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미들코프의 <위대한 대의: 미국 혁명 1763-1789>는 2017년에 한 권으로 나왔다가 절판되었고, 2022년에 <미국인 이야기>로 제목을 바꿔 세 권으로 재간행되었다. 본래 '옥스퍼드 미국사' 가운데 하나로 예정되었지만, 나머지 책이 간행되지 못하면서 결국 이것 하나만 내고 시리즈가 좌초한 모양이다.
구글링해 보니 옥스퍼드 미국사는 무려 1950년대에 처음 구상된 시리즈로, 1961년에 가서야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공동 책임 편집자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저자를 섭외하기 시작했고, 다시 20년이 지난 1982년에 제2권인 <위대한 대의>가 맨 먼저 간행됨으로써 비로소 궤도에 오르기 시작된 장기 계획 출판물이다.
그 간행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어서 전12권 가운데 아홉 권만 간행되었고, 19세기 후반의 재건/도금 시대를 다룬 제7권이 2017년에 나온 이래로 아직까지 속간 소식이 없다니, 완간이 되려면 앞으로도 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와중에 <위대한 대의>처럼 미리 나온 책들은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위대한 대의> 번역본에는 제4권 <자유의 제국>, 제5권 <신의 의지>, 제6권 <자유의 함성>이 근간 예고되었지만, 이미 7년이 지난 지금으로선 결국 출간이 좌절되었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특히 <자유의 함성>은 남북전쟁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저라서 더 아쉬운데, 나귀님은 알라딘에서 중고 원서를 사 두었다.
<위대한 대의>는 부제에 나왔듯이 1763-1789년의 미국 독립 과정을 서술한 책인데, 이 시기에 활동한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나귀님이 각별히 흥미를 느끼는 인물은 최근 두툼한 전기에다 뮤지컬까지 나와서 재발굴되며 주목을 받은 알렉산더 해밀턴, 그리고 책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이다.
제퍼슨이라면 오늘날에는 민주공화당의 설립자로 간주되지만, 이 정당명은 후대의 편의상 구분일 뿐이며, 당대에는 공화당 내 제퍼슨계 정도로 일컬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훗날의 민주당과 유사한 성향을 보인 까닭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제퍼슨을 사실상 자기네 정당의 원조로 공인한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이 '민주당의 아버지'에 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논란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를 독려하면서도 노예제를 부정하지 않은 이중적인 면모이고, 아내의 몸종인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서 사생아까지 낳았다는 사생활 논란인데, 따라서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까지도 평가가 엇갈린다.
그나마 이런 논란을 일축할 만큼 비범한 업적을 숱하게 내놓은 인물이니 역대 대통령 평가 순위에서 비교적 상위권에 위치하는 것이지, 그나마도 없었다면 더욱 박한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 치더라도 순위 밑바닥에 있을 닉슨과 클린턴과 트럼프만큼 최악의 대통령까지는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그나저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기에 상당히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지역 기반이 어마무시했던 생전의 김대중조차도 그런 낯 뜨거운 아첨은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평민당부터의 계보만 따져도 그저 인성 썩은 '의붓아버지'에 불과해 보이는 사람을 왜 그렇게 떠받드는 걸까.
나귀님 입장에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도 생전에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런 두 사람과 비견해도 한참 부족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추대하는 것도 모자라 우상화까지 서슴지 않고 있으니, 누군가의 말마따나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된 것인가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