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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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지허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책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이라고 일컬어진다나. 

120쪽의 얇은 책이나 감히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단단한 무게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되지도 않는 한마디로 줄여서 이 책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 깊은 울림, 잔잔한 감동, 알게 모르게 번지는 해학적인 미소 등이라고 꼽아볼 수 있겠다. 

참 묘한 책이다. 지은이는 있지만 누군지 정확히 모른다니, 새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떠오른다. 세상이 이러할 터 굳이 자신을 밝혀야 할 이유도 없을 터, 이 책을 쓰신 스님의 존재여부가 이 책과 참으로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얄팍한 사람은 이 책에 대해서 더 이상 떠들기가 부끄러워진다. 흠, 이 책은 곁에 두고두고 보아야 할 책으로 세월이 흘러 나 자신이 좀 더 영글어지면 그때가서야 몇마디 더 할 수 있지 싶다.   

 

오늘 우리 반 어떤 녀석에게서 들은 항의 한마디로 하루 종일 우울했는데..." 선생님, 제 자리가 너무 더러워요. 청소 당번한테 청소 좀 시키세요. "  녀석에게 욕을 바가지로 퍼붓다가 결국 내 입에서 터져나온 한마디. "왜 교육청에 신고하지 그러냐. 선생이 청소 지도도 제대로 못한다고." (걸핏하면 교육청 운운하는 아이들인지라)  이럴 경우, 학생은 선생보다 불리한 입장이라 입을 다물게되나 선생은 지도를 빙자하여 끝까지 욕바가지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선생이 유리한 입장이라고 자위해야 하는지...슬퍼진다.

이 책에 나오는 용맹정진이라는 단어. 잠을 전혀 자지 않고 수마와 다투는 일주일 동안의 수행을 일컫는다는 데, 자신과의 싸움이 두려울까, 말도 안 통하는 못된 사람들과의 싸움이 두려울까, 우울하게 비교해본다.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에 하루를 흘려버린 오늘 같은 날, 차라리 선방에 앉아서 용맹정진하다가 홀연히 사라져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보석 같은 글 한 편 남길 수 있다면.... 

흠, 그나저나 며칠 동안 이 책을 가슴에 품고 수행삼아 읽었건만 어리석은 어린 중생의 한마디 말씀에 그 모든 마음 공부가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책은 왜 읽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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