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김새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1. 정수기 회사에서 기사가 나왔다. 말은 서비스차 나왔다고하나 7년된 정수기를 새 것으로 교체하라고 은근히 설득하기 위해서 나온 걸로 보인다. 기사가 정수기를 체크하는 동안 그 옆에 서있기도 뭣해 방으로 들어와 인터넷이나 할까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사 왈, 

" 인터넷도 하실 줄 아세요?" 

" 인터넷이 다 뭐예요. 블로그도 운영하는데요..." 

자꾸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걸로 보아 못믿겠다는 표정이다. 믿거나 말거나. 

2. 퇴근 길에는 늘 걷다보니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내 또래의 어떤 아줌마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 매일 보네요. 어디 다니세요?" 

"예, 음....저기 학교에 근무해요." 

"아, 청소하세요?" 

"아니요. 아이들 가르쳐요. 아줌마는 어디 다니셔요?" 

"좋은 일 하시네요. 저는 저쪽에 있는 00아파트에서 청소해요." 

3. 식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6촌 동생 얘기가 나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에 다니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 끝에 형제 중에서 인물이 닮은 사람이 별로 없고 좀 처지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얼마나 못생겼는지 궁금해하는 딸이 한마디 물어온다. 

"엄마 보다?" 

4. 몇 년 전 일이다. 이것도 퇴근 길에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다. 종종 마주치는 한 아주머니(나보다 10년 연상쯤된다)가 뭔가 궁금했는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는 어디 다니시우? 00공단에 다니우?" 

"아니요, 저~기 학교에 다녀요." 

"거기서 뭘하우? (혹시 학교 식당에서 일하우?)" 

"그냥.... 아이들 가르쳐요." 

"그러면 선생이우?" 

"예. 아주머니는 무슨 일 하셔요?" 

"그전에 00공단에 다니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우." 

5. 그간 연락도 뜸하던 대학 동창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얼마전 대학 총동문회에 다녀왔다며 동창들의 소식을 물고왔다. 그중에는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둘이나 있었다. 내 기억에 그들은 인물이 곱고 상냥한 성격으로 여자인 내가 봐도 괜찮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가족에게 그 얘기를 하며 "역시 미인은 박명인가봐."라며 혀를 쯧쯧 찼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딸내미가 한마디 던진다. 

"엄마는 걱정마. 엄만, 불사조야." 

6. 가족이랑 <혹성탈출> 영화를 즐겁게 봤다. 뭔 얘기 끝에 남편이 그런다. 

"당신은 영화에 나오는 침팬지의 (얼굴은 물론) 눈도 닮았네그려. 노랗고 초록빛이 나는 게 똑같아. 흐흐흐흐흐"

7. 이건 푸릇푸릇한 내 20대의 얘기다. 친동생 같은 이종사촌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나, 누나는 말야. 이모와 이모부의 안 좋은 부분만 닮은 것 같애." 

그러고 세월이 흘러 각각 자식을 한 둘씩을 둔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이 이종사촌동생의 처되는 사람, 그러니까 올케가 이런 말은 하는 거다. 

"고모, 00(내 딸아이)는 고모와 고모부의 좋은 점만 닮았어요." 

 

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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