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여행가, 월드뮤직 선곡자, 노래 부르는 이, 목사, 떠돌이, 마중물, 선무당.
임의진을 부르는 단어들이다.
그의 책을 접한 것도, 그가 고른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가 쓴 몇 권의 수필집을 읽었고, 그가 만든 CD를 여럿 구입해서 듣고 또 들었다.
90년대 후반, 처음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의 누리집도 열심히 드나들었다.
찾아보니, 하, 지금도 여전하다. 오늘 알았다.
http://www.sunmoodang.com/ver4/
중고책으로 구입한 그의 시집. 시집을 중고책으로 구입하다니... 몇 푼 아끼겠다고...
죄송한 마음에 시 하나 베낍니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원자 모델을 의심하였다
한번 정해진 궤도만을 돈다는 정설
하지만 궤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일단의 행렬을 그는 목격했지
시베리아 농부들은 평생을 바쳐
대지를 경작하다가 일순간 의심하며
괭이와 삽을 버려둔 채 서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는 병을 앓곤 한단다
그걸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고 한대
이 행렬역학에 동참하고 싶지 아니한가
눈이 내리면 늑대개들은 울기 시작하지
뛰자고 무작정 눈길을 달려가자고
나비를 잡던 아이가 나비가 되어
숲으로 사라져가는 이 비밀
수피의 생애란 신을 향해 걸어가는
신성하고도 일탈된 여행
궤도를 이탈할 줄 하는 목자 알무스타파만이
푸른 목초지로 양떼들을 인도한다네
계획없이 무작정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거북이는 알을 낳고 자기 갈 길을 간다
노랗게 불이 붙은 옥수수 밭에서
새들은 둥지를 틀고 둥지를 또 버리지
버려진 둥지는 그들이 여행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리
발목이 부러지면 그림자도 움직일 수 없다네
손마디의 체온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지금은 헤어져야 할 시간
깊고 쓸쓸한 포옹의 끝엔 뒤돌아서 가자
이이야 이제 기저귀를 벗고
서쪽으로 미지에로 걸어가야 해
길잡이 늑대가 수호해 주리니
엉덩이를 샐쭉 들고 너의 갈 길을 가라
예전 우리 아버지는 술에 취하시면 '산으로 들어갈거야.' 하시곤 했다.
그러나 살아서는 끝내 산으로 들어가시지 못했다.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제는 남편이 '산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심을거야.'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 '나는 세계를 떠돌거야.'
산으로 들어가는 것, 나무를 심는 것, 세계를 떠도는 것....모두 '계획없이 무작정'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