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0도가 넘는 기온에 내리쬐는 뙤약볕 속을 거니는 건 꼭 건식 사우나탕에 들어간 것과 같다. 공기 자체가 화끈하고 뜨거워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나마 그늘로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럭저럭 참을 만해진다. 습도가 높지 않아 끈적거리지는 않는다. 물론 과도한 수분 섭취로 배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해지면서 쉽게 지치고 만다. 신경은 또 어떤가. 빵빵하게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이 열대의 나라에서 온갖 종교가 태동한 것은 이런 날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숨쉬는 자체가 이미 고행이나 다름없다.

 

이러다가 우기에 접어들면 비가 내려 더위를 식힐 수 있다지만 그건 또 다른 사우나탕으로 바뀔 뿐이다. 습식 사우나탕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행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날씨이다. 그러나 이런 험한 날씨야말로 여행자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단 여행객이 줄어드는 비수기가 되니 여행 경비가 적게 든다. 비싼 호텔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유명 관광지에 인파가 몰리지 않으니 한층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비용 절감을 기회로 열사병을 무릅쓰고 여행하는 자, 그대가 진정 여행자이다.

 

라낙푸르는 우다이푸르에서 약 60km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이나교 사원이다. 우선 사진부터 올리지만 사진이 시원치 않다. 십 년 전에도 왔으니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련만 사진은 별로 찍지 못했다. 십 년 전엔 딸아이가 병이 나서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급하게 보느라고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이번엔 너무 더운데다가 무릎이 나오는 옷을 입으면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급하게 차량으로 뛰어가 옷을 가지러 다니느라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신발을 벗고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의 짧은 보도블럭은 잘 달궈진 후라이팬과 다름 없었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발바닥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날 정도이다.

 

 

 

 

 

 

 

 

 

 

 

 

 

 

 

 

 

 

 

 

 

 

 

 

 

 

 

 

 

 

 

 

 

 

 

 

 

 

 

 

책도 어느 정도 읽을 만해야 집어들듯이 사진도 대상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고 만만해야 찍을 수 있다. 상상 이상의 압도적인 건물이나 자연 경관 앞에서는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는 직감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곳과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곳으로 구별이 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라낙푸르는 쉽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규모면에서나 섬세함에 있어서나 두 손 들고 말았다. 저 엉성하게 찍은 전면 사진이라니. 카메라 기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이미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난 안 돼.

 

저 사원안에는 각각 문양이 다른 1,444개의 대리석기둥이 있다고 한다. 그 숫자가 믿기지 않아 하나하나 세어보고 싶지만 언감생심, 할 일이 아니다. 온갖 화려한 기둥에서 눈을 돌려 고개를 들면 천장의 문양에 연거푸 감탄이 절로 나온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카메라를 든 손이 부끄러워지고 마음이 의기소침해진다. 사진은 무슨...

 

내가 알고 있는 종교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자이나교이다. 불살생을 철저히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혹여 입 속으로 살아있는 날벌레가 들어올세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어다니는 발 밑으로 혹여 개미라도 죽일까싶어 빗자루로 앞 길을 쓸며 다니는 사람들이다. 가죽으로 된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며, 농사를 지으면 살아있는 생물을 해칠 수 있어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신앙심이 아주 깊은 수행자들은 아예 몸에 옷을 걸치지 않는다고 한다. 옷이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그마저 거부하는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도 이 자이나교에서 나왔다고 한다. 자이나교가 주창하는 것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알다', '깨닫다', '살다' 라고 한다. 일단 알아야 하고, 알아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고, 깨달았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실행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겸손하고 실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지은 사원이 바로 라낙푸르이다. 내가 그동안 다녀본 동서양의 어떤 종교의 어떤 사원보다도 화려한 곳이 이곳이다. 여기서 화려함이란 (감히) 영혼이 화려한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영혼은 대리석처럼 맑으면서도 다채롭고 화려할 것 같다. 이 화려한 사원을 내 보잘것 없는 카에라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유이다.

 

 

*딸이 찍은 사진을 첨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