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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유영광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6월
평점 :
우리은하는 위에서 보면 막대 나선 모양이다. 물론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지구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통해 전체모습을 유추할 뿐이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건물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무엇이든 전체를 보려면 대상으로부터의 적정거리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는 일정한 거리에서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삶을 객관화할 수 있다.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와 공감하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의 삶에 기준점을 두고 바라보기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빠져있을 때 보이지 않던 모습을 발견한다. 이야기의 힘이다.
판타지 소설『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은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 여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반지하에 사는 여고생 세린. 하나뿐인 동생도 가출 후 소식이 끊긴다. 객관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워 보인다. 주인공은 장마 기간에 열리는 도깨비 상점에 초대받는다. 불행을 팔고 원하는 행복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도깨비가 나눠준 구슬에 자신의 불행을 담아 불행 전당포에 판다. 대가로 금화를 받아 여러 상점을 이용한 다음, 원하는 삶이 담긴 구슬을 득템하는 방식이다. 골드 티켓을 지닌 주인공에게는 미리보기 특혜가 주어진다. 상점 투어에서는 세린이 기대하는 삶의 미리보기와 상점 주인 도깨비들과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고등학생에게 행복해 보이는 삶은 좋은 대학에 가는 거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미리 보니 상상과는 다르다. 좋은 대학? 취업이 문제다. 기대한 삶이 아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유명한 회사? 야근이 일상이다.
내 이름으로 된 가게? 경쟁 가게들로 인해 삶이 불안정하다.
편하고 안정된 삶? 답답하다.
자유로운 여행작가? 외롭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 돈 문제로 연결된 현실에 민낯이 드러난다.
돈? 돈을 버느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어떤 삶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진정한 행복의 본질을 깨닫는다. 세린의 여정에 매번 함께하다 자신이 준 상처로 떠나버린 고양이 잇샤의 사랑을 떠올린다. ‘잇샤만큼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주세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행복의 구슬은 처음에 불행 전당포에 맡겼던 자신의 구슬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질문이다. 문학 작품에도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꾸준하게 담긴다. 결론은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비슷하게 연결 지으면 ‘카르페 디엠’이랄까. 여기에 행복이 있으니 이 순간에 충실하며 현재를 즐기라는 것. 이론은 완벽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수시로 몰아치는 바람에 우리는 자주 흔들린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얼음처럼 딱딱해진다. 시린 마음에 위안을 주는 대상을 찾는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좋아하는 음악, 따뜻한 그림,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 등. 그중 한 가지가 ‘이야기’라 생각한다. 과녁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처럼 각기 다른 방식의 이야기가 굳어진 심장의 외피를 깨뜨린다고. 가까이 있던 파랑새로, 어린 왕자의 장미로, 도깨비 구슬로. 한 편의 이야기는 온기 어린 작은 빗방울이다. 잔잔한 빗방울이 마음을 계속 두드릴 때, 심장은 조금씩 말랑해지리라.
몇몇 비유와 표현에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배어 나온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작은 이물질을 오랜 시간 감싸서 아름다운 진주를 만든다는 대왕조개,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는 꽃과 나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메꿔갈 수 있는 구멍 난 양말 같은 인생 등이다. 담백한 문장이 건네는 여운이 짙다.
소설 속 도깨비들은 인간에게서 여러 가지 마음을 훔쳐 온다. 중요한 순간에 침착한 마음, 결정하는 마음, 칭찬, 진심이 아닌 칭찬, 포기하고 싶은 마음, 배려, 원망하는 마음, 용기를 주는 말, 남을 무시하는 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속삭이는 말, 엄마들의 잔소리, 다음에 얼굴 한번 보자는 거짓말, 남몰래 흘린 눈물과 땀, 쉬는 날 씻고 싶은 마음, 호기심, 반대로 바꿔놓는 마음, 밤에 잠들려는 마음, 욕심, 자존감 등. 다양한 마음들을 따라가며 내 안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에 디저트까지 깔끔한 코스 요리를 맛본 기분이다. 전개되는 이야기의 분량 안배가 적절하다. 서론, 본론, 결론이 명한 논설문의 소설 버전을 읽은 듯하다. 서론에는 불행해 보이는 주인공의 환경과 도깨비 상점을 방문하게 된 이유, 판타지 세계에서의 규칙을 설명한다. 본론에서는 행복 찾기 여정이 전개된다. 무지개를 염두에 둔 듯하다. 주인공이 방문하는 상점의 수는 일곱 군데이며 원하던 삶에도 일곱 가지 요소를 담는다. 결론에는 미스터리한 냄새를 풍기며 간간이 투척했던 떡밥을 깔끔하게 회수하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선명한 결론을 내린다.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에 흡인력이 있어 가독성이 매우 좋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대도 상상이 될 만큼 역동적이고 동화적이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요소가 있다. 작가는 코스마다 개성적인 도깨비들과 주인공의 교류 과정에서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요. 주인공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목구멍까지 차올라 찰랑거리던 울음, 온통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 텅 빈 공허로 가득하던 상실, 걸어도 걸어도 발바닥에 찐득하게 붙어오던 의무, 가면처럼 쓰고 다니던 무표정, 한여름에도 한겨울 속에 있던 외로움, 자유롭게 날고 싶은 날개를 아래로 끌어당기던 지긋지긋한 중력, 너무 까마득해 마침표를 찍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던 시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런 삶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숨 막힐 듯한 관성이다.
불행의 그림자 같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본문을 지나온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천천히 읽는다. ‘당신만의 빛을 찾아주는 무지개 구슬’을 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에 울컥한다. 소설의 영어 제목은 ‘The Rainbow Goblin Store ’로 무지개는 상징성을 띤다. ‘비가 거세게 내릴수록 찬란하게 빛나는’ 대상이고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것에 대한 신의 선물’이며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의미’를 지닌다.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을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굴절률이 각기 다르기에 태양 빛이 나누어지는 현상이다. 어떤 이가 무지개 안에 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여러 개의 물방울과 그 위로 내리쬐는 빛만 보이리라.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눈물방울인 듯 물방울만 떠 있을 때 찬란한 무지개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지나온 당신도 나도 지금 무지개 안에 있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가 그 안에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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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5, 밑에서 3째줄: 주의를 → 주위를
p89, 밑에서 2째줄: 하는데 → 하는 데
p312, 밑에서 3째줄: 쌓인 → 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