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는 런던에 사는 동안에는 상류층 유행에 따라 서로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 일 년에 절반 이상, 자연의 여신이 사방 구석구석 아름답게 꾸며놓은 시골에서 소박한 행복을 즐길 때 역시, 두 사람은 자주 어울리지 않았다. 남편은 냉정하고 무덤덤한 시선으로 그 아름다운 광경을 그냥 지나쳤고, 시골이 내놓는 오락거리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아침이면 사냥을 했고, 과한 만찬이 끝나면 보통 잠들어버렸다. 이렇게 적절히 휴식을 취한 덕분에, 엄청나게 먹어치운 것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예쁘장한 소작농 여인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발그레하게 빛나는 그들의 혈색을 볼연지도 살려내지 못하는 아내의 안색과 비교했을 때, '대식가'의 마음에 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신이 나서 멋대로 추는 춤은, 병약하고 기력이 없어 늘어져 있는 아내보다 그의 마음에 맞았다. 엘리자의 가녀린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고, 연약한 여인상을 완성하며 긴장을 너무나 풀어버린 나머지, 그녀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인 중에는 그처럼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엘리자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 <메리, 마리아, 마틸다> p.7



"여인 중에는 그처럼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맞닥트린 부분에서 지난달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라 가져와본다. 19세기 여자들의 삶과 병증, 의사들의 해괴망칙한 처방 등등.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 여자들.


길먼은 그(가장 저명한 신경 전문가 위어 미첼 박사)와의 만남에 대비해 자신의 전체 병력에 대해 조리 있게 적어 갔다. 이를테면 그녀는 자신의 병이 집, 남편,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사라졌다가 그들에게로 돌아가자마자 재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미첼 박사는 그녀가 준비해 간 병력 기록을 "자만심"의 증거라며 묵살했다. 그는 환자로부터 정보를 원하지 않았고 "완전한 복종"을 원했다. 길먼은 자신에게 내린 그의 처방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최대한 가정중심적인 삶을 살라.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어라." (단지 아기에게 옷을 입히고 있을 뿐인데도 그 행동으로 내가 몸을 떨며 울게 되는 것을 상기해 보라. 이 관계가 나한테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이 아기를 위해서도 결코 건강한 동반관계가 아니다.) "매 식사 후 한 시간 동안 누워 있어라. 하루에 단 두 시간만 지적인 생활을 해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펜, 붓, 연필을 잡지 마라."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56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56

▷ 길먼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부유한 아내들은 도도새 같은 하나의 비극적 진화의 변종처럼 보였다. 부유한 아내들은 일하지 않았다. 가정에서 수행할 진지하고 생산적인 일이 없었으며, 집 청소, 요리, 자녀 양육처럼 그녀가 하던 일은 가능한 한 많이 가정부에게 넘겨졌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단 하나의 유일한 기능, 즉 섹스로 특화되었다. 따라서 스커트 뒷자락의 부푼 장식, 가짜 앞가슴, 큰 엉덩이, 잘록한 허리 같은 부자연스러운 복장은 자연스러운 여성적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임무는 자신이 결혼한 사업가, 법률가, 혹은 교수의 상속인을 낳는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남편의 수입에 대한 분배를 요구할 수 있었다. 길먼이 우울증에 걸려 아기를 돌보지 않았던 것은 아기가 자신의 경제적 의존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라는 것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성적 타락으로 여겨졌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신랄하게 지적했듯이 "숙녀"는 하나의 다른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중요성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했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 p.160~161



▷ 엘리자는 남편이 왜 집에 붙어 있지 않는지 궁금했다. 질투도 느꼈다. 어째서 남편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것인지, 자신의 곁에 앉아, 손을 꼭 잡아주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주지 않는 것일까? 고귀한 독자 여러분, 필자가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항상 하나의 개념에 하나의 단어를 붙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쉽게 분석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조금도 없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 <메리, 마리아, 마틸다> p.10



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렇게 적확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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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7 0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좋습니다!

난티나무 2021-05-07 14:56   좋아요 0 | URL
다섯바닥 읽고 으쓱으쓱!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07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쪽 읽었는데 난티나무님 엄청 앞서가시네요 ㅎㅎㅎ 다섯바닥이나 읽으셨다니요.
<200년 동안의 거짓말> 160쪽 올려주신 문단 저도 밑줄 그었던 문단이에요. (그녀는) 섹스로 특화되었다 ㅠㅠㅠㅠ

난티나무 2021-05-07 14:58   좋아요 0 | URL
다섯바닥 이라고 쓰면서 좀 웃었어요. 옛날 말인가 하고.ㅎㅎㅎ 쪽, 도 있었네요. 아 진짜 한국말도 줄어....ㅠㅠ

밑줄 문단..하아.. 단발머리님 마음 내 마음...ㅠ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21-05-09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으쓱으쓱ㅋㅋ 읽으면 읽을 수록 더 깊어지는 우리들의 읽기 만세😚

난티나무 2021-05-10 03:57   좋아요 1 | URL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