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심사 중 하나(라고 말하기엔 관심사가 너무 많은데 그래도 하나라고 쓴다, 아니 둘인가?)는 폭 넓게 이야기하자면 건강, 그리고 환경이다. 건강을 위해 먹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건강을 위해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아주 폭넓은 개념들이라 두 분야는 엄청나게 많은 다른 분야들과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내 한몸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해 한집에 사는 식구들과 멀리 있는 가족,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 그 너머 온 지구 사람들이 다 고려 대상이다. 이렇게 적으면 뭐 엄청 대단해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나와 모두를 위해, 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실상 내가 위할 수 있는 건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관심사를 위해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꼬박꼬박 빌려보고 있다. 책 한 권을 찾으려고 들어갔다가 열 권이 넘는 책을 찜콩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작은 노트에 빌려읽을 책 목록을 만들었다. 사서 읽고 싶은 책 말고 일단 전자책으로 읽어보고픈 것들만 추린다. (거기 적히는 책은 늘어만 가고 읽는 속도는 느리다.)
아무튼, 며칠 전에는 여전히 내 머릿속 키워드인 '미니멀'이 눈에 띄었다.(참고로 나는 아직은 미니멀로 살지 못하는 유형이다. '아직은' 아니다. 뭘 못 버려.ㅠㅠ)
[미니멀 키친].
주방이 정리 안 돼 매일 골머리를 앓기에 뻔한 내용일지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가볍게 빌린 책. 그런데 내용은 전혀 가볍지가 않았다. 주방 정리에 대한 이야기는 1도 없다. 이것은 '냉장고' 심층 탐구를 표방하면서 냉장고의 역사를 훑고 전지구적 환경재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환경'책이다.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냉장고라는 가전제품. 집안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기계.
집에는 당연히 냉장고가 있어야 하고, 그건 크면 클수록 좋을 거고, 커다란 냉동고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동안의 나는 생각했었다. 처음 프랑스에 도착해 원룸에서 살 때는 아마 거기 딸린 작은 냉장고를 썼던 듯하다. (몹쓸 기억력) 1년 뒤 큰집으로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샀을 것이다. 그리 크지는 않고 냉동실이 위에, 냉장실이 아래에 있는. 7년쯤 뒤에 큰 냉장고가 필요해져서 하나를 더 샀다. 조금 더 크고 냉동실이 아래에 서랍형으로 들어있는 것. 처음 산 냉장고도 사용했다. 그러니까 냉장고가 두 개. 지금도 집에는 이 냉장고 두 개가 있다. 첫 냉장고는 햇수로 그러니까 얼마냐, 18년?@@ 엄청 오래 되기는 했네. 두번째 냉장고는 11년차이다. 묘하게도 이 두 냉장고는 올해 초부터인가, 함께 급격히 성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온도를 조금 낮추면 냉장실에 얼음이 얼고 온도를 조금 올리면 금방 음식이 상해버리는. 두번째 냉장고는 온집안에 탱크 소리인지 비행기 소리인지를 연상케 하는 소음을 내놓아서 알고도 깜짝 놀라는 일이 잦다. 적다 보니 냉장고라는 기계를 정말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며 썼던 것 같다. 반성 모드.ㅠㅠ
얼마 전까지 올겨울 세일 때는 냉장고를 아무래도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세일기간이 되려면 아직 남았으니 천천히 뭘 살 지 찾아봐야지, 양문형 냉장고는 너무 깊어 쓰기 불편하니 아예 냉장고 따로 냉동고 따로 구입하는 건 어떨까 막 이러면서.
그러던 중에 몸이 아팠고 고기를 끊으면서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장보기에도 조금씩 변화가 왔다. 냉동실에 늘 있던 고기가 빠지고 마트의 냉동식품을 사지 않으니 냉동실이 조금씩 비어갔다. 일주일에 한번 '나 빼고 고기데이'에는 옆지기가 그날 고기를 사오거나 전날 미리 사와 다음날 요리해서 먹는다. 때때로 고기데이는 생선데이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냉동실에 쟁여둘 일이 없다.
이렇게 되자 생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냉장고를 큰 걸 살 필요는 없겠네. 냉동고는 더더욱 필요가 없겠어. 지금 두 냉장고는 다 문제가 있으니 바꾸긴 해야 겠지만('꼭 바꾸어야 할까, 계속 쓰는 방법은 없을까?'도 고민 중이다. 하나를 처분하고 하나만 쓰는 것도.) 비슷하거나 좀 작더라도 상관없겠어, 싶은 것이다. 아예 없이 생활하는 건 어떨까, 잠시잠깐 생각만 해봤다. 텃밭을 가꾸어 자급자족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온 습관 탓에 그건 어렵겠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읽게 된 이 책은 냉장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더 굳건히 하는 또다른 기회가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하니 아마 방송을 본 사람도 있겠다. 내용이 막 완전 퍼펙트하게 좋아요!는 아닐지 모르지만, 냉장고를 매개로 우리가 먹는 음식과 환경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세상은 먹을거리로 넘쳐흐른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당장 내 집의 냉장고부터 돌아볼 일이다. (냉장고는 또다른 작은 '환경'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거기에 있다. 음식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도 함께.) 냉장고의 크기에 비례하여 높아지는 사회의 요구잣대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