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급식 지도 차례가 돌아왔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반별로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지도하면 된다. 사실은 아이들이 훈련이 잘 돼 있어서 그냥 소란스럽지 않게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되는 일이라서 굳이 지도라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지도에 앞서 미리 먹는 점심밥이 그닥 잘 넘어가지는 않는다. 긴장할 일도 없는 간단한 요식 행위에 불과한 작은 임무지만 그래도 일인지라 입 안으로 넘어가는 점심밥이 약간 까칠거린다.
45명 가량의 학급 10개반을 차례차례 식당안으로 들여보내는데 맨 끝 반이 우리반이다. 그런데 우리반이라서 그런지 보이는 게 다르다. 점심밥을 먹으로 오지 않은 아이들이 보이는 거다. 국어 숙제 가지러 집에 갔던 녀석은 보이는데, 역시나 깜빡 잊어버린 걸 가지러 간 반장 민욱이 안보이고 눈빛이 착한 깡마른 명호 녀석이 또 안 보인다. 급식 도우미인 민지에게 물어보니 몇 명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한다. 이런!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날씨인지라 비도 오고 바람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게 휘몰아치는데도 운동장에는 녀석들이 한가득이다. 야구하는 녀석들 사이사이로 축구를 하고 있는 녀석들이 보인다. 작년 반장이었던 형식이도 눈에 띈다. 소리 질러 아이들을 부른다. "야, 점심 먹고 놀아!" 급식 지도하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소리쳐 불러보기는 처음이다. 왠지 뿌듯하다.
언젠가 교사 신문에서 읽은 귀절이 생각난다. 자식 셋을 낳은 교사가 은사에게 보내는 편지였던가 그에 대한 스승의 답장이었던가. 하여튼 내용은 이랬다. 선생이란 자기 자식을 셋은 낳아봐야만 제대로 된 선생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식이라고는 겨우 하나 밖에 낳지 못한 나로서는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중간고사를 엉망으로 치르고는 "언제나 미안해, 엄마"라는 문자를 보낸 딸아이를 둔 엄마가 되어보니 나 역시 변덕스러운 날씨 만큼이나 어지러웠다. 마음이 어지럽다 보니 평소 안보이던 아이들이 보이는 것이다. 공부 같지 않은 공부에 시달리고, 가차없이 순위가 매겨지는 저 아이들이 새삼 눈에 밟히는 것이다. 내 자식이 하나이기에 망정이지 셋쯤이었다면 나는 분명 단명을 면치 못할게다.
나는 분명 전교조 조합원이다. 그러나 조합원비만 내는 명목상 조합원에 불과하다. 돈만 내고 아무것도 안한다고, 언제였던가는 열혈 당원들한테 제명당할 위기에 처한 적도 있는 불량 조합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리고 불편하고 불쌍하다.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리거나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