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오묘한 느낌이다. 어린이들처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기에는 이미 마음이 복잡해진 나이. 문장 이면의 세상을 해석하고, 여느 소설을 접한 것 못지않게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기도 한다. 예상보다 많이 담겨있는 정서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른에게 동화는 단순하지 않다.

 

한동안 외국 소설을 멀리 했다. 내 정서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아서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인 정서를 갖는다는 말도 그 즈음 접했던 고전이나 소설 속에서는 힘을 잃었다. 웃기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부분이 웃음의 포인트인지 난감해하곤 했다.

알록달록한 겉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부실할 지도 몰라.’ 슬금슬금 고개를 내미는 선입견에 책 주문이 망설여졌다. 에라, 모르겠다! 반응이 썩 나쁘지 않으니 13층의 2탄으로 출판된 거겠지. 어린이 독서모임 도서로 이 책을 정한 것은 모험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결론은 상상 이상이었다. 요즘 나름 상상력이 괜찮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기발한 전개는 어설픈 자만심을 가졌던 나를 겸손한 인간으로 변모시켰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분홍 손잡이의 31가지를 넘어서는 78가지라니! 두 번째 읽었을 때 깨달았다. 차례가 나오기 전 페이지에서 주인공이 들고 있던 것이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거대한 공룡 뼈다귀를 발견해서 꼬리를 붙들고 있는 장면인 줄 알았더니. 다시 보니 혀를 내밀어 맛을 보는 모습이 이제야 보인다. 작가는 숫자 13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13, 26, 39, 52층으로 13층씩 더한 것도 그렇고, 아이스크림조차 136배수 아닌가. 설마 78가지를 다 묘사했을까 세어보았다. ! 그는 진정 치밀한 인간이다.

그림을 그린 이는 또 어떤가. 질과 함께 사는 동물들을 세어보았다. 고나리아도 정확히 13마리, 묘사된 모든 캐릭터가 다큐처럼 빠짐없이 그려져 있다. 말줄임표로 대충 흘려버리는 적당히가 없다. 빙하 위로 탑을 쌓았던 동물들의 마리 수도 모두 내용과 일치한다. 글만큼이나 그림도 대단히 섬세하고 매력적이다.

 

테리, 앤디, 질의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부모님이 등장한다. 과보호를 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아이의 관심사에 무관심한 이들. 과장된 묘사 한 가운데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들의 부모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인가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한다.

 

이 책이 멋진 것은 세 명의 주인공 모두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으며 서로 의지하면서 우정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거다. 죽음에 가까운 공포가 다가와도, 죽은 줄만 알았던 선장으로 인해 곤란을 겪어도,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미로조차 뛰어드는 용기를 보인다. 함께 하기에 더욱 용감할 수 있는 모습이 흐뭇하다. 그래서 웃기는 가운데에서도 찡한 감동이 스며오는 건지도.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 내용 속으로는 약간의 지루함조차 끼어들지 못한다. 치밀한 구성이다. 중간 중간 매듭을 풀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왔다 갔다 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능력이 감탄스럽다.

 

78가지 이외에 추가하고 싶은 아이스크림의 맛과 자신만의 나무 집을 상상해서 그려보라는 내용을 토론 자료에 넣었다. 책을 덮고 나만의 나무 집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머릿속이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해지는 듯했다. 마음이 상쾌해졌다. 심각하고 어두웠던 감정도 햇살을 받아 날아가 버리는 물처럼 어느새 증발해버렸다. 지쳐있던 삶의 꽃을 다시 되살리는 물과 같은, 이런 게 동화가 주는 힘인 걸까.

 

 

* 오타 추정

p55 그림 설명에서, 하늘을 나는 고양이/카나리아 고나리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