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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서경식의 글을 읽는 건 숨겨놓은 양심을 바깥으로 꺼내는 것 같아서 종종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별로 재밌지도 않다. 그런데도 묘한 매력이 있는데, 그 글을 읽음으로써 양심의 세계에 한발을 들여 놓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생기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있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나 이 분의 또 다른 글인, 음악이나 미술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묘한 반발심도 생긴다. 순도 높은 이 취미는 또 뭐지, 하고.
이 책에서 그 단서를 발견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고 말아...처절할 정도로 고독했다.' 이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는 그게 '여행'이었으니까.
순식간에 콘서트가 끝나고 쌀 쁠레옐을 나오니 밤도 깊은데 추운 포부르 생또노레 거리를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오가고 있었다. 까페의 환한 유리창 너머 담소하는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곳엔 누구 한 사람 내가 아는 이가 없다. 여기는 나의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중학시절부터 뇌리에 각인된 시구가 있다. 스즈끼 키로꾸라는 시인의 <용서해요>라는 시다.
`또다시 音의 세계와 色을 즐기는 곳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텅 빈 지하철을 타고 까르티에 라땡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시구를 자꾸 떠올렸다. 나는 "음(음향)의 세계와 색(색채)을 즐기는 곳"에 있어서는 안된다. 내가 몸을 두어야 할 곳은 예컨대 한국의 감옥이 그렇겠지만 음도 색도 없이 치열한 투쟁만이 있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원래 나는 그런 세계의 인간이고 그런 세계로 돌아가야 할 존재인 것이다.
처절할 정도로 고독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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