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올리버 색스의 회고록인 <온 더 무브>가 인상적이었는데 올해는 정수일의 회고록인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 '위국헌기위지고(爲國獻己爲至高)...나라를 위해 자기를 바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다.' 이 책의 요지를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진심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분의 글을 경건하게 읽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한자였다. 완전 생소하거나 생소해진 한자를 하나 하나 옥편 찾아가며 읽는 맛이 의외로 반갑고 좋았다. 영한사전만큼 손에 감기는 맛은 덜하지만 옥편을 더듬다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종종 떠오르곤 했다. 한글만 사용해선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며 한자를 강조하시던 꼬장꼬장한 아버지. 어쩌다 내가 한자를 종이에 쓰면 '그것도 글씨냐?'하시면서 부수를 따지고 획을 순서에 맞게 다시 써주시던 아버지. 그렇게 적잖이 아버지로부터 한자교육을 받았지만 진심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아서 나의 한자 실력은 실력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 이런저런 추억과 더불어 이 책을 읽는 와중에 '그래도' 한자교육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지게 되었다. 영어공부에 들인 노력의 십분의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 좀 해야되겠구나 하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얼마나 갈 지는 모르지만.
며칠 전 전등사에 갔다가 눈에 들어온 글.
'없을 무'자가 세 번 나오는데 글씨체가 각각이라 신기했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름도 또한 없도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어울릴성 싶은 글이다.
마음이 고달펐던 2022년. 잘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