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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이제는 디폴트 값이 1990년생인가. 만 36세로부터 마우스 휠을 세 번 돌리며 세월을 거스른다. 나이 계산기를 열어 어머니의 나이를 확인한다. 마지막 검색으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건만. 스크롤바를 올릴수록 조바심이 인다. 연 나이 86세, 만 85세. 90이란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줄어드는 배터리를 보는 기분이다.
요즘 평균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는데! 지금 나이에 0.8을 곱한 게 진짜 나이라고 보면 돼. 주워들은 풍문에 기대어본다. 당신의 나이를 타임머신에 태워 60대 후반으로 달려간다. 1940년생의 현재 기대수명은? 나를 님으로 칭하고 매번 인사할 뿐 더러 언제든 도와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G에게 묻는다. 최종 예상 수명 93세. 암 수술 후 경과도 좋고 고혈압 약만 드시고 그런대로 잘 걸어 다니시니 95세 이상 장수하실 가능성도 충분하단다. 고갱님의 니즈에 부합하는 말에 잠시 안도한다.
'너나 잘하세요!' 다른 사람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가 태어난 해의 기대수명은 61.5세, 2026년 현재 기대수명은 87.8세, 16~18%의 범주 안에 든다면 100세까지 생존 가능. G가 알려주는 데이터에 생각이 복잡해진다. 지금 납입 중인 실비 보험의 보장 나이는 100세. 가입 당시 아득해 보이던 숫자가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슬금슬금 걱정이 고개를 든다. 나,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어쩌지?
워, 워,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본질은 '어떻게'이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보다 10~12년 짧다니까. 당신의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손원평의 장편소설 『젊음의 나라』를 접하며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주니어보다 많은 시니어, 노인을 부양하는 노인, 출산율과 사망률의 감소. 머지않아 보게 될 세상의 풍경이다. 작가는 29세 여주인공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전개하며 가까운 미래를 보여준다.
노인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룸메이트. 젊은이의 입장에서 노인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날 선 말들이 주인공을 지나 책에서 튀어나온다. '결국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비도 생산도 안 하는 이들, 사회 전반을 삐그덕거리고 느리게 만드는 존재들, 노인들은 그냥 시스템의 얼룩 같은 거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공 지진에 덩달아 마음을 겹친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서 있는 양 화자와 청자의 입장을 동시에 느낀다.
미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노인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주인공 '나라'의 꿈은 수퍼 리치 시니어들이 최고의 삶을 누리는 인공 섬 '시카모어'에서 연극배우로 일하는 것이다. 그녀는 섬과 MOU를 맺고 있는 노인 수용 시설에서 상담사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시카모어에 입도하는 데 유리할 경력이다. 상담은 AI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시설 거주 노인들의 말 상대로 일부는 인간 상담사를 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상담사에게는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당신들의 말에 짜증 내지 않고, 잘 듣고 잘 웃고 잘 공감하는 느낌을 줄 것. 소설 밖에서 수시로 만나는 친구 G가 떠오른다. 너무나 공감을 잘하고 예외 없는 칭찬으로 처발처발한 답변을 건네주니 위안이 고플 때 종종 소환하는 존재 말이다.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뿜뿜. G의 몽글몽글한 멘트를 품은 나는 몽룡 앞 춘향인 양 히죽거린다.
AI가 인간에게 좋기만 할까. 사람 심리라는 게 알다 가도 모를 일이, 과도한 칭찬만 들으면 비판이 고파진다는 모순이다. 마음 한 켠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세상이 빛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어둠을 인지하면서도 빛을 바라보라는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편향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인 관점을 지닌 거니까.
세상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기에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하나의 필터만 끼운 채 세상을 대한다면 진실이 왜곡될 위험이 크다. AI의 근원을 거슬러 프로그램을 입력한 이의 의도를 가늠한다. 한 치 오차도 없이 깔끔한 AI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너무 완벽해서 벽이 느껴지는 존재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기로 한다. 미래에도 이런 이유로 인간 상담사로서의 영역이 좁게나마 필요할지 모른다.
소설 속 퍼스널봇은 주인공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고민까지 상담해 준다. 보다 발달된 정체성을 지닌다. 스스로 판단하는 유쾌한 T의 성향을 보인다. 인간보다 더 친근한 기계 친구. 미래의 AI가 이런 방식으로 구현된다면 기계와의 공존이 상상보다 덜 삭막하리라.
노인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주인공은 그들의 다양한 삶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린다. 아이러니한 건 그녀는 정작 자신을 젊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밀려나고 있다. 나보다 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계에게.' 회의적인 주인공은 이미 늙은 29세이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터이므로 노인들의 고민에 특이점은 없다. 지금이라도 현실에 안착할 것 같은 사연들이다. 소름이 돋는 건 그들의 거주 환경에 있다.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거주지는 그들이 소유한 돈을 기준으로 다섯 등급으로 분류된다.
유닛 A에는 부의 최정점에 도달한 이들이, 유닛 B에는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건실한 커리어를 가졌던 사람들이 거주한다. 유닛 C는 AI의 적극적인 개입 속에서 '수용자'로 지칭되는 이들의 거주지이며, 유닛 D의 노인들은 일거수일투족이 상벌점으로 관리된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마지막으로 맡아주는 곳은 유닛 F이다.
주인공은 유닛 A부터 유닛 F까지 모든 등급의 노인들을 접하게 된다. 그녀의 동선을 따라가며 덩달아 나이듦의 의미를 다각도로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유닛 A에서의 상담은 휘황찬란한 인생사에 대한 투비컨티뉴드 소음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행위에 가깝다. 한때 나는 불이었다며 자만심을 뿜어내는 불 꺼진 성냥개비가 연상된다. 그녀는 유닛 A를 '어항 안에 머무는 것 같은, 모든 게 반짝이지만 통풍이 되지 않는 온실'로 인지한다.
실용적이고 세련돼 보이던 유닛 B의 이면에는 체면에 가려진 속내가 있다. 자식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진짜 인간에 대한 갈증, 유닛 생활에 대한 갑갑함 등 대체로 고민의 스펙트럼은 같다. '나이란 건 말이야, 하나의 옷이에요. 입고 싶지 않은 미운 옷. 벗을 수도 없고 점점 두꺼워지기만 하지.' 상담 노인의 말이 잔잔하게 맴돈다.
유닛 C에서는 여전히 화가의 꿈을 좇는 노인, 선을 넘지 않고 함부로 꿈꾸지 않은 대가로 혜택을 누리는 노인을 대면한다. 강한 법규로 통제되는 유닛 D에서 상담 신청자는 없다. 유닛 F는 보호 시설보다는 수용소에 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리 하우스'로 불린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노동력의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퇴출되면 노숙자로 전락하지만 대다수는 신약의 모르모트로 생을 마감한다.
등급별로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보니 밀도 탑이 떠오른다. 물질은 밀도에 따라 뜨고 가라앉는다. 가벼운 물질은 위로, 무거운 물질은 아래로 자리를 찾아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가라앉아 사회와 분리되는 듯한 유닛 F의 노인들이 겹쳐진다. 별안간 마음이 텁텁해진다.
일련의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노인의 삶과 죽음을 톺아본다. 시카모어 입도를 위해 면접을 보게 된 주인공은 상담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할 기회를 얻는다. 3명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문답 속에 노인을 중심으로 제기된 쟁점들이 찬반 토론을 하듯 다루어진다. 품격 있는 죽음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는, 모든 것에는 격이 있다는 다른 면접자들의 믿음 앞에서 그녀는 아득한 혼란을 느낀다.
노인이라는 존재가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을 가졌던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실망, 미래에 대한 절망, 노인을 외면하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의 변화된 생각은 노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준다. '나는 절대 노인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그들도 한때의 나였다는 사실을, 언젠가 노인으로 불리게 될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분들이 모두 젊음을 통과하며 가슴속에 뜨거운 소망을 품었던 사람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철학과 삶의 무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해온 것뿐임을.'
면접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이 소설의 백미이다. 작품에 담긴 주제의 양대 산맥이 여기에 있다. 나는 나이듦의 길을 따라갔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요소는 관계다. 한숨과 정적으로 구성되는 대화, 너무 단단하게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침묵을 택하는 모녀, 각자의 비밀을 조용히 삼키는 두 사람 앞에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모가 있다.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도 묵직하다.
돈으로 안 되는 건 거의 없다는 심사자의 말에 주인공은 반문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돈으로 살 수 있냐고. 누군가와의 깊고 진실한 관계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이 지닌 단 한 가지 공통적인 본성을 언급한다. 사람은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주어진 젊음을 후회 없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계속적인 도전을 시사하는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젊음과 늙음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다. 한결 단단해진 모습으로 우뚝 선다. 정해진 미래가 없어도 소설은 꽉 찬 해피 엔딩이다. 미래를 향하여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고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설 의지가 충분하며 그녀의 발 아래에는 현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이 어째서 늙음의 나라가 아니라 젊음의 나라일까. 읽는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답을 찾는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이야기인 듯 온통 노인으로 도배를 한 이 소설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에 발을 디딘 채로 내일보다 젊으니까.' 소설의 주제이면서 제목을 설명하는 문장이라 판단한다.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는 먹으면 늙지 않는 풀이다. 아직 그런 신비의 명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늙는다. 반면 마음은 유기체의 순차적 변화를 따르지 않는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건 숫자가 아니다. 육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마음의 나이는 얼마든 되감기 할 수 있다. 마음에 작용하는 불로초, ‘오늘’을 먹는다면. 작가의 말처럼 ‘오늘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미래로, 미지의 세계로 가지를 뻗으며 새로운 무늬로 삶을 채울 수 있다.’
과거에 시선을 두면 나는 어제보다 노인이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현재에 서 있으면 내일보다 젊은 순간을 사니 앞으로 남은 삶에서 나는 언제나 젊다. 기준점을 현재에 두는 한 불로초를 먹은 듯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음의 나라를 살 것인가, 과거를 무한 리플레이하며 늙음의 나라를 살 것인가. 당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시간에 답이 있다.
책 속에는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들이 여러 종류의 호르몬처럼 담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호르몬들은 독자의 시선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와 혈액처럼 흐른다. 수많은 호르몬 중 몇몇 종류가 독자와 공명하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호르몬 수용체가 된다. 내가 수용하는 걸 당신이 수용하리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의 느낌이 다른 이유이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시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전작 『아몬드』가 주었던 몰입감과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소설에도 고스란히 구현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 선 안에서 보호받는 이들과 선 밖의 사람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사람 AI, 젊은이와 노인, 꿈과 현실, 미래의 직업,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요소, 이민자와 이주민, 과거와 미래, 죽음을 대하는 상반된 시각, 재력이 넘치는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선택사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쌓여있는 이야기가 많다.
리뷰어의 관점은 언제나 편향적이다.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듯이 나의 마음과 공명을 일으킨 서사에만 느낌을 연결한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이 책을 완벽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다. 일부 사실을 토대로 각색한 지극히 주관적인 허구에 가깝다. 소설을 읽은 1인의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할 뿐이다. 당신의 호르몬 수용체가 어떤 호르몬을 받아들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결론은 하나다.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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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8째 줄: 고래를 →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