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거론한 책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p. 173...한국의 경쟁적인 의료기술 이용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보의 비대칭 즉, 의학적 지식이 환자보다 의사에게 전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진료행위가 병원의 수익을 위해 쓰이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임산부를 위한 초음파 검사가 있다. 2008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임산부들은 병원의 권유로 태아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평균 10회의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초음파 검사가 유산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고지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는 산모들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의사가 권하는 모든 검사를 받다 보면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경우 젊은 나이의 건강한 산모에게 초음파 검사는 권하지 않고 기형아나 유산의 위험이 높은 산모들에 한해 1회 시행한다. 만약 초음파 검사가 비급여 대상이 아니었다면, 또 병원 간의 경쟁적인 상황이 없다면 산모에게 위험성도 고지하지 않은 채 평균 10회에 이르는 초음파 검사를 권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30대 중후반에 임신했던 나 역시 10번 정도 의사가 시키는대로 꼬박꼬박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단 한번도 검사받는 날을 미루거나 거르지 않았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자연분만이 가능했던 내 건강상태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제왕절개분만을 유도했던 의사를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다. 내가 좀 더 현명해졌다고 볼 수도 없다. 작년 12월 지간신경종이라는 간단한 수술을 받을 때도 MRI검사까지 받아가며 130여만 원이라는 비용을 아무런 저항없이 감당했기 때문이다.
'사악하다'라는 단어가 계속 입안에서 맴돈다. 전문적인 의료집단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나 같은 성실한 환자는 결국 이런 시스템의 봉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데 화가 나는 것이다. 노르웨이같은 양식이 통하는 나라를 계속 부러워해야 하는 건지, 다음과 같은 책을 읽고 정신무장을 해야 하는 건지...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