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을 앓고 있는 형을 둘러싼 한 가족의 고단한 여정을 그린 만화책이다. '고단한 여정'이란 표현은 이 책 안쪽 날개에 쓰여 있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고단한 여정'이 얼마나 완곡한 표현인지 금방 알게된다. 날마다 지옥을 넘나드는 생활의 연속이다. 늘 희망을 품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온갖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결국 효과는 없었다.

 

"집이 꼭 서커스 천막 같아. 재주꾼들이 자기들의 레퍼토리를 보이러 오지."

 

여기서 재주꾼이란, 간질을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접근해오는 온갖 사기꾼 같은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의사들, 매크로바이오틱, 침술, 강신술, 수맥관리, 연금술, 정신적 지도자들, 공동체...이 가족이 겪었던 고통들이 그림 한컷 한컷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환상적이고 몽상적인 그림들은 지은이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그림을 인용할 수 없는게 아쉽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착란과 불안, 어둠이 그득한 그림들이다.

 

가슴 속에 눈물을 머금고 숨을 죽여가며 이 만화책을 읽었다. 지은이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프랑스라고 해서 우리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우리라면 이 사기꾼 무리들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의사들, 무당들, 진위를 알 수 없는 스님들, 천주교 혹은 기독교의 맹신도들, 온갖 약장수가 추천하는 이상야릇한 처방전, 이를테면 시체 화장후 뼛가루를 환으로 만들어 명약으로 팔아먹는 일, 온갖 요양시설...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이 만화책에서 어떤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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