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으로 유럽을 갔었고, 유럽에선 런던이 첫 행선지였으며, 런던의 그 많은 명소 중에서 하필이면 옥스포드에서 보낸 시간이 제일 길었다. 그래봐야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그땐 수많은 명소를 순식간에 점찍고 오는 게 여행방식이었으니 그나마 반나절을 오롯이 보낸 곳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난생 처음 찾아간 옥스포드는 길도 건물도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중세풍의 옛스러움, 가로등에 생화로 장식한 화분의 화려함, 아기자기한 서점 등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그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특히 옥스포드 대학에선 감탄에 더해 이루지 못한, 아니 이룰 수 없는 어떤 상실감 같은 비애감에 젖어 들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 한번 못해보는구나, 하는 비애감이었다. 어렵사리 직장을 잡은 지 몇 년도 되지 않았기에 다른 어떤 걸 시도한다는 자체가 무모함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혹여 기회가 되었다해도 자신감이 있었느냐 하면 그건 별개였지만.

 

그때 이후로 옥스포드는 내게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는 머나먼 당신이었다. 그곳에서 공부는 못할지라도 다만 며칠만이라도 머물다오고 싶은 곳이었다. 살짝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당신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이틀을 할애했다.

 

 

 

 

 

 

 

 

 

 

 

 

 

 

 

 

 

 

딱히 특정한 곳을 가지 않아도 거리거리가 모두 아름다워서 마냥 걸어도 피곤하거나 싫증나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 왔으니 유명한 곳도 가긴 했다. 이를테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식당 같은 곳.

 

 

 

 

 

 

 

 

 

 

 

그리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보들리언 도서관.

 

 

 

그러나 멋진 서가를 자랑하는 도서관 내부는 촬영할 수 없었다. 대신 엽서가 있으니...

 

 

 

 

이틀 동안 크지도 않은 동네를 구석구석 누비다보니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그때도 그랬을까?) 사람들이었다. 대학마다 거리마다 어린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밀어닥치며 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식으로 하면 진로체험에 해당하는 현장학습을 나온 듯했다. 유명 대학을 답사하며 공부의 의욕과 의지를 불태워보라는 저의는 여기도 마찬가지겠지 싶었다. 이들중 과연 몇 명이나 이곳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될 지... 단순히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식당을 구경하겠다고 단체로 밀어닥치지는 않을 터.

 

 

 

에어비앤비에서 찾은 숙소. 저 작은 대문을 열고 건물 옆으로 들어가면 출입문이 나온다. 여느 가정집에 방 하나를 게스트룸으로 빌려주는 곳이다. 주인내외중 안주인은 다소 백인다운 무례함을 내비치지만 아침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다소 내 영어의 유창성이 아쉬웠지만.

 

친구에게 내가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를 험담하는 건 내 입장에서는 하소연이니까 그럴 수 있으나, 그 친구가 면전에서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를 험담하는 건 듣기 싫은 법이다. 이 숙소의 안주인이 트럼프와 김정은을 두고 crazy, crazy 할 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그랬다. 트럼프야 상관없었지만 김정은을 우리 앞에서 비난하는 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침 27일 남북정당회담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23, 24일을 이곳에서 잤다.) 그래서 김정은을 변호하고 싶었으나 영어로 긴 얘기를 하기에는 내 생각도 정리가 덜 된 상태여서 한계가 있었다.

 

'아침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고는 썼으나 사실은 이랬다. 첫날 아침, 치우지 않은 식탁에 앉으니 우리가 주문한 얼그레이차와 주인내외가 평소에 먹는 시리얼류, 먹던 잼, 먹던 버터,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자른 사과와 바나나가 아침 식사로 나왔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가족처럼 스스럼없는 대접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아, 내가 알고 있는 English Breakfast는 이게 아닌데.....그래도 기다리면 구운 토마토, 베이컨, 계란 프라이 정도는 나오겠지. 그러나 그후 주인아저씨가 구웠다는 토스트 한 조각이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은 그래도 좀 나았으니 식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각종 종이와 책자를 정리한 상태였다. 물론 음식은 똑같고.

 

이분들이 올 10월에 우리나라에 온다고 해서 내 연락처를 알려줬다. 이분들이 오면 한끼 정도 대접이야 뭐 어려울까. 함께 여행한 딸아이가 그런다. 이분들 우리나라에 오면 김밥천국으로 데려가라고.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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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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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1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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