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변화가 시작되었다. 책 2권을 구입했고,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마음의 서재』로 조심스레 나를 두드렸던 작가는 『공부할 권리』로 자그마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상처는 대개 가까운 데에서 받기 마련이다. 쏟아지는 업무로 피곤한 몸 때문인지 섬세한 가시가 돋친 듯 감정이 민감했다. 무심코 던져진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아 신경이 곤두섰고, 속으로 삭이고 봉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즈음에 이 책을 만났다. 억지로라도 지친 몸을 끌고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어라? 얼핏 보면 딱딱한 제목이라 별 기대 없이 펼쳤는데 내용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책장을 넘기는 나는 햇살 아래 나그네인 양 조금씩 마음의 더께를 벗겨나갔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장과 곳곳에 등장하는 멋진 그림들을 휴식처럼 감상하였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여행을 하고 온 듯 편안하면서도 울컥했다.
이 책은‘인간의 조건, 창조의 불꽃, 인생의 품격, 마음의 확장, 가치의 창조’등 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분석한 주요 키워드는 ‘인간, 마음, 창조’이다. 인간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을 향하는 마음, 창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사물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것은 지금껏 알던 세상과는 다른 빛깔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당신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만이 진짜 끝이라고. 그 끝을 선택하는 결정권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p28)
관계의 실타래가 뒤엉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이 문장을 만난 건 어쩌면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삶을 바꾸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이나 연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용기입니다. ’(p31)
여러 권의 책과 저자들을 소개하면서 작가가 건네준 것은 다가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였다.
‘인간의 참된 가치는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p65)
‘과연 그가 날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그가 날 사랑하게 만들까?'라는 익숙한 질문 대신 어떻게 하면 그의 상처를 그가 모르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요.’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p333)
내게 상처가 있듯이 상대에게도 나로 인한 상처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제까지 내 상처만 바라보고 원망해왔던 게 아닌가, 너무 받기만을 바라왔던 게 아니었나 되돌아보았다. 이런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니 주변 사람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세상을 한 호흡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비슷한 듯 다르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는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김소연의『마음사전』(p161)
유리에 대한 김소연 작가의 생각은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저 평범한 유리를, 먼지가 내려앉으면 닦을 줄이나 알았지 어느 누가 유리를 보고 이런 사유를 한단 말인가!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김소연의『마음사전 』(p162)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여쁘다는 표현은 섬세한 감동이었고, 그 문장은 나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두 문장까지 읽고 알라딘을 찾았고, 지금 내 책상 위에 이쁘게 놓여있다. 택배 아저씨와 함께 오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도 곧 그 옆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도 관심이 갔다. 학창 시절, 정신분석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겉멋만 들어 책에 있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읽.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심리학자는 그저 프로이트 밖에 몰랐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융도 상당히 흥미가 가는 인물이다. 몇 달 전에 구입한 『꿈의 해석』과 함께 융의 저서도 찾아 읽어야겠다.
에필로그에 나와 있는 두 문장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든 언어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되었다. 그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말한다.’버지니아 울프의 『존재의 순간들』(p350)
내 문제를 내가 쓴 글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제 3자가 되는 셈이다. 슬프거나 외로울 때 시를 쓰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스스로 마취약도 없이 내 상처를 꿰매는 멋진(그러나 조금은 엽기적인)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p346)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치유의 시간으로 가졌듯이,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보냈다. 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세상에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았다.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모습대로 되고,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바로 그 사람이다.’파라셀수스(p19)
이제 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내가 상상한 바로 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제부터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