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마음(도어)을 열어주고 누군가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대단하지만 엄중한 것임을 보여주는 소설. 사랑이 그렇듯이.
도서관에서 빌려본 후 친구들에게 사줌.
쉽고 재밌게 읽히는 건 작가의 내공 덕분. 영화 <파울라>를 감상하고,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기대하게 만든 책.
경험이 일천하다고 여겨지는 작가의 에세이를 멀리해왔는데, 이 책은 언어에 대한 풍부한 감각이 돋보여 끝까지 잘 읽었다. 다독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우포에 있는 풀과 나무, 바람과 물 그리고 내가
상호시선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닌 세상이 바라보는 나를 느꼈다.
늪을 영영 떠나려던 그날 멀리서 나를 반기며 다가오던 고라니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차 안에서 대강 끼니를 때우고 늪가에서 잠을 청하던 나날
차 옆에 웅크려 자곤 하던 바로 그 녀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나는 항상 크고 너는 늘 작았다.
내가 작아지고 겸손해지면 비로소 네가 보인다. -78쪽
위 글을 읽고 떠오르는 삽화 하나. 내게도 10년 넘게 퇴근길로 애용했던 생태공원이 있지만 고라니를 본 건 딱 한 번. 그것도 멀리서 도망가는 고라니를 찰나에 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생태공원 근처에 사는 어떤 분은 산책 중에 고라니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고라니가 도망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나 자주 드나들었는데도 그런 기회가 없다니 하면서. 문제는 겸손.
3월에는 몇 권의 책으로도 배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