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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운명조차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
위지안 지음, 이현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1979년 생. 30세에 드디어 대학교수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람. 2011년 운명.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 책은 그러니까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한 생을 살았던 사람의 마지막을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한 구절 한 구절 온 힘을 바쳐서 기록한 글이라서 페이지마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울컹 눈물을 자아낸다.
이런 부분이 나온다.
161쪽...내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병에 걸리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시기를 가까스로 넘긴 뒤 돌연 삶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푸른사람이었는데 생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웠을까. 삶이 가벼워졌다고, 삶이 가벼워졌다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으니
234쪽...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을 선택하는 최후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그래서 죽은 뒤에도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로 남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고통이 몰려와도, 설령 죽음보다 큰 고통이 나의 목을 조를지라도 결코 스스로 내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 터이다.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이런 글을 남겨 세상을 위로하고 있으니 말이다. 짧은 생이었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지만 밝은 내용도 있고 재밌는 부분도 많다. 이를테면 병원 생활 속에서도 서른다섯 명가량의 환자를 만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리는가?'하는 조사를 해서 통계 작업을 했는데 과연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9쪽...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만나면서 샘플을 분류하고 표본을 만들어 살펴본 결과, 유방암 환자의 성격에 대한 나만의 이론을 얼추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유방암 환자 중에는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유방암 환자 중에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반면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하고, 매사에 통제력을 발휘할 정도로 권력욕이 있으며 성격이 급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많았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안정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여왕처럼 떠받들어져 군림하듯 살아왔다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153쪽...인생이란 늘 이를 악물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보다는 좀 늦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걷는 사람에게 지름길을 열어주는 지도 모른다는 것을
추석 전 날,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이 책을 읽는 맛이 각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