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떤 학생의 생활기록부 종합의견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기존 체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친구관계에서 서열의식이 강하여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경청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함. 학교의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서 벌점이 다른 학생들보다 많은 편이었음. 앞으로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를 함양한다면 향후에는 모범적인 생활태도를 가진 학생으로의 변화가 기대됨.

 

 

작년 한 해는 한 명의 아이와 무탈하게 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 해였다.

 

멍은 들되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동급생 괴롭히기.

음료수 마시고 있는 동급생은 이름만 살짝 불려도 알아서 상납.

음악 시간 과제 안 한다고 지휘봉으로 살짝 건드렸더니 교사 폭력이라며 아버지 항의.

구더기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심정으로 참고마는 교사들.

이 새끼 *강전 안 시키냐며 눈 부라리며 담임 말 무시하는 다른 녀석들.

지가 원하는 대안학교 보내버리지 데불고 있냐는 교감승진 앞둔 동료교사.

수업시간 교사와 싸우고 교실 뛰쳐나와 씨근대며 불이라도 지를 것 같은 기세.

과거에는 더 막갔었노라는 말투에서 보이는, 지금은 봐주고 있다는 식의 허세.

5교시 등교해서 배 고파 밥 사 먹고 오겠다며 무단으로 하는 외출.

선배한테 맞았다고 *학폭위 열어달라고 길길이 날뛰다 선배엄마한테 당한 반전의 협박에 굴복.

아픈 추억이 있다며 방과후 청소는 절대로 못하겠다며 겨우겨우 마지못해 하는 청소.

신학급반 배정에서 제일 먼저 고려 대상이 된 녀석.

 

무단결석인 걸 알지만 질병결석으로 서류 만들어 놓는 무한애정의 담임, 나.

벌점으로 따지면 사회봉사감이지만 교묘하게 상점으로 상쇄시켜버리는 무한인내의 담임, 나.

상점 벌어주기 위한 편법과 상점 부풀리기의 묘수에 신기를 부리는 무한신기의 담임, 나.

열 댓번 요구해도 마땅한 부모호출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무한부모대역의 담임, 나.

대안학교 보내면 망가진다는 말에 더 망가진 인간은 만들지 말자는 무한결심의 담임, 나.

수업시간 뛰쳐나와 씨근덕 펄펄 날뛰면 만사 팽개치고 열과 성을 다하는 무한상담의 담임, 나.

 

그래도 이 녀석,

나한테는 공손하게 말하고, 고개 잘 숙이고, 눈빛 맞추고, 휴대폰수거가방 깍듯이 들고 다니고, 무단지각해도 예쁜 미소 날리는 애교도 부리고, 종례시간에 다른 애들 다 떠들어도 내 말에 집중하고 눈 맞추고, 수업시간에 빼내어주는 상담에 잘 따르고, 내가 준 영어자습서와 몽실언니를 깨끗하게 반납하는 등 내게만은 최대한 예의범절을 지키려고 애썼다. 안다, 인마.

 

100점은 아니지만 80점짜리 아들이 되었다고 고마워하는 중국출신의 어머니 문자를 받고 울컥하다가,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렇게 답신을 넣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감사합니다.'

 

담임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강전: 강제전학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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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7 14: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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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7 2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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