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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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버리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사실 이런 내용인 줄 몰랐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울게 되겠구나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든다. 왜 아기(아이)를 '버리는(포기하는)' 사람은 늘 엄마인가? 아이의 입장에서 '버려졌다는' 이유로 부모를 특히 엄마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이 과연 일반적인 감정일까? 사정이나 상황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편을 드는 건 아니다. 나라도 증오할 듯하다. 그런데, 어쨌거나 왜 '버리게' 되었는지 진실을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아닌가? 사람은 이미 일어난 한 가지 일에 수만 가지 이유를 갖다붙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이유가 실제로 그러한지 확인할 길이 없어도 말이다. 어떻게 엄마가 돼서 아이를 버릴 수가 있어? 이 말은 또다른 '모성 신화' 때문은 아닌가? 


프랑스에 처음 와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마르고 키가 크고 말수가 없는 한 사람을 알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한국말을 하지 못하고 자주 표정이 굳은 것처럼 보이던 그. 힘들었겠다, 어릴 때 고생했겠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 복잡하고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을 헤아려보려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해외입양은 난해한 단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곳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고 말도 통하지 않는 어른이 엄마 아빠로 부르라고 하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허구헌날 놀려대는 삶. 소설의 주인공 '나나'는 그런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이다. 슬픔과 분노와 증오가 얼룩진 그 감정의 강도를 알기는 어렵다. 이제 아주 조금 짐작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나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지만 '버려진' 것이 아니고 설령 그것이 도피였다 할지라도 내 선택으로 여기 있으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식구들이 있으므로, 그 짐작은 어렴풋한 것이 될 테지만. 아이 학교에서 동양인이라고 놀림과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애가 닳았지만 절대 학교에 찾아가지 말라는 아이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에서 이런 취급을 당하게 하는지, 선택을 후회하며 자책했다. 외모만 조금 달라도 약자/타자가 되는 학교 안 세상이다. 어른들은 표 내지 않으려고 노력이나 하지. 아이들은, 좋게 말해준다면 솔직하다. 혐오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이 외모라는 조건에는 피부색, 인종과 더불어 순수혈통(?)이냐 아니냐도 들어간다. 엄마나 아빠가 프랑스인이 아니라면, 그 아이도 차별의 세계에 놓인다는 말이다. 백퍼 한국인의 외모를 가진 아이들은 학교 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다. 친해지고 나면 인종 간 심리적 거리가 줄어들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눈에는 늘 이방인. 그러니 오죽하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부모를 증오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어쩌면 그 증오심이 삶의 버팀목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나의 눈으로 천천히 짚어나가는 인물들의 역사는 슬프다. 그들은 착취당했고 당연히 힘도 없었으며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없었다. (이미 나온 '입양'이라는 단어 외에 소설 속의 여러 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들을 여기에 쓰면 그 단어들이 소설의 이미지를 규정지어버릴 것 같다...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글이 될 테지만 감수한다.) 

그래서 나는 '우주'의 존재를, 걱정한다. 그건 엄마가 될 '나나'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과연 둘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엄마조차 커버해 줄 수 없는 삶, 나나는 우주를 지켜보는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 한편으론 복희의 두번째 엄마 연희를 어느 정도 이해할 듯하다. 이방인을 만드는 재주들이 너무도 탁월한 사회를 나라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고난은 개인이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도망가서도 불행해야 하는 것일까?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지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삶은 더 나았을까? 내가 도망친 게 아니라 등을 떠밀린 거라면,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심'은 어디까지가 진심인가. 진심은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상처받기 싫고 불안하기 싫어서 덮어놓고 다른 색으로 칠해놓은 것을 진심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을 진심이라고 말하는 마음. 소설 속 여자들의 마음은 '단순한 진심'이었을까. 그들이 만드는 확대가족과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공감과 연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으나 그 이면에는 질투와 인정욕구, 욕망 등도 동시에 존재한다. 일관성 있게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이방인, 결국 장소가 어디냐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생 최대의 난제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여전히 어렵다. 그 뒤에, 거기에서 멀리 있는, 여자들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 괴로움이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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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2-2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이 소설 가뭇가뭇 하지만 많이 울면서 읽었던 기억은 나네요. 뭐랄까.. 의외의 정말 의외의 소설 이었어요!

난티나무 2021-12-23 15:47   좋아요 2 | URL
되게 어려운 소설이었어요. 죽죽 읽히는데 생각은 막 얽히고… 아, 작가의 말에 나온 책 사야 하는데!!! 아! 또 책 사는 이야기…로 넘어가면 안 되는데!!!!!^^;;;;;;

잠자냥 2021-12-23 15:52   좋아요 2 | URL
쟝쟝 증말 울었쪄? 나도 궁금하네.

라로 2021-12-2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고 싶게 만드시는 난티님!! 더불어 공쟝쟝님!! 하아~~~

난티나무 2021-12-28 04:30   좋아요 0 | URL
전자책 있죠 아마?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