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교만해져서 설치고 다니는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는 친구 엄마의 말씀을 듣고 찔끔했다.  나 역시 '설치고 다니는 인간'이라서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날뛰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책으로나 달래는 수밖에.

 

 

 

 

 

 

 

 

 

 

 

 

 

 

 

 

말랑말랑한 감상적인 문장이 눈 앞에서 스윽스윽 지나간다. 요즈음은 매끄러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얘전같으면 한숨을 섞어가며 숨 죽이며 읽었을 문장들이다. 세월과 더불어 두텁게 겹을 두른 나의 한숨이 아무래도 방어벽을 쌓는 것 같다. 여행 대신 책이라고, 어쨌거나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책으로 달래며 읽는다.

 

 

-200쪽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는 것.

 

200쪽까지 읽어서야 마음에 드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마음으로 읽는 좋은 문장들을 수없이 지나쳐왔을 텐데 이제서야 서서히 마음이 열리는 건 뭐람. 책보다는 내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217

그래, 먹어 보자. 그래야 뭐라도 쓸거리가 생기니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혀 위에 놓인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차마 씹지는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근데 목구멍 안쪽에 깊숙이 걸린 애벌레는 한번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여러분 여행작가는 이런 직업입니다. 한 줄 문장을 쓰기 위해 애벌레도 먹어야 한답니다.

 

tv 여행관련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낯선 이상한 음식 앞에서 움찔 망설이는 장면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런 여행 시켜주면 못 먹을 것도 없겠다.' 라고. 애벌레 먹고 여행작가된다면 그것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장담 못하지만.

 

-253

여행은 생을 잊는 그리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솔비투르 암불란도 Solvitur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을 선언한 디오게네스 역시 여행자의 삶을 살았음에 틀림없고 끊임없이 걸어다녔을 것이다. 여행은 걷고 또 걷고 지치도록 걷는 것, 생을 잊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걷는 것이다.

 

-265

운명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괴롭히는 것, 그게 운명의 운명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두운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갑니다. 무릎을 웅크리고 혼자 있습니다. 어둠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빛을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없는 자는 세상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행은 내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 가진 어둠을 당신과 나누는 일이구요.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습니다. 친구 따윈 필요 없더군요. 책과 음악, 그리고 어둠 한 줌이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나의 어둠을 오롯이 지켜내야겠다.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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