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월 남인도 여행을 시작할 때, 얼마 전에 단행된 화폐개혁으로 공항에서 환전하느라 애를 먹었었다. 간디가 그려진 위와 같은 천 루피짜리 지폐는 이미 사용불가 상태였다. 전 인도인이 구권 지폐를 신권 지폐로 바꾸느냐고 난리였는데 그 와중에 인도에 가게 된 것이다. 그랬었는데...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
당했다. 분명 2,000루피짜리 지폐를 내고 1,000 루피짜리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받는 순간에도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을 뿐 깊이 의심하지 않았다. 어디에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1루피는 한화로 약 18원. 18,000원쯤 된다. '어리숙한 외국인'이 바로 나였다.
일주일간의 짧은 단체 패키지 여행. 좋은 호텔에서 양질의 음식을 먹는 여행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닌데 이번 여행은 얼떨결에 그런 호화로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도 여행을. 바깥 세상에 나왔으나 바깥 세상과 단절된 여행이 단체 패키지 여행이 아닌가. 그래 한번쯤 해보자. 좋은 것을 많이 봐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잖은가.
인도였지만 인도가 그리웠다. 마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처럼. 인도에서 이렇게 다녀도 되나? 혼잡한 거리, 시끄러운 경적소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흥정들, 이방인을 향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들, 비루먹은 개들, 집요한 호객꾼, 공기중에 배어있는 향신료 냄새, 사진 찍자고 덤벼드는 사람들, 미소지으며 다가와 이것저것 묻는 사람들, 거리에서 마시는 달짝지근한 짜이 한 잔, 밤거리의 희미한 형광등 가로등, 눈에 보이는 귀여울 정도의 가벼운 사기 등. 이런 것들이 슬슬 그리워졌다. '이번 여행에선 사기 당할 일도 없네.'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바로 그렇게 마음을 풀고 있을 때 아무런 의심없이 저 1,000루피짜리 구권을 받은 것이다. 하, 그러면 그렇지. 역시 인도였다.
그러나 인도만 그렇다고 하면 공평하지 않다. 지난번 런던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거스름돈 1파운드 동전을 1유로 동전으로 받고도 한동안 몰랐으니까. 결론은 '어리숙한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