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신설학교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새로 생긴 학교라 할 일은 많은데 교사는 몇 명 되지 않았지요.

1인 2역, 때에 따라 1인 3역도 해야 했는데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초짜 교감선생님은 소통불능의 유아독존의 세계를 구가하셨는데요.

넓디 넓은 교무실에서 운동복을 갈아입는 행태는 그나마 귀여웠지요.

원칙을 무시한 소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구부러지지 않는 소신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답니다.

바람 거세진 태풍 속에서 우리는 나날이 마음앓이를 했으나

교감선생님이 계신 곳은 무풍지대였나봅니다.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으신 교감샘은 나날이 재산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졸부의 모습만 아니었어도 대충 눈감고 참으련만

왜 그렇게 하는 짓마다 밉상이었던지요.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소통불능의 교감샘 덕분에 우리 평교사들은 똘똘 뭉치게 되었습니다.

일치단결과 인화단결을 몸소 체험한 우리들은 스스로 놀랐답니다.

교감샘을 쏙 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미워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요.

한편으로는

우리의 인화단결을 위해 살신성인의 태도로 우리의 마음에서 떨어져나간

교감샘께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지요.

 

어떤 젊은 교사가 교감샘 별명을 붙였습니다.

왕. 갈. 비.

왕大

갈수록

비호감

장난꾸러기 애들처럼 키득거렸지만 씁쓸했습니다.

 

몇 년 후

교감샘은 어떤 섬에 교장으로 가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몹쓸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워했던 교감이었지만 마음 한편이 짠했습니다.

고만큼 사시려고 부동산 쌓고 여러 사람 미움사는 일을 하셨던가...

혹여 우리의 미움의 뭉치가 하늘에 전달된 건 아니었을까,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왕갈비 교감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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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0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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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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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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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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