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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플로리스트
조은영 지음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읽게 될 때,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시작했다가 끝내는 뭉클한 감동으로 책을 덮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꼭 그렇다.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로 우뚝 서기 쯤의 이야기인데 가까운 친구가 들려주는 것처럼 자분자분하다. 고생담이라면 고생담일 수 있고, 성공담이라면 성공담일 수도 있는데 다소곳한 꽃처럼 조용조용하고 차분하나 곧은 줄기 같은 힘이 느껴지는 글이다.
신간서적이 아니어서 이미 이 책에 대한 리뷰가 꽤 실려있는 터라 거기에 더 보태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인상적인 구절만 옮기고자 한다.
우리가 작업하는 꽃은 미술관에 놓이는 전시물이 아니기에 항상 다른 공간에, 다른 의미로 작업해야 할 상황에 놓이는데, 적재적소에 꽃을 연출하려면 꽃은 그저 예쁘고 멋있게만 연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플로리스트는 꽃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꽃을 다루는 사람이 꽃만 보는 사람이라면 그 꽃은 그저 꽃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플로리스트는 공간을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271쪽
'공간을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 집을 지을 때 그저 집으로만 그칠 수 없고 주변 환경(공간)과 어울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 말은 건축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그저 수업으로만 그칠 수 없고 교실이라는 공간을 장악해야 하는 교사의 수업장악력에 따라 수업의 질이 결정된다. 글을 쓰는 작가는 종이라는 공간 위에 심혈을 쏟고, 배우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의사는 질병이라는 공간을.......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이 '공간' 을 장악하여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라는 공간을 내가 자유자재로 디자인할 수 있다면 나도 '삶의 전문가'가 되는 걸까...

런던 코벤트가든의 꽃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