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주로 가족끼리 다녔기에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끌고나가야 하는 여행이었다. 그런 자족적인 여행을 하다가 단체여행의 일원이 되고보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함께 해야하니 늘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기다려줘야 했다. 기다리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누군가에게 안내 받으며 끌려다니다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리끼리였을 때는 겁도 없이 잘 알아서 다니던 길도 누군가의 안내를 받고 단체의 일원이 되다보면 모든 길이 위험하게 여겨지면서 혹여 일행에게서 벗어날까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겁장이가 되는 것이다. 아, 이래서 패키지에 길 든 사람들이 개별여행을 무서워하는구나.
고아에 도착한 날. 숙소에서 쉬고 싶은데 그래도 함께 왔으니 친구들과 어울려야하지 않겠느냐는 토이여사의 권유에 못이겨 마지못해 저녁을 먹으러갔다. 대강 먹지 뭘, 인도에서 뭘 맛있는 걸 찾나, 알아서 먹지 뭘...속으로 투덜거리며 어딘가로 이끌려 들어갔다.
동창들이라지만 아직은 서로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는데 실내에서 울려퍼지는 올드팝송으로 기분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 테이블 바로 건너편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도인 남자가수는 한 곡 부를 때마다 악보를 보며 노래를 선곡하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하나같이 올드팝송이어서 노래를 듣는 우리는, 처음에는 흥얼대다가, 손뼉치다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다가, 나중에는 테이블 옆 빈 공간을 무대로 만들며 이윽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과일킬러여사의 남편이 흥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급기야 다량의 맥주에 흥이 돋은 남편은 Wonderful Tonight이라는 노래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얼떨결에 불려나간 무대에서 몸을 흔들려니,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춤솜씨를 닦아놓는 거였는데...
잘 먹고 잘 놀았다. 카페를 빠져나오는데 토이여사가 내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우리 저 가수한테 팁이라도 줘야되는 거 아닐까?"
"글쎄..."
기분좋게 숙소로 돌아왔는데 남편이 아쉬움을 담아 또 이렇게 말한다.
"아까 그 가수랑 눈을 맞췄는데 아무래도 팁을 주러 가야겠어."
여행지에선 불문율이 하나 있다. 미루지 마라. 사고 싶은 게 눈에 보이면 그 자리에서 사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먹고,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베풀어라.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생일대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물론 갔지요. 남편이 500루피를 그 가수의 손에 쥐어주자 가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매우 고맙소. 나도 매우 고맙소. 카페를 빠져나오며 손을 흔드는 우리에게 그 가수도 진심을 담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시는 못 볼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