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게 가난한 사회 - 이계삼 칼럼집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항상 직진만을 하는 아이였다. 30여 분 남짓한 거리를 등교할 때, 시선은 눈앞에 주어진 길만을 응시했다.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갔던 아이. 함께 걷던 친구는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의 주의가 산만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의 걸음 방식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는 건 오래지 않아 드러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학교 가는 길에 있던 문구점이나 건물이나 나무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그 문구점이 거기에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문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관심 분야는 잘 알았지만 관심 밖의 분야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전무했다.

 

현실 속에서 싸우거나 아픔에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서 희망을 위해서 참담한 오늘과 단절할 용기도 의사도 없으면서도, 말은 언제나 '미래''희망'이다. ’(p45~46)

시간이 갈수록 말이 주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짐을 느낀다. 늘 그렇듯 말은 쉽다. 하지만 말 속에 담긴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를 향한 말은 다른 이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앵무새의 외침이 되기 십상이다. 혹은 화려하게 돌진하는 말처럼 행동을 뒤로 한 말만 저만치 가버리거나. 나는 어떠했던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던 애덤 스미스가 생각났다. . 그건 힘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힘이 떠올랐다. 영화 속 액체 인간처럼 사람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때로는 투명 망토를 입고 팔을 휘두르듯 닥치는 대로 힘없는 이들을 쓰러뜨리곤 하는. 자본을 등에 업은 이들은힘의 운반자들’(p43)이었다.

자본의 테두리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리는 사람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든 남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 불의한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p48)

강해서 투쟁하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기 때문이에요.’(p304)

시스템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제 잘못이 아닌 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이다.

극심한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의미 없는 고통은 참을 수 없다. ’(p99)

많은 단어들이 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의미를 지닌 채 일어나고 있는데, 의미가 없는 고통이라니.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너는 밥 먹으러 오지?”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다 점심시간이면 생생해지는 아이. <준표 형님, 준표 형님>(p108)은 무상급식에 관한 칼럼이다. !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공감이 갔고 더욱 넓은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 (p114 ) 이 땅에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밀양에서 태어났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밀양의 핵발전소, 송전선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치열함,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고압선에 전기가 흐르듯 가속화되는 자본의 힘들이 세세하게 그려진다.‘자본과의 약속’(p155)이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아무런 감정도 배려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인공지능 로봇처럼 그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은 단지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인용된 카프카의 짧은 소설 <법 앞에서>(p158~159)의 줄거리는 마지막 순간 마음을 섬칫하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법인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돈인가.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변에 무관심했고, 주변을 너무 몰랐던 나를. 그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으로 포장하기에는 모자란, 무책임이었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지 않도록 잘 살피고 앞서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도 둘러보기를, 넘어진 사람들이 눈에 띄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쓰러진 풀을 조심스레 보듬고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바로 앞서 가는 어른의 몫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p296)

크리족 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예언이 내내 마음을 맴돈다.

 

 

*아주 사소하지만..

기 차기차(p47)

터해 있는처해 있는(p79)

건나갈건너갈(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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