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초여름.
드디어 나무 세계에 입문.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네에 이런 나무들이 있었다니 놀랍고(동네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올 봄에 처음 만나기도했다) 이제야 이런 꽃들을 볼 수 있게된 내 자신이 놀랍다.
기껏 여기저기서 사진을 베껴서 붙여놨더니 한순간 날아가버린다. 마치 속절없이 떨어지는 이들 나무의 흰 꽃처럼. 여러 색깔의 영산홍 중에 유독 올 봄에는 흰색의 영산홍에 눈이 가더니 내가 만난 이들 나무 역시 꽃이 모두 하얗다. 흠, 영산홍은 흰색이 제일 화려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올 봄에 내가 느낀 가장 확실하고 큰 발견이었다.
출근 길에 혹여 이 나무 이름을 잊지나 않을까 나는 영어 단어 외우듯하면서 하나 하나 확인하며 걸어간다.
이팝나무 - 복도 창 밖으로 하얀 꽃이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동료 교사들이 모두 이 나무의 이름을 궁금해했다. 순간, 나는 정말 자랑스럽게 이 이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산딸나무 - 꽃잎처럼 생긴 하얀 포가 십자형을 이루고있는 인상적인 꽃. 흐흐, 꽃잎이라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번에도 당당하게 "포"라고 말할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읽은 어린이용 식물 이야기 책 덕분이었다.
백당나무 - 5월 신부의 머리에 얹는 화관 같은 꽃. 이 나무는 내가 재작년 무렵 퇴근 길에 만나던 꽃으로 내내 꽃이름을 궁금하게 여겼는데 올 봄 드디어 마음 먹고 도감을 뒤져 보아서 알아낸 이름이다. 나도 참 끈질기게 무딘 인간인가보다. 여때까지 모른 채 시치미떼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름쯤 아무것도 아닌데. 이름 외워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큼 꽃이 예쁘다.
때죽나무 - 겨우 겨우 나무 이름 몇 개 내 머리 속에 입력을 마칠 무렵 고개를 떨군 채 하얀 자태를 드러내 나를 살 떨리게 하던 나무다. 꽃이 모두 땅을 향하고 있으니 "땅바라기"라고나 해야하나. 이따금 학교 생활에 지쳐, 훈장질에 지쳐 땅만 보고 걷는 내 모습 같아 짠하다.
인동- 4~5년을 다니던 길가에 피어있던 꽃인데 올 봄에야 눈에 들어온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지, 내가 관심을 가져주니까 내게로 와서 꽃이 된 건지 하여튼 내 무관심과 무심함이 여지없이 드러나 다시 한 번 살 떨리게 하던 꽃이다. 꽃잎은 일부러 장난 삼아 찢어놓은 모양인데도 우아하다. 가정에 치이고 직장에 치이고 내가 내 자신에게 치여 갈기갈기 찢긴 내 못난 마음처럼 생긴 꽃인데, 이렇게 비유하면 이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나는 절대 우아하지 못하니까.
갈수록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 이름이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다. 얘들아 미안하다. 너희들 대신 나무 이름 외우고 있어서. 그러나 어떡하니. 이게 내 숨통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