍼주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먹였다. 두 개 먹고 싶은 거 하나만 먹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자주 식사가 아쉬웠을 테고 매번 짜증이 났을 테다. 그 식탁 내가 차렸으니 짜증은 배가 되었겠지. 일상의 불만은 그렇게 쌓인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복잡하다.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과 먹는 일이 온갖 이유들로 불만스러운 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식구들 각자가 자기 먹을 만큼 밥을 뜨고 찌개를 던다. 누가 더 많이 먹느냐 적게 먹느냐 실랑이하지 않게 라면도 각자의 스타일대로 따로 끓인다. '먹거나 말거나'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런 '당연한' 분배를 기를 쓰고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 나만 그랬다는 것도 억울하다.
오, 찬밥과, 방금 구운 생선과 어제 먹다 남은 생선이 눈앞에 왔다갔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 두기로 한다. 딸에게, 아내에게, 며느리에게, 아니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는 음식 희생, 우리들의 공통 분모. ㅠㅠ 말 안해도 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