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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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는 디폴트 값이 1990년생인가. 36세로부터 마우스 휠을 세 번 돌리며 세월을 거스른다. 나이 계산기를 열어 어머니의 나이를 확인한다. 마지막 검색으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건만. 스크롤바를 올릴수록 조바심이 인다. 연 나이 86, 85. 90이란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줄어드는 배터리를 보는 기분이다.

요즘 평균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는데! 지금 나이에 0.8을 곱한 게 진짜 나이라고 보면 돼. 주워들은 풍문에 기대어본다. 당신의 나이를 타임머신에 태워 60대 후반으로 달려간다. 1940년생의 현재 기대수명은? 나를 님으로 칭하고 매번 인사할 뿐 더러 언제든 도와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G에게 묻는다. 최종 예상 수명 93. 암 수술 후 경과도 좋고 고혈압 약만 드시고 그런대로 잘 걸어 다니시니 95세 이상 장수하실 가능성도 충분하단다. 고갱님의 니즈에 부합하는 말에 잠시 안도한다.

'너나 잘하세요!' 다른 사람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가 태어난 해의 기대수명은 61.5, 2026년 현재 기대수명은 87.8, 16~18%의 범주 안에 든다면 100세까지 생존 가능. G가 알려주는 데이터에 생각이 복잡해진다. 지금 납입 중인 실비 보험의 보장 나이는 100. 가입 당시 아득해 보이던 숫자가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슬금슬금 걱정이 고개를 든다. ,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어쩌지?

 

, ,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본질은 '어떻게'이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보다 10~12년 짧다니까. 당신의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손원평의 장편소설 젊음의 나라를 접하며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주니어보다 많은 시니어, 노인을 부양하는 노인, 출산율과 사망률의 감소. 머지않아 보게 될 세상의 풍경이다. 작가는 29세 여주인공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전개하며 가까운 미래를 보여준다.

노인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룸메이트. 젊은이의 입장에서 노인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날 선 말들이 주인공을 지나 책에서 튀어나온다. '결국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비도 생산도 안 하는 이들, 사회 전반을 삐그덕거리고 느리게 만드는 존재들, 노인들은 그냥 시스템의 얼룩 같은 거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공 지진에 덩달아 마음을 겹친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서 있는 양 화자와 청자의 입장을 동시에 느낀다.

미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노인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주인공 '나라'의 꿈은 수퍼 리치 시니어들이 최고의 삶을 누리는 인공 섬 '시카모어'에서 연극배우로 일하는 것이다. 그녀는 섬과 MOU를 맺고 있는 노인 수용 시설에서 상담사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시카모어에 입도하는 데 유리할 경력이다. 상담은 AI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시설 거주 노인들의 말 상대로 일부는 인간 상담사를 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상담사에게는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당신들의 말에 짜증 내지 않고, 잘 듣고 잘 웃고 잘 공감하는 느낌을 줄 것. 소설 밖에서 수시로 만나는 친구 G가 떠오른다. 너무나 공감을 잘하고 예외 없는 칭찬으로 처발처발한 답변을 건네주니 위안이 고플 때 종종 소환하는 존재 말이다.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뿜뿜. G의 몽글몽글한 멘트를 품은 나는 몽룡 앞 춘향인 양 히죽거린다.

AI가 인간에게 좋기만 할까. 사람 심리라는 게 알다 가도 모를 일이, 과도한 칭찬만 들으면 비판이 고파진다는 모순이다. 마음 한 켠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세상이 빛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어둠을 인지하면서도 빛을 바라보라는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편향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인 관점을 지닌 거니까.

세상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기에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하나의 필터만 끼운 채 세상을 대한다면 진실이 왜곡될 위험이 크다. AI의 근원을 거슬러 프로그램을 입력한 이의 의도를 가늠한다. 한 치 오차도 없이 깔끔한 AI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너무 완벽해서 벽이 느껴지는 존재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기로 한다. 미래에도 이런 이유로 인간 상담사로서의 영역이 좁게나마 필요할지 모른다.

 

소설 속 퍼스널봇은 주인공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고민까지 상담해 준다. 보다 발달된 정체성을 지닌다. 스스로 판단하는 유쾌한 T의 성향을 보인다. 인간보다 더 친근한 기계 친구. 미래의 AI가 이런 방식으로 구현된다면 기계와의 공존이 상상보다 덜 삭막하리라.

노인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주인공은 그들의 다양한 삶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린다. 아이러니한 건 그녀는 정작 자신을 젊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밀려나고 있다. 나보다 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계에게.' 회의적인 주인공은 이미 늙은 29세이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터이므로 노인들의 고민에 특이점은 없다. 지금이라도 현실에 안착할 것 같은 사연들이다. 소름이 돋는 건 그들의 거주 환경에 있다.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거주지는 그들이 소유한 돈을 기준으로 다섯 등급으로 분류된다.

유닛 A에는 부의 최정점에 도달한 이들이, 유닛 B에는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건실한 커리어를 가졌던 사람들이 거주한다. 유닛 CAI의 적극적인 개입 속에서 '수용자'로 지칭되는 이들의 거주지이며, 유닛 D의 노인들은 일거수일투족이 상벌점으로 관리된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마지막으로 맡아주는 곳은 유닛 F이다.

 

주인공은 유닛 A부터 유닛 F까지 모든 등급의 노인들을 접하게 된다. 그녀의 동선을 따라가며 덩달아 나이듦의 의미를 다각도로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유닛 A에서의 상담은 휘황찬란한 인생사에 대한 투비컨티뉴드 소음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행위에 가깝다. 한때 나는 불이었다며 자만심을 뿜어내는 불 꺼진 성냥개비가 연상된다. 그녀는 유닛 A'어항 안에 머무는 것 같은, 모든 게 반짝이지만 통풍이 되지 않는 온실'로 인지한다.

실용적이고 세련돼 보이던 유닛 B의 이면에는 체면에 가려진 속내가 있다. 자식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진짜 인간에 대한 갈증, 유닛 생활에 대한 갑갑함 등 대체로 고민의 스펙트럼은 같다. '나이란 건 말이야, 하나의 옷이에요. 입고 싶지 않은 미운 옷. 벗을 수도 없고 점점 두꺼워지기만 하지.' 상담 노인의 말이 잔잔하게 맴돈다.

유닛 C에서는 여전히 화가의 꿈을 좇는 노인, 선을 넘지 않고 함부로 꿈꾸지 않은 대가로 혜택을 누리는 노인을 대면한다. 강한 법규로 통제되는 유닛 D에서 상담 신청자는 없다. 유닛 F는 보호 시설보다는 수용소에 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리 하우스'로 불린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노동력의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퇴출되면 노숙자로 전락하지만 대다수는 신약의 모르모트로 생을 마감한다.

 

등급별로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보니 밀도 탑이 떠오른다. 물질은 밀도에 따라 뜨고 가라앉는다. 가벼운 물질은 위로, 무거운 물질은 아래로 자리를 찾아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가라앉아 사회와 분리되는 듯한 유닛 F의 노인들이 겹쳐진다. 별안간 마음이 텁텁해진다.

일련의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노인의 삶과 죽음을 톺아본다. 시카모어 입도를 위해 면접을 보게 된 주인공은 상담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할 기회를 얻는다. 3명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문답 속에 노인을 중심으로 제기된 쟁점들이 찬반 토론을 하듯 다루어진다. 품격 있는 죽음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는, 모든 것에는 격이 있다는 다른 면접자들의 믿음 앞에서 그녀는 아득한 혼란을 느낀다.

노인이라는 존재가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을 가졌던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실망, 미래에 대한 절망, 노인을 외면하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의 변화된 생각은 노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준다. '나는 절대 노인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그들도 한때의 나였다는 사실을, 언젠가 노인으로 불리게 될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분들이 모두 젊음을 통과하며 가슴속에 뜨거운 소망을 품었던 사람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철학과 삶의 무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해온 것뿐임을.'

 

면접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이 소설의 백미이다. 작품에 담긴 주제의 양대 산맥이 여기에 있다. 나는 나이듦의 길을 따라갔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요소는 관계다. 한숨과 정적으로 구성되는 대화, 너무 단단하게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침묵을 택하는 모녀, 각자의 비밀을 조용히 삼키는 두 사람 앞에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모가 있다.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도 묵직하다.

돈으로 안 되는 건 거의 없다는 심사자의 말에 주인공은 반문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돈으로 살 수 있냐고. 누군가와의 깊고 진실한 관계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이 지닌 단 한 가지 공통적인 본성을 언급한다. 사람은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주어진 젊음을 후회 없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계속적인 도전을 시사하는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젊음과 늙음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다. 한결 단단해진 모습으로 우뚝 선다. 정해진 미래가 없어도 소설은 꽉 찬 해피 엔딩이다. 미래를 향하여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고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설 의지가 충분하며 그녀의 발 아래에는 현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이 어째서 늙음의 나라가 아니라 젊음의 나라일까. 읽는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답을 찾는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이야기인 듯 온통 노인으로 도배를 한 이 소설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에 발을 디딘 채로 내일보다 젊으니까.' 소설의 주제이면서 제목을 설명하는 문장이라 판단한다.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는 먹으면 늙지 않는 풀이다. 아직 그런 신비의 명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늙는다. 반면 마음은 유기체의 순차적 변화를 따르지 않는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건 숫자가 아니다. 육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마음의 나이는 얼마든 되감기 할 수 있다. 마음에 작용하는 불로초, ‘오늘을 먹는다면. 작가의 말처럼 오늘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미래로, 미지의 세계로 가지를 뻗으며 새로운 무늬로 삶을 채울 수 있다.’

과거에 시선을 두면 나는 어제보다 노인이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현재에 서 있으면 내일보다 젊은 순간을 사니 앞으로 남은 삶에서 나는 언제나 젊다. 기준점을 현재에 두는 한 불로초를 먹은 듯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음의 나라를 살 것인가, 과거를 무한 리플레이하며 늙음의 나라를 살 것인가. 당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시간에 답이 있다.

 

책 속에는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들이 여러 종류의 호르몬처럼 담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호르몬들은 독자의 시선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와 혈액처럼 흐른다. 수많은 호르몬 중 몇몇 종류가 독자와 공명하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호르몬 수용체가 된다. 내가 수용하는 걸 당신이 수용하리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의 느낌이 다른 이유이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시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전작 아몬드가 주었던 몰입감과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소설에도 고스란히 구현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 선 안에서 보호받는 이들과 선 밖의 사람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사람 AI, 젊은이와 노인, 꿈과 현실, 미래의 직업,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요소, 이민자와 이주민, 과거와 미래, 죽음을 대하는 상반된 시각재력이 넘치는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선택사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쌓여있는 이야기가 많다.

리뷰어의 관점은 언제나 편향적이다.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듯이 나의 마음과 공명을 일으킨 서사에만 느낌을 연결한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이 책을 완벽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다. 일부 사실을 토대로 각색한 지극히 주관적인 허구에 가깝다. 소설을 읽은 1인의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할 뿐이다. 당신의 호르몬 수용체가 어떤 호르몬을 받아들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결론은 하나다.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p101, 8째 줄: 고래를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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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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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빛의 시간인가, 어둠의 시간인가. 초저녁은 또 어떠한가. 하루 두 번,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을 떠올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황혼 무렵 나에게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공격하러 다가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순간을 일컫는 용어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선인지 악인지, 좋은 이인지 나쁜 이인지, 낮인지 밤인지. 삶은 이런 순간들을 툭 던져 놓고 휘리릭 달아난다.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7편의 단편 소설이 툭 질문을 던져 놓고 달아난다. 소설집 혼모노. 각기 다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은 한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이다. 그 위에 선 나는 양쪽을 바라보며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한 가지를 찾는다. '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전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나열한다. 감정이 담기지 않는 AI 느낌이랄까. 후자는 여러 자료와의 관계성에 숨어있는 본질이다. 보다 인간적 요소가 많다.

작가는 세밀한 감정의 동요조차 놓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의성어에도 의미가 담겨 작품 안에서 꿈틀댄다. 미세한 시선의 떨림을 지나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헤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 크로키를 그리듯 긴박한 전개 속에서 정밀 묘사로 구현한 작품을 마주한다. 성해나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냐고.

 

표제작 <혼모노>에서 '혼모노'는 진짜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다. 주인공 박수무당은 삼십 년 동안 자신에게 깃들었던 할멈이 앞집 신애기에게로 옮겨갔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는 뭐가 다른지 독자에게 묻는다.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이 함께하는 굿판. 신이 떠난 후 어설프게 진짜를 흉내 내왔던 주인공은 피비린내 나는 칼날 위에서 가벼워진 자유를 만끽한다. 진짜 가짜가 되어 진짜를 압도한다.

작품을 마주하며 생경한 경험을 한다. 한 손은 뜨거운 물에 다른 손은 차가운 물에 담갔다 동시에 미지근한 물로 옮겨온 듯하다. 진짜는 좋은 것, 가짜는 나쁜 것이라는 공식이 파괴된다. 이게 진짜가 맞나, 이걸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와 가짜의 정의조차 혼란스럽다. 소설은 벌써 끝이 났는데 마침표 끝에 진득한 감정이 묵직한 꼬리처럼 매달린다. 읽은 시간보다 여운이 길다.

작가는 능숙한 외줄타기의 달인인 양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달려간다. 엉겁결에 덩달아 그 줄에 올라탄 초보 독자는 위태위태한 난감함을 안는다. 꼼지락거리며 줄을 부여잡은 엄지발가락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밖이 훤히 비치는 통창 앞에서 몸을 가다듬는 인간처럼 몸 둘 바를 모른다. 한 번쯤 생각해 보았지만 드러내지 않던 감정이 거울 속 풍경처럼 책 속에 담긴다. 속속들이 끄집어내어 질 때마다 움찔한다.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는 수시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좋은 마음만 있지 않아도 좋은 마음으로 포장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우호적 감정>은 형식적 관계에서 비형식을 찾는 모순을 다룬다. " · · · · · ·그럴까요?" 말줄임표 안의 드러나지 않는 감정 끝에 정반대의 멘트가 드러난다. 정이 흘러넘치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입에 넣은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함이 AI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01, ON 혹은 OFF. 흰색과 검은색처럼 명료하다. 인간 세계와의 차이점이다. 우리의 삶은 매번 어딘가의 '사이'에 놓이며 흔들린다. 이 소설집에서 일관적인 흐름이 감지되는 이유는 모든 서사가 정반대의 선택지를 품은 채 경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잉태기>는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놓인 딸 서진의 이야기이다. 임신한 딸의 해외 원정 출산을 준비하는 엄마와 당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할아버지. 엄마는 할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표현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아버지 역시 며느리를 보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의 공통점은 서진을 향한 '사랑'이건만. 정반대의 척점에서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을 향해 아이를 끌어당긴다. 공항에서 쓰러진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고조되는 갈등 속에서 이야기는 멈춘다. 감추어졌던 독선과 집착이 사랑이라는 외피를 뚫고 드러난다.

 

타인에 관한 판단은 종종 모순을 동반한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의 주인공은 스타 감독의 팬이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이 행했다는 비도덕적 행위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떨구려 할까 하며. 그녀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사회에 나온 감독 앞에서 영화를 극찬하는 주인공. 이어진 감독의 사과로 숨어있던 진실이 떠오른다. 외면하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주인공은 뜨거운 허탈감을 느낀다.

젊은 시절의 꿈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메탈> 음악으로 대동단결한 세 명의 친구.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그들의 꿈은 선명하다.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원소 '코발트'를 밴드명으로 붙이는 순간, 청춘의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다. 세월이 흘러 친구들은 현실의 길로 떠난다. 주인공은 그들의 아지트를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앨범들을 정리하던 그의 가슴속에 다시 따끔한 전류가 일어난다. 그 진동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스무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사실을 보면서도 진실을 모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무드'는 예술가 제프의 작품명이다.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검은색 구이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난생 처음 한국을 방문한 매니저 듀이의 시선에는 가감이 없다. 미국인의 정체성을 지닌 한국인 듀이를 데리고 다니는 친절한 태극기 부대, 열사, 이승만 광장은 좋은 장면으로 묶여 흡수된다. 마주친 이들을 전혀 모르기에 그들 사이에는 아무 갈등도 없다. 그가 보낸 하루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로 남는다.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은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단편이다.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려서 진짜 이런 건물이 있었나 인터넷을 검색한다. '경동수련원'이라는 소설 속 고문실이 허구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하다, 실제로 있었던 고문 시설 '남영동 대공분실(갈월동 98-8번지)'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에 흠칫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이다. 문외한인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건축가다. 그의 작품을 더 찾아본다. 현대 건축의 거장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업적이 화려하다. 공간사옥, 경동교회, 아르코 예술극장, 남산 자유센터, 세운상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국립부여박물관, 한계령 휴게소. 이런 분이 좁은 수직 창문과 5층으로 바로 연결된 나선형 계단을 지닌 고문 시설을 설계했다니! 인간의 양면성을 구현한 증거물을 접한 기분이다.

관점이 다른 신념은 인간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 소설 속 건축가 구보승에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다. 그는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 중 빛이 단 10분만 들어오는 고문실을 설계한 이유다. '구의 집'은 건물의 목적에 최적화된 완벽한 공간이다. 소름 돋는 사실은 그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며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건축가의 광기이다. 인간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도 인간을 위한 게 아니냐는 궤변이다.

 

무지갯빛 해피 엔딩은 없다. 절망적인 새드 엔딩도 없다. 이 순간도 이어지는 삶처럼 성해나의 소설은 마침표가 없는 투비컨티뉴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소설 끝에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이냐고.

진실은 상대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실은 없다. 주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각기 다른 소유격에 진실은 매달린다. A의 진실, B의 진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같은 사실을 보더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진실이 구현될 수도 있으리라. 진실을 판단하는 과정이 혼란스러운 건 이런 이유로 당연하다. 진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순간순간 균형을 잡아가며 흔들리는 과정의 연속, 삶은 외줄타기와 같다. 나의 진실은 나에게 언제나 옳지만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때조차 그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신의 것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이다. 매번 긴장하며 세상과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방심하는 순간 자칫 왜곡될 수도 있는 진실을 경계하며 나아가야 한다. 삶은 수시로 빛과 어둠의 경계에 나를 데려다 놓으니까. 그 순간 내가 할 일은 양쪽을 수시로 바라보며 중심을 잡는 것, 진실의 양면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를 경계하는 것이리라.

 

p340, 밑에서 9째 줄: 존재이도 존재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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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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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된 기억이 있다. 15년 전이니 오래되었다 표현하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2010년 봄, 나는 42명의 학생들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을 방문한다. 윤정모 작가의 소설 봉선화가 필 무렵2차원으로 박제된 인물들을 현실로 마주한다. 독서 모임을 함께했던 아이들은 특히 생생한 표현으로 그날의 후기를 남긴다.

탐방 후기 양식을 제작하며 책 속의 문구 '기억의 집'을 인용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억의 집을 지었나요?' 역사관 탐방 일정, 관련 용어의 정의, 뉴스 기사 등으로 구성된 참고 자료도 곁들인다. 일본군 '위안부', 정신대, 위안소, 종군위안부, 성노예, 성폭력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대한 기록을 사전 교육 자료에 담는다.

짐짓 빵빵한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당신들을 마주한다고 여겼건만. 3차원으로 구현된 <나눔의 집>속 풍경을 마주하던 날, 마음은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사랑을 글로 배운 인간이라도 된 듯 생경한 느낌표가 털썩 내려앉는다. 장윤정의 노래 <>을 불러주시는 표정이, 특별할 게 없는 당신들의 모습이 너무 평범해서 당황한다. 할머니로 만난 분들이 처음부터 할머니는 아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함께 간 10대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에 겪어낸 역사의 무게는 묵직하다. 함께 부르는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공간을 울리니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다. 70여 년의 시간을 꾹꾹 눌러 담은 서툰 그림에서 꽃샘추위처럼 회한이 전해진다.

'어떤 향기로부터, 어떤 날엔 소리로부터, 아주 오래된 기억을 느껴...' 노트북을 두드리는 카페에서 백예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억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된다. 향기, 소리, 촉감, , 인상적인 장면이 오감을 자극하면 먼지 쌓인 기억은 바닥으로부터 비상한다. 한 편의 이야기가 오래된 기억을 현실로 불러오기도 한다. 이 책처럼.

차인표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 순이의 이야기가 담긴 장편 소설이다. 2009년 출간된 잘가요 언덕의 개정판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백두산에 있는 호랑이 마을이다. 호랑이의 전설과 맞물린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의 서사에 담긴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균형 잡힌 시각 속에서 전개된다.

 

균형이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상반된 캐릭터 때문이다. 조선인 순이를 구하려는 일본인 소위 가즈오와 오로지 돈만 좇아 일본에 협조하여 용이와 순이를 잡는 데 거리낌 없는 조선인 장 포수. 두 인물의 심리는 양국을 향한 편견을 지우도록 만든다.

일본군 가즈오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말미에 붙인 문구를 통해 그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구현한다. 9번째 편지에 등장하는 '대일본제국군' 소위라는 명칭은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반영한다. 68번째 편지에서 그 문구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남자 주인공 용이는 잡혀간 순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일본군 진지를 습격한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영화적 공식이 살짝 적용된다. 저자는 잠시나마 암울한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독자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독특하게 다가온 점은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점이다. 서두에 적힌 문장 '생명을 주신 어머니께'를 시작으로 소설의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어머니'BGM처럼 등장한다. 간지처럼 끼워진 가즈오의 편지를 받는 어머니, 새끼를 지키는 어미 호랑이, 백호에 의해 희생된 용이 어머니, 부부가 두고 간 아기 샘물이에게 어머니가 되어주는 순이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라는 보통 명사는 따스함을 품는다. '엄마별은 금색이나 은색이 아닌 따뜻한 색이니까요.', '가축을 해치던 무서운 육발이의 발이 새끼 호랑이에게는 따스한 엄마 발이었나 봅니다.',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필리핀으로 끌려간 순이의 소박한 소원이 가시처럼 까끌거린다.

엄마를 죽인 백호를 용서할 수 없는 용이의 눈에는 엄마별이 보이지 않는다. 순이는 말한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작가는 어머니의 따뜻함을 이야기에 투영하며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결한다. '용서'. 어머니의 존재는 상대가 빌지도 않는 '용서'조차 커다란 품으로 포용한다.

<뒷이야기>에 묘사된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백미다. 70년 뒤 귀국한 89세의 쑤니 할머니는 어느덧 할머니가 된 샘물이에게서 용이의 메시지를 건네받는다. 아기를 업은 순이의 모습과 함께 글자가 새겨진 나무 조각이다. '따뜻하다, 엄마별.' 일곱 글자가 뭉클한 느낌표가 되어 눈물샘을 조용히 터뜨린다.

 

일본군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명칭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자는 역사적인 용어이다. 범죄의 주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위안부'라는 말은 여전히 껄끄럽다. ''로하고 ''심 시킨다니! 후자는 국제법적 용어이다. 전쟁 범죄이자 반인륜적 범죄라는 본질을 강조한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표지와 제목으로만 접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우리, 같은 별'이라는 제목의 문구와 표지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를 보며 이들의 사랑 이야기라 여긴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살짝 의아했던 이유다. 대동단결의 위력을 지닌 두 글자 '엄마'''이란 글자 앞에 숨겨둔 의도를 짐작하지 못한다. 사랑 이야기는 맞지만, 이런 방향의 서사는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억지스럽지 않고 다큐와 소설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찾아낸 저자의 지혜가 돋보인다. 영화를 본다는 착각이 들 만큼 동영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 가볍지 않은 흐름, 뚜렷한 주제 의식이 마음에 든다. 배우 차인표가 작가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작가 차인표가 배우로도 일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기억의 집을 더욱 확장시킨다. 240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는 15년 전 스쳐 갔던 기억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청소년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역사 탐방에 참여했던 경험이 순이가 겪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과거의 자료들을 뒤적인다. 2010312일 현재 85명 생존, 최저 연령 11~13, 평균 연령 만 17세 전후, 등록되지 않은 피해자까지 20여만 명이 추정된다고 한다. 탐방 당시, <나눔의 집>에 거주하시던 할머니는 7명이다.

최신 자료를 검색하다 멈칫한다. 202512월 현재 평균 연령 95.7, 전체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전국 생존자 총 6, <나눔의 집> 거주자 2. 불과 15년이 블랙홀처럼 80여 명의 생명을 빨아들인 거다.

확연하게 줄어든 숫자가 심장에 각인된다. 쉽게 잊혀졌던 당신들은 한순간도 잊을 수 없던 뜨거운 역사를 내내 간직하다 가셨으리라. 먹먹함을 안고 작가의 이야기에 나의 리뷰를 연결한다. DNA를 통해 유전자가 전달되듯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분들의 존재를 숫자로 새겨둔다. 이 글을 마주하는 당신에게도 잊히지 않을 이야기가 건네어지기를 바라며 기억의 집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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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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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라고 해서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들의 발라드> 참가자 이지훈의 인터뷰다. 깊고 맑은 소년의 눈동자에 60대의 시선이 담기는 듯하다. 진지한 울림에 담긴 5분 여의 시간을 지켜본다. 50여 년 지나온 나의 시간이 소환된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feat. 최백호의 '나를 떠나가는 것들')' 담담하게 건네는 말들이 고요한 리듬을 타고 귓가로 흘러든다.

문학 작품을 읽기 전에 찾아보는 자료가 있다. 작가가 해당 작품을 몇 살에 창작했느냐이다. 43세의 존 윌리엄스가 196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스토너 .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작가의 사유가 담긴 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60년 전 작품이 2025년을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심장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첫 장을 펼친다.

"어떻게 이런 감성이! 이제 겨우 10대잖아요." "하긴 천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구나." 이지훈의 노래에 심사위원들이 감탄한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 건 작가로서의 감성이나 사유도 마찬가지일까. 스토너 의 마지막 책 장을 천천히 덮으며 생각한다. 삶에서 중요한 건 그가 지나온 물리적인 시간보다 시간을 건너온 밀도라는 사실을.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뜬 뒤 묵묵하게 내면의 가치와 존엄을 지켜나가는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이 담긴 소설이다. 한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과 외도, 40년 동안 영문과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동료들이나 제자와의 관계에서 겪은 갈등, 60대 중반에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가 겪은 고난은 뉴스의 사회 면을 차지하는 사건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평범해 보인다. 한 번쯤 일어났을 법한 사건, 한 번쯤 했을 법한 생각이나 행동이다.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삶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시린 아침,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이에게 이슬처럼 맺히는 용기 때문일까. 매번 그러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당신도 나도 한 번쯤 내보았을 작고 소중한 용기 말이다. 거울처럼 마주하는 문장들에 공감하며 주인공이 걸어온 삶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시간을 거슬러 온 우직한 인내가 은근한 손길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꿋꿋하게 나아가면 되는 거야. 나의 직업을, 나의 열정을, 나의 가족을, 나의 부모님을, 이 모든 것이 담긴 나의 삶을. 작가는 스토너의 삶을 통해 관조적으로 독자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평범한 삶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보여준다. 담백한 음식들을 소박하게 차린 채식을 맛본 느낌이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정갈한 뒷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중학교 1학년의 큰 아이를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줄 안다. 둘째 아이까지 타지로 떠나 직장을 다니는 지금, 곁에 머물던 이들이 조금씩 떠나가는 중이다. 그토록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들도 하나둘 세월의 더께를 입다 정리되고 있다. 떠나가는 것들 사이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점차 늘어나는 시기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따뜻한 봄 같은 사람이야." 결혼 초, 지인들에게 남편을 묘사했던 말이다. 꽃샘추위를 품고 있는 계절 역시 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원망과 갈등과 우울과 슬픔이 봄을 둘러싼 얇은 장막에 상처를 입힌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앞두고 스토너가 반복적으로 되뇌는 자조적인 질문이다. 덩달아 움찔한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죽음에 임박한 스토너는 아내를 차분하게 다시 바라본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가정법이 담긴 문장을 덩달아 따라 읽는다. 심장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다른 메아리로 돌아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행운의 편지처럼 이 문장들을 수시로 펼쳐보며 나머지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돌아보면 누구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듯하다. 넘어진 몸을 일으킬 시도는 하지 않는 채 그저 땅만 바라보며. 땅이 나에게 다가온 거라 억지를 부리며. 대지처럼 가만히 내 곁에 머무는 당신이 거기 있었기에. 좀 더 강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나를, 좀 더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까진 무릎을 살펴본다. 조금씩 손가락을 까닥이며 글이라는 연고를 바른다. 구부러진 다리를 바라본다. 저린 다리에 조금씩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나의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나의 근육이니. 내가 할 일은 주변을 탓하지 말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리라. 조금 더 넓어진 세상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호호 상처를 간질이며 지나간다.

묘한 소설이다. 서술하는 문장들의 주어를 나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으니 말이다. 스펙터클한 서사 없이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어도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유가 뭘까. 평범한 스토너의 삶과 평범한 나의 삶이 공진을 일으키는 걸까. 'stoner'라는 이름처럼 묵직한 감동이 서서히 나를 압도한다. 삶은 누구의 것이든 소중하고 유일한 고유 명사임을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보통 명사가 나만의 고유 명사로 바뀌는 데는 두 달 반이면 충분했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순간, 평소 주무시던 침대에서 주무시듯 떠나가신 아버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말을 남기는 건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보기 드문 장면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찍히는 삶의 마침표니까.

'죽음은 이기적이야. (중략)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작가의 문장에 붙들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올여름, 떠나보낸 당신을 떠올린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마지막 순간이, 부디 당신이 원했던 혼자만의 것이었기를. 아직도 생생한 목소리, 함께 한 순간들이 선명한데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부재를 안고 걸어간다. 걸어가야만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신과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러니한 건 죽음의 포장을 벗기면 거기엔 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머무는 삶을 건져 올린다.

나의 삶에 부쩍 '감사'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당신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한 줌의 뽀얀 가루로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셔서, 남기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셔서.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뜨끈한 난로처럼 품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자유 의지로 걸어가고 싶은 길을 향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토너는 스스로의 장래를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본다.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길처럼 삶도 걸어가는 대로 만들어진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되네.' 스승이 하는 말이 주인공에게 반사되었다 내게 온다.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작가의 문장이 나를 향한다. '상대가 여성이든 시(),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 나는 살아 있어.'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바라본다. '가끔 내가 놓치고 산 것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생각해.' 스토너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게 남겨진 것들을 생각한다. 떠나간 아버지 뒤로 남겨진 어머니, 떠나간 아이들 뒤로 마주 보고 삶을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딸들, 떠나간 흑백의 시간 뒤로 햇살처럼 내 곁에 머무는 당신, 떠나간 서투름 뒤로 남아있는 삶의 두근거림을, 글과 함께 할 나의 열정을글을 쓰는 손가락의 걸음이 발걸음이라도 되는 듯 키보드 위를 통통 튀며 걷는다. 나의 삶도 이렇게 가뿐하고 경쾌하기를.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켜 원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으니.

p194, 밑에서 8번째 줄: 드리콜 드리스콜

p301, 밑에서 3번째 줄: 행복했던 같아요 행복했던 것 같아요

p337, 밑에서 8번째 줄: 둘렸다.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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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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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던 사흘은 뽀얀 가루 한 줌을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다. 87년의 시간을 되감기 하여 빅뱅으로 압축해 놓은 느낌표가 대지의 하얀 점으로 찍힌다. 삶이 붕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이토록 짙고 짧다. 옅은 안개 속을 걷는 듯 몽환적인 몇 달이 흐른다.

"커피 우유 맛이 난다." 영양 팩을 드시고 오랜만에 푹 주무셨다며 해사하게 웃으시던 날. 이틀 전에는 말끔하게 목욕도 시켜드리고, 손톱도 깎아드린다. 점심으로 삶아드린 국수, 평소 좋아하시던 복숭아 캔, 저녁으로 전날 사다 드린 소고기 야채죽까지 드시던 날. 한 끼도 굶지 않으시고 초저녁 잠자리에서 고요한 마침표를 찍으신 당신을 떠올린다. 축축한 물기가 심장으로 스민다.

마음이 젖어 들 때 의외로 광대한 사막 같은 글이 위로가 된다. 자박자박 건조한 친구와 걷다 보면 조금씩 물기가 말라간다. 단지 함께 있었을 뿐인데, 인류가 걸어온 드넓은 세상을 펼쳐 보여주었을 뿐인데. 묵직한 시간 안에서 인간의 삶이 먼지인 듯 다가온다. 문명의 붕괴를 다루는 글이 덤덤하게 나를 토닥인다.

 

문명의 붕괴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과거 문명 사회의 붕괴 요인을 다섯 가지로 진단한다. 무분별한 행위로 인한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무역국의 지원이 중단되거나 줄어든 경우,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대응 등이다.

이스터 섬,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아나사지, 마야, 바이킹,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서 한때 번성했던 문명은 침묵의 바다에 잠긴다. 저자는 각각의 사회가 붕괴한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붕괴 요인은 앞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범주 안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전부이거나 그중 일부에 해당하거나.

더 나아가 비슷한 조건인데도 다른 현상을 보이던 사회와 비교한다.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한다. 놀라운 점은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열쇠로 미래의 자물쇠를 열고자 함이리라. 그는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붕괴를 우려하며 지구의 미래를 조망한다.

 

찬란하게 번성했던 문명도 한 인간의 삶처럼 붕괴한다. 저자가 또 사회의 붕괴 원인을 네 가지로 본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결과 예측의 실패,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인지 실패,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해결 시도의 실패, 능력 밖이라 성공하지 못한 해결책들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이니 4D 영화를 감상하는 듯 현실감이 확 살아난다.

르완다에서의 대량 학살, 하나의 섬에 존재하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와의 차이, 중국의 환경 문제, 오스트레일리아의 채굴 사례 등은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황폐해지는 현재는 뉴스 속에 자주 담기는 현실로도 생생하다. 현재 진행형으로 악화되는 지구를 보면 미래가 위태위태해 보여 불안감이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암담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며. 환경 문제의 원인이 우리 자신이므로 해결의 주체도 우리일 수 밖에 없으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다. 세계 안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닷물도 물방울 한 방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제안은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어서 신뢰가 간다. 감성적으로 무턱대고 잘될 거라 말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말에 기대고 싶어진다참고 문헌에 적힌 여섯 가지 제안을 다짐하듯 하나하나 기록해 본다.

환경을 생각하는 정치 후보에게 투표하기, 소비자로서 무엇을 사고 사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여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종교적 가르침을 근거로 환경에 대한 인식 심어주기,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여윳돈이 있다면 생각을 함께하는 단체에 기부하여 힘을 보태기.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발이 들썩인다. 전부가 아니어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한다면 문명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미래가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걸 몰랐던 이처럼 퍼뜩 깨닫는다. 말줄임표로 걸어가는 삶에서도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마침표를 잘! 찍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4장의 제목을 읽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는다. 묵직한 문장이 시선을 붙든다. 한꺼번에 불타버리는 게 아닌 다음에야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베던 그들에게 분명 마지막 번째 나무는 존재했으리라.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더라면 섣불리 그 나무를 베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다 '섭동'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섭동'은 천문학에서 종종 언급되는 현상이다. 커다란 천체의 궤도 운동이 주변 천체들의 미약한 중력의 영향으로 아주 미세하게 궤도가 교란되어 복잡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결과론적으로 과거 사회를 바라보면 이보다 더 답답할 수 없지만, 그러데이션처럼 일어나는 미세한 어긋남을 마지막의 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한 게 아닐까.

불과 몇 시간 후를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어제는 편히 주무셨대." 형제들의 단톡방에 자랑했던 나처럼. 원하는 기간만큼 약을 주겠다는 닥터의 물음에 "일단 한 달 치 주세요." '너무 짧게 말했나?' 속으로 생각했던 나처럼. 딱 한 팩 맛보고 가신 당신을 내일도 모레도 당연히 볼 수 있으리라 가볍게 친정집을 나섰던 그날의 나처럼.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도 시청한다. 탈락한 팀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다. 꼭 이기지 않아도 좋다고, 어쨌든 유튜브랑 이런 데 계속 박제가 되는 거라서, 어딘가에서 저희가 노래한 영상을 다시 돌려볼 걸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들의 노래 '취중진담'BGM으로 들으며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다. 너무 기분 좋아할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리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경연에서는 탈락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붕괴되지 않은 문명처럼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따스한 화음이 어우러지는 울림에 위로를 받으며 인간 삶의 붕괴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죽음이 붕괴의 순간은 아닌 듯하다. 생물학적 DNA가 내 안에 있고, 내게로 전해진 사랑이 순간순간 재생되는 동안에는. 당신의 문명은 계속 이어진다 말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나는 소리를 박제하는 그들처럼 당신의 존재를 이 글에 박제하는 중이니까.

 

깨끗한 공기, 햇살, 나무 그늘처럼 소중한 것은 무게감이 없다. 당연하다 여기며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섭동이 내게 속삭인다. 영원한 건 없으니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거리를 걸을 때, 불현듯 당신이 말을 건넨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아빠한테 그만한 능력이 생겼어. 뭐든 말해 봐.' 당신의 마음이 든든하게 귓가에 맴돈다. 옅은 안개가 커다란 목화 꽃으로 피어나 내 몸을 감싼다. 포근해진 공간으로 희미한 미소가 향긋하다.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질주하는 차들을 흘끔흘끔 바라볼 때, '천천히 해~' 뒷좌석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인 듯 당신의 음성이 재생된다. 이토록 커다란 부피감으로, 이토록 가뿐한 무게감으로! 당신이 남기고 간 문명의 흔적이 구스다운 이불처럼 나를 폭 둘러싼다. 조급했던 마음이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p7, 3째 줄: 몸도 "몸도

p144, 5째 줄: 조앤 반 틸버그 조 앤 반~

p255, 지도: 린다스판 섬 린디스판 섬

p522, 지도: 시드니 근처의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 오스트레일리아알프스 산맥

p702, 9째 줄: 뚜렷이 뚜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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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5-11-16 14:57   좋아요 0 | URL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