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준비. 

밥 하기. 

밥 차리기. 

상 차리기. 

아침/점심/저녁 하기. 

끼니를 때우다. 

삼시세끼. 

돌밥돌밥. 


매끼니 식사를 준비하는 행위에 대해 흔히 쓰는 표현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이게 다인가? 이게 거의 다라면 나의 어휘실력을 탓해야 하나, 이 행위의 이름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슬퍼해야 하나. 


식사 준비,라는 네 글자에는 얼마나 수많은 단계적 일들이 포함되는지. "있는 걸로 아무거나 대충 해먹지."라고 음식 준비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지. 그런 말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집에 있는 음식재료들, 냉장고 상황,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음식 만드는 순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미리 해두어야 할 일 체크, 실제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기 전까지, 계속 맴도는 생각들 생각들 생각들. 그런 생각들의 바탕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식구들에게 맛있고(밥을 받아먹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함) 영양도 골고루 갖춘(덜 중요함) 어여쁜 음식(상대적 중요)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내이자 엄마라면 더더욱. 


외국생활이 길어지면서 아니 외국생활 초창기부터, 나는 제대로 된(무엇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그럴 듯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덜' 노력했던 것 같다. 한그릇요리를 선호했고 여러 가지 반찬을 하지도 않았다. 김치는 해먹었으나 없으면 양배추 무쳐먹고 무생채 해먹고 그마저도 없으면 안 먹거나 피클을 먹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그릇요리를 선호한다. 국과 밥과 김치만 놓고 먹는 일도 잦았다. 어쩌다 삘 받아 밑반찬을 서너 가지 만들게 되는 날이면 와 진수성찬이네 라는 말이 내입에서 먼저 나온다. 

그렇게 식사를 하면서 나는 늘 얼마간의 죄책감이랄까, 미안한 감정에 시달렸다. 옆지기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아이들에게. 저녁 밥상이 내 눈에 좀 부실해 보이면 어김없이 어, 뭣 좀 더해야 하나, 반찬이 적은데, 고기를 좀 볶을 걸 그랬나, 이런 생각들이 솟구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옆지기에게 말한다. 고기를 좀 볶을 걸 그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위해서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옆지기는 반찬이 부실하다고 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주는 대로 잘 먹는다고, 가끔 반찬이 여럿인 상을 보고 와 백반집이다 감탄도 하지만, 그런 말들은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괜찮다는 말은, 주는 대로 잘 먹겠다는 말은, 저는 안 하고 먹기만 하겠다는 말 아닌가. 그건 칭찬도 위로도 뭣도 아니다. 도대체 왜 내가 미안해야 하지? 왜 항상 내 입맛보다 다른 식구들의 입맛을 우선으로 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면서 몇년 전에 가장 먼저 버린 습관은 밥을 푸고 주걱에 묻은 밥알들을 입으로 떼어먹는 것이었다. 엄마가 주걱의 밥알을 긁어먹는 것을 나도 아마 어릴 때 자주 봤을 것이다. 주걱에 붙은 밥의 양이 많을 수도 있고 그냥 버리기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다른 식구들은 밥이 붙었는지 말았는지 신경도 안 쓴다. 더 먹을 밥을 마지막으로 담으면서 주걱에 온통 밥을 묻혀놓고도 모른다. 묻히지 않도록 신경쓰고, 모두가 식사를 끝냈는데도 밥이 붙어있으면 그냥 씻어버렸다. 그 주걱에 입을 대고 밥알을 훑을 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그 이상하고 오묘한 감정이 싫었다.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저녁상에 고기 반찬 하나쯤은 있어야지, 고기가 들어간 국이나 찌개는 하나 있어야지. 쌈을 먹는데 고기가 없다고? 그건 쌈밥이 아니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그럼 단백질은 뭘로 보충하냐고. 골고루 먹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이런 말들을 들어오면서 응응 그래 맞아 일주일에 서너번은 그래도 고기를 먹어야지, 애들도 먹여야지, 고기 아니면 뭐 반찬 만들 것도 없어, 하면서 지금껏 그렇게 고기를 요리하고 먹었는데. 음식은 내가 준비하면서 정작 식사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표현되지 않았던 것을 책에서 본다. 


"지난 25년 넘게 이 문제를 고심해 오면서 나는 여성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채식주의자지만 남편은 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어요." ...... 여성들이 자기 남편 앞에 고기를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 것은 사실상 남자가 강해지려면 고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성이 식사의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육식의 성정치를 영속화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에게 육식은 배우자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부정의 또 다른 수단이다. 여성은 자신의 욕구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배우자의 필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라고 생각한다. 많은 여성이 식탁에 앉은 남편에게 고기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마 여성의 사고방식은 이럴 것이다 - "남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게 제가 할 일입니다. 남편은 고기를 원하거든요. 내가 고기로 만든 음식을 차리지 못하면 남편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게 되죠. 남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데, 저는 제 자신의 기본적인 책임도 다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행동이 남편을 소홀히 대하는 것이겠죠." 이런 여성은 자신이 남편을 위해 여성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에 충실하지 못한 여자로 비춰지길 원하지 않는다. " (10주년 기념판 서문, 구판 p.30~31)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한번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로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힘들다. 그래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고기 요리에서 거의 손을 뗐다. 나를 위해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사이 식구들을 위한 고기구입 비율도 줄였다. (차차 식구들도 고기를 끊기를 바라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옆지기가 고기를 사오고 요리를 직접 한다. 잘된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참기 힘들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주방에서의 일이 가족 모두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고 그래서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작은 것부터 하나씩. 


육식에 대해 최근 하는 생각들을 정리해 주는 것이 아래의 구절이다. 이렇게 '먼저' 알고 '먼저' 행동한 사람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은 왜 변하지 않는 건지. 때로는 무시무시하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육식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지배적인 질서에서 어떤 것이 의미 있는 대화이고 비판인지 결정하는 사람들이 갖는 특권의식의 한 예다. 결국 진정한 채식주의자들은 이런 세계관에 갇히게 된다. 채식주의자들은 육식가들을 채식주의자로 전환시키려면 육식이 야기하는 수많은 문제들 - 건강 악화, 동물의 죽음, 생태 파괴 - 을 고발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문제들 중 어느 것도 육식 문화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 (10주년 기념판 서문, 구판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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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셨군요 난티나무님. 님 페이퍼 보니 얼른 읽고 싶어지는^^

난티나무 2021-01-04 23:10   좋아요 1 | URL
네 이제 서문 다 읽고 본문 들어갑니다.^^

다락방 2021-01-0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자기 전에 개정판으로 시작했는데요, 개정판에는 <20주년 기념판 서문>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20주년 기념판 서문이 매끄럽게 읽히질 않았어요. 서문이 두 개나 되어서 ㅋㅋ 아직 서문을 다 못끝냈어요. 난티나무님 서문 만으로도 이렇듯 진중한 페이퍼를 써내시다니, 아, 이 책이 더 기대가 됩니다. 한편,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책읽기를 시작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저는 정말 고기를 너무 사랑하거든요 ㅠㅠ

난티나무 2021-01-05 21:21   좋아요 0 | URL
개정판 번역자와 구판 번역자가 다른 거 맞나요? 이름이 달라요. 이현, 류현.
저는 서문 긴 거 안 좋아하는데, 생각해 보니 서문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문에 쓸데없이 긴 내용을 늘어놓는 걸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ㅎㅎㅎ 암튼 서문만 읽어도 이건 대박책이잖아 느낌 오는 책들이 있죠. 또 한편으로 저는 용두사미적 성격이라서... 이렇게 시작을 해놓고 마무리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요. 여자는 인질이다, 역시 서문 읽고 글 하나 쓰고 다 읽고도 끝인 상태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
오늘 1장 읽고 2장 들어갔는데 오마이갓 어쩌나요 다락방님. 고기를 먹고 안먹고를 일단 떠나서 어떤 한가지 문제를 둘러싼 미처 몰랐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화이팅!

유부만두 2021-01-05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페이퍼는 제 속마음을 대신 적어주신듯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되풀이되는 밥차리기, 먹지 않기로 한 고기를 가족을 먹이느라 손질하고, 식사 후, 때론 식사 중에 다음 끼니를 계획하는 이 챗바퀴에서 과연 내 육신은 뭔가 고민하게 됩니다.

난티나무 2021-01-05 21:34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님 댓글도 제게 와닿아요. 쓰면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시는 분들 많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머리 속에서 365일 펼쳐지는 메뉴의 향연들..ㅠㅠ 아마 꿈에서도 모를 거예요, 그쵸? 그래서 제목에 감정노동 정신노동 이런 단어 썼다가 또 지웠지요.ㅎㅎ 그런데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육체노동과 더불어 감정노동 정신노동 완전 맞아요.ㅠㅠㅠㅠㅠ
식사란 뭔가, 가족이란 뭔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뭔가, 이런 것들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내가 고기를 안 먹는데 고기를 요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너네 먹을 건 너네가 요리해!‘라고 배짱좋게 질러놨는데... 어쨌든 식사 준비는 계속 되는 일이고 아직 달라지지 않은 상태니 여전히 돌밥돌밥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리멸렬한 반복을 즐거운 반복으로 만들고 싶어요. 유부만두님 화이팅!

유부만두 2021-01-05 21:41   좋아요 0 | URL
제가 전에 비슷한 고민의 페이퍼를 쓰면서 ‘시지프스의 밥상’ 이라고 했는데요, 하아... 농이 아니라 진짜로 그래요. ㅠ ㅠ

난티나무 2021-01-05 22:11   좋아요 1 | URL
시지프스... 공감입니다. 나는 뭘까 이런 생각이 들면 차린 밥상에 앉기조차 싫지요.ㅠㅠ 다 꼴보기 싫고.^^;;;;;

수이 2021-01-05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시작하셨네요. 고기 사랑하는 1인이기에 어쩐지 자꾸 읽기를 미루고 싶은데 페이퍼 읽으니 아 미루지 못하겠다 싶어요. 고기 끊으면 진짜 인생이 달라질지...... 저도 곧 시작하겠습니다.

난티나무 2021-01-05 21:40   좋아요 0 | URL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읽으면 생각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고기를 보는 눈이 달라진달까요.ㅠㅠ 이것 또한 어마어마한 문제구나 한숨 푹푹 나오고요. 그알 보는 느낌이 들어 오전에 읽다 덮었어요. 나 무서워서 그알 안 보는데 ㅠㅠ 어쩌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