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가장 깊숙이까지 꺼내 볼 줄 모르는 눈으로는 세계를 응시하는 깊이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무의미한 일상을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데에 미흡했고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직조 능력도 부족했다. 인생의 얕은 경험은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했고, 좁은 시야로는 너른 세상을 생생한 삶의 언어로 압축하지 못했다." 

-이 구절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미흡하고 부족한지도 모른 채 무조건 살았던 날들. 책 끝부분의 부침글에서 구병모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그 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확보하는 데에만 최소 10년이 걸리며 소설 속에 나오는 조카들은 4세와 6세이니 아직 한참 남은 듯싶어 보는 내가 다 까마득해질 무렵, ..." 최소 10년. 나의 10년. 그 10년.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으로 업고 뛰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은 결코 단순하거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육아는 체력 싸움이었다. 그 시기의 내 꿈은 딱 세 시간만 통잠을 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둘째가 깰 때마다 엄마는 동생이 자는 방문이 꼭 닫혔는지 확인하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동생은 출퇴근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라는 문장을 읽으면 음식을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반찬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 구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그 수고로움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반찬을 먹기만 한 사람에게는 그저 힘들다는 뜻의 구절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아주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까. 모든 문장이 그렇다. 한두 문장으로 써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 한 문장 안에 끝도 없는 문장들이 들어서 있는. 


"이 길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청소와 빨래와 밥 준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 그러니 주부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달라. 이틀도 아니고 하루다. 숨통이 트이지 않으면 결과는 비슷하다. 미치거나 사라지거나. 


"3년쯤 지나니 엄마가 별소릴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첫해 동안엔 정말 사소한 것까지 엄마가 시켜야 할 줄 알았다." 

- 집안일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3년. 옆지기와 아이들이 하나같이 서투른 이유는 3년을 매번 숙제처럼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수십 번을 해도 늘 같은 결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일이라 생각하면서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손에 익는 일. 


"매일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줄곧 시집만 읽어댄다고 실력이 늘 리 없었다. 계속 써왔어야 했는데, 쓰지 않으면 늘지 않는 것이 글인데, 알면서도 마음처럼 못 했다. 늦은 줄 알고 출발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데. 공부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고,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 모두가 그 시기에 걸맞은 때에 행하는 것이 보편의 삶인데. 내가 보편의 삶을 살지 못해서 나에게는 늦거나 이른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적인 벽에 맞닿으면 자꾸 잘못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 

- 매일 한 편 필사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닌가. 계속 읽는다는 것도 대단한 것 아닌가. 보편의 삶은 없다고 믿자. 개인의 삶일 뿐이다. 대체로 다 비슷한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거다. 늦었다고 말하면 서글프다. 늦은 때는 없다.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더 믿을 수 없으며, 자연은 매 순간 황폐해지고 있었다. 이런 세계에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어른들의 이기심은 아닐까, 무책임하고 무모한 선택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아이를 낳는 거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작은 세계 하나를 구축하는 일이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지 못한 꽃, 아직 발화하지 못한 꽃, 아직 제대로 맺히지 못한 꽃. 내가 꽃이라면 한 번은 피워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 식구들에게 발목이 잡혀 땅에 묻히기 전에.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식구들과 거리감을 둘 공간이 필요했다." 

- '거리감을 둘 공간', 절실한 공감. 아버지, 좀더 딸을 알아봐줬어야 해요. 뒤에 물러서있지 말고 함께 해야 했어요. 그러나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설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집을 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시인은 누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시인이 아니라 시인의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나를 보며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다음 생의 바람이라면 이번 생에서는 어떻게든 시인이 되어야 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시인이라고. 시심을 품은 자가 시인이니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시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음 생애에 시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된 표현 같았다." 

-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 어릴 적엔 제법 시라고 끄적이곤 했었는데 아주 짧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도 시를 잊었다. 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을 잃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게 만든다. 대학 시절 어떻게 써도 등단을 할 수 없다며 신춘문예 낙방 소식만을 전하던 선배의 소주잔 같은 것. 그런 것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눈을 이제는 좀 찾아봐야 겠네.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나는 현생에도 미래의 생에도 예술가의 애인(여자로서)은 하기 싫다. 이미 알려진 예술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내가 이래저래 아는 예술가들과 그 예술가의 부인들이 정말 끔찍(!)하게 사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허황된 표현'이라는 말만큼이나 그들의 삶은 허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쓴다는 포즈만 취해왔던 것이다. 시와 같은 편이 되거나 시와 같이 어울려야 하는데 나는 늘 속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멀찍이서 노려보기만 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나를 그려 넣고, 나를 새겨야 하는데 그마저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를 쓰지도 못하면서 시 쓰기를 꿈꿨다는 건 시의 그림자에 숨어 내 언어가 사라지는 줄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 그러니까 나는, 인생을 산다는 포즈만 취해온 건 아닌가... 



***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에 다 밑줄 표시를 했다. 위의 구절들은 밑줄 그은 것의 절반 정도. 주로 마음에 와닿거나 깨우침을 주거나 인상깊은 구절들이 밑줄인데, 이 소설에는 자꾸 토를 달고 싶어졌다. 그 또한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와닿았다는 말이겠지. 휘몰아치듯이 읽고 났으니 이제 숨을 좀 고르고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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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0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이설 작가의 책이군요. 그분을 알라딘에서 알던 시절이 벌써 오래 되었네요. 작가가 되어 알라딘에 뜸하신 분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지네요. ^^;

난티나무 2020-11-06 12:31   좋아요 0 | URL
오 몰랐어요! 저도 보고 싶은 닉넴들이 많은뎅. ㅎㅎ 잘 지내고 계시겠죠 모두?

다락방 2020-11-0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작가의 이 책 읽으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위로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티나무님께 제대로 가서 꽂혔네요. 김이설 작가의 위로가 난티나무님께 닿은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0-11-06 12:40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면 위로,보다는 낙담? 좌절? 이랄까 그런 감정이 더 많이 듭니다. 공감하지만 이렇게 쓴 글이 많은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는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짊어져야 하는 돌봄의 무게는 결혼하거나 안 하거나와 상관없다는 현실이 ㅠㅠ 조카들 양육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또 어머니를 돌보게 되겠죠....
왠지 [82년생 김지영]보다 두어 단계 더 나아간 것 같은 느낌? 그러므로 그건 또 의미있는 나아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 소설 읽고 잘 우는 편인데 이 소설엔 눈물이 나지 않더라고요.ㅎㅎㅎ

수이 2020-11-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작품만 읽었었는데 이 책 읽어봐야겠구나 싶어져요.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을지 그 갈피 잘 헤아리면서.

난티나무 2020-11-06 12:44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 좋아요! 한밤중에 잠이 완전 깨버려서 읽고 있던 황정은의 [계속해 보겠습니다]를 마저 읽었는데 좋아요!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아름답네요? 만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