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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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1896년~1948년)이 '1927년 6월 19일 열차를 타고 부산진을 출발하여 1929년 3월 12일 배로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 1년 8개월 23일 동안의 세계일주기'를 담은 책이다. 가히 '조선 여성 첫 세계일주기'라고 명명할 만하다. 이 당시의 '여성'은 지금의 '여성'과 그 위상이 너무나 다르기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면서도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가 여행한 시기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우리 엄마와 이모들 이름에 여자의 책무를 강조하는 바늘 침(針)가 돌림자로 들어가 있을 정도로 이 나라의 여성에게는 가혹하고 공정하지 못한 시대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의 여행은(일생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갔고 세상은 앞서가는 '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일주기를 읽다보면 쿡쿡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때로 표현이 직설적이면서 귀엽기까지 하다.

 

어린 남자아이가 아침저녁을 먹을 때면 테이블 위에 식기를 가져다놓고, 누나들이 설거지하면 행주질을 하고, 추운 아침에도 계단 걸레질을 한다. 남자아이라도 어렸을 때부터 차별 없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당시였다면 이런 모습이 각별하게 보였을 것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며 안된다고 하던 시대였으니까.

 

우피치 미술관에는 그림만 4천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양으로 보든지 질로 보든지 세계 제일 가는 미술관이라 한다. 역대의 걸작이 많은 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은 치마부에의 <마돈나>와 조토의 <마돈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등이다. 과연 그들의 그림은 입으로는 말을 하는 듯하고, 눈으로는 웃는 듯 혹은 우는 듯하며, 살은 뛰는 듯하고, 피가 끓는 듯하였다. 너무 많아서 보고 나니 모두 그것이 그것 같다.......

 

' 그것이 그것 같다.'  나는 이럴 때 전시실 한가운에 서서 고개만 좌우로 돌리고 마는데, 혹시 나혜석도?

 

(런던의)공원은 전부 돈 덩어리다. 도로만 남겨놓고 잔디며 화초를 기르는 규모가 컸다. 하이트 파크는 런던 중앙에서 조그 서북쪽에 있다. 버킹엄 궁전 광장에 연속한 그린 파크와 피카딜리 거리에서부터 반대 방향 겐싱턴 가든으로 이어진다. 자작나무, 떡갈나무, 느티나무 등이 많고, 그 아래는 전부 잔디여서 남녀 청년들이 서로 끼고 드러누운 모습이 마치 누에가 잠자는 것 같다.....

 

'공원은 전부 돈 덩어리'라고. 내 눈엔 런던 전체가 돈 덩어리로 보였는데....

 

 

이 여행기만 보면 그 시대에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의 인생은 남달랐을 터. 분명 이 여행은 그의 삶에서 절정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여행은 아무나 하지 못하니까.

 

 

 

 

*나혜석의 이혼고백서, 검색하면 나오는데, 역시 시대를 많이 앞서갔다.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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