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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평점 :
뭉클한 산문. 부상당한 천사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독이는 문장들이 시처럼 이어졌다.
학창 시절, 나는 수필을 좋아했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내가 왜 이 사람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좋아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식상해질 무렵 다큐적인 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편지조차 쓸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시’만한 것이 없다며 시에 빠진 적도 있다. 한동안 시를 직접 써보자며 무모하게 매달려 있다 너무 산문 같다는 자괴감에 잠시 포기했더랬다. 그러다 하이쿠에 관한 책을 접한 후, 정형시에 매력을 느꼈고, 평소 노래를 좋아하기에 작사에 도전해보고 싶어 되도 않는 시를 계속 쓰는 중이다. 문학 장르에 대한 내 호감도의 대략적인 변천사다.
산문에 매력을 느낄 줄은 몰랐다는 얘기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카덴차의 개인적인 끄적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동안 접했던 작가의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좋았다. <물의 연인들>에서 표출된 사회의식과 <발원>에서 드러나는 대상을 향한 묵직한 사랑이 잘 버무려진 느낌이다.
‘문학은, 문화예술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절망의 자리에 남아 있는 단 한 톨의 씨앗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p9)
‘ '자살 방지'가 초점이 아니라 '고통의 이해'가 초점이어야 진짜 캠페인이 되는 것 아닌가./ 고통의 이해. 문학의 몫. 말 그대로의 공명./ 진정한 내적 변화의 가능성은 공명하는 순간 없이 오기 힘들다.’(p126)
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를 생각해본다. 한 편 한 편의 짤막한 글에는 아프다고 외칠 수조차 없는 이들의 고통이 담겨있는데, 이들의 외침을 공감하고 대변하려는 작가의 따스한 노력이 감동적이다. 대부분 한 페이지로 서술되어있는데, 사회적인 사건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한 페이지로 이리도 적절하게 표현해낼까 감탄하고 제목의 적절성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산문을 시처럼 쓰는 사람이구나. 현대사적인 사건들이 함축적인 시처럼 그려진 글이다.
그녀의 문장은 부드러운 듯 직선적이다. 통쾌하고 깔끔하다.
‘그러므로 산문 쓰기를 시나 소설 등의 본격 장르보다 ‘잡문’취급하는 어떤 경향에 대해 나는 단호하다. 잡문은 없다.’(p9)
‘분급이라는 말. 근래 들어본 가장 끔찍한 단어이다.’(p16)
‘ '오죽하면'에 떠밀린 죽음은 타살이다.’(p17)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라니’(p18)
‘당연한 일을 위해 너무 많은 수고가 필요한 사회’(p41)
‘아프면 먼저 울어야 한다.’(p169)
그녀의 문장은 또한 선동적이기도 하다. 읽는 이에게 무슨 행동이든 하라며, 그래야 하지 않겠냐며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언제나 말할 때는 지금이며, 행동할 때는 지금이다.’(p32)
‘온 힘을 다해 1보를 걷는 오늘의 행위가 오늘의 진심이다.’(p60)
‘약자의 무기는 연대다.’(p171)
‘백만 마디 말보다 한순간의 숨결, 따스한 포옹이 일상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살림'은 그런 공감과 따스함으로 힘을 얻어 움직인다.’(p199)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냐며 스스로의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p60)
‘저마다 하나씩의 우주인 우리도 서로에게 각각 알맞게 우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 맛 우러나는 사람! ’(p256)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폴 발레리’(p9)
표지를 바라본다. 처음 보는 순간 새를 연상시켰던 천사의 눈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겉표지를 걷어내고 연두색 바탕에 웅크리고 있는 천사를 바라본다. 파울 클레의‘It weeps’란 제목의 천사이다. 눈물을 흘리는 천사라. 가냘픈 전체를 보기 위해 표지를 걷어낸 손짓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작은 걸음이 필요하리라.
책꽂이에 책을 꽂다가 제목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는 것을 발견한다.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이 책의 왼쪽에는 아마도 숨겨진 또 하나의 제목이 있었을 거라고. <부상당한 천사를 바라보는 당신에게>라는.
온 힘을 다한,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날갯짓. 책갈피 사이에 곱게 접혀있던 나비 날개가 책을 펼칠 때마다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 그것은 336페이지를 건너온 나비 효과처럼 마음속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잡념 없이 100퍼센트 밥 먹고 잠잘 땐 100퍼센트 잠자기. 100퍼센트 슬퍼하고 100퍼센트 즐거워하기. 100퍼센트의 순간이 많은 인생이라면 자기가 만들어온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등불처럼 영혼을 인도하겠지. 봄날 나비의 100퍼센트 날갯짓처럼! ’(p275)
* 눈에 띄었다..
p91, 마지막 문장 : 마침표가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