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사이로 갈라지는 햇살처럼

내 마음도 혹시나 잘게 스러질까

푸른 향기 가득한 하늘 향해

부치지 못할 편지를 띄워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마음과 마음이 마주보는 일이

차마 먹먹한 일이 될 수도 있어

 

메마른 낙엽이 된 눈물이

마음 바닥을 굴러다닙니다

 

가을 품고 자유로운 바람에

이 마음 한 움큼 실어보내면

그대 숨쉬는 세상을 향해

손끝이라도 스칠 수 있을까

한가득 그리움을 다시 띄워봅니다

 

 

* 2016. 10. 9. H백일장,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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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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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했다. 요즘은 왜 이리 울컥하는 순간이 많은 지. 세상을 향한 감정의 가닥이 강아지풀처럼 섬세해진 기분이다. 한 줄의 문장에도, 한 마디 말에도, 손바닥의 마주침에도 코끝이 찡해진다. 아까 오전만 해도 나를 멈춰 세우고 손 크기를 비교해보곤 제 손이 더 크다며 좋아라하는 여학생에 울컥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 손답지 않게 습진에 걸린 듯 군데군데 허물이 벗겨진 건조함을 맞대는 순간 갑자기 찡해지는 거다. 이 책이 그랬다. 책 속에 있는 두 문장이 팽팽하던 마음의 줄을 튕겼다. 그렇게 생긴 진동은 오랜 여운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합니다.(p9)’서문의 말미에 있는 문장이다.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나 갱년기인가 봐.’라 말한다.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다. 눈도 쉽게 피로해지고, 날밤을 세워도 끄떡없던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 자꾸 뭔가 잊어버리고, 완벽함을 자랑하던 일처리에 간혹 허술한 구멍이 뚫리는, 뭐 대략 이런 증상들이다. 그래서 가끔 울적했다. 내년이면 오십의 나이에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와 같은 부류의 생각이 한가득 일 때, 이 문장을 만났다. 저자를 향해 되묻는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한가요? 얼굴조차 모르는, 앞으로 만날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물론이죠! 라며 따뜻한 목소리로 답해줄 것만 같다.

 

두 번째로 나를 흔들던 문장은 그냥에 관한 것이다.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듯하다.(p33)’순간이동으로 그 때, 그 날, 그 순간으로 날아간다. 꽤 오래전에 그저 좋은 사람이 있었다. 온종일 생각나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머물던 사람.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것은 몇 번의 심호흡 끝에 겨우 나온 몸짓이었다. 만나면 늘 조심스럽던, 거슬러 올라가면 설렘으로 가슴 뛰는 사람이었다. 넘쳐나는 마음을 담고 있기 버거웠던 어느 토요일, 그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뭐라고 보낼까.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정제하고, 1시간을 고민한 끝에 드디어 전송버튼을 누른다. “그냥..” “뭐예요ㅎㅎ그가 피식 웃으며 몇 문장을 더한 가벼운 답문을 보내왔다. 그는 아마도 이 두 글자와 말미에 이어진 두 개의 점이 지니고 있던 무게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을 매달고 있는 그냥이란 말은 그래서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단어이다.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p34)’라는 말의 깊이를 알기에 이 책의 나머지 90%를 읽기도 전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말과 글과 행에 관한 에세이다. 말은 마음에 새기는 것(p10)’, 글은 지지 않는 꽃(p11)’, 행은 살아 있다는 증거(p12)’라는 부재로 일상의 경험이나 단상을 어원과 유래를 섞어가며 산책하듯 서술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p8)’란 말처럼 그의 언어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p18)’란 말에서는 토닥토닥 아픈 배를 문질러주는 엄마의 까슬까슬한 손길이 연상된다.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 내가 아팠던 만큼 상대방의 아픔에 좀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리라. 가끔씩 찾아오던 아픔의 순간을 더듬어본다. 아팠던 만큼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글을 쓸 수 있겠지. 겪어온 모든 일들이 꼭 필요한 것 이었겠다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스티비 원더의‘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p306)’가볍게 흥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생경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별 감정 없이 흘려듣던 노래였는데, 왜 눈물이 핑 도는 걸까. 우연히 마주친 일화가 떠올라서일까.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했던 그는 사랑하는 딸과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성공한다 해도 15분 정도밖에 보지 못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한다. 안타깝게도 수술은 실패로 끝났지만 딸아이를 위해서 눈이 보이는 척을 했다나. 안 보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언젠가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공연 장면에서 멋으로 쓰고 나온 줄 알았던 선글라스의 진실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음악에서는 밝은 에너지가 풍겨 나온다. ‘향기의 매력은 퍼짐에 있다.(p293)’더니. 더없이 행복한 향기가 퍼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이 담겨있을까. 삶의 배경을 알고 듣는 노래는 더한 깊이로 마음을 울린다.

 

글쓰기는 그림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공통분모는 그리움이다.(p116)’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며 시를 쓰거나 독후감을 쓰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담겨있기도, 감정이 담겨있기도, 내가 담겨있기도 했다. 그것이 그리움이었나. 어떤 그리움은 따뜻했고, 뜨거웠고, 아팠다. 또 다른 그리움은 무지개로 빛났고, 무채색으로 가라앉았다. 부드럽고, 투박하고, 뾰족한 그리움도 있었다.

저자는 언어의 온도를 얘기했지만, 언어에는 색깔도 있고, 감촉도 있고, 향기도 있다. 언어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극이다. 나의 언어는 다른 이에게 어떤 감각으로 느껴질까. 내 삶의 장면과 겹쳐진 글이 다중노출사진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더해져서 공명을 일으킨다면 좋겠다. 나의 그리움이 다른 이의 그리움과 겹쳐지는 순간이 온다면 마음이 한결 따뜻해질 것 같기에.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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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경험이라도 글로 기록해두면 좋아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가 사진 찍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쓴 글을 읽으면 부끄러워요. 마치 어린 시절 제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요. ^^

나비종 2017-06-01 13: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글로 기록해두면 당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재현되거든요. 사진 찍는 행위와 같다는 말씀, 적절한 비유이십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면 풋사과 맛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어찌나 진지 모드였던지^^;;
 
물 흐르고 꽃은 피네 -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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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맑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가끔 눈물이 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다 지나간다. 적당히 갈라진 햇빛의 가느다란 살은 강아지풀처럼 눈썹을 스친다. 언뜻 흘러드는 초록 내음은 한 입 머금은 솔잎차인 듯 향긋하다. 치열하게 붙들고 놓지 못하는 욕심과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라 한다. , , , 나를 둘러싼 세상이 부드러운 촉수로 마음을 건드린다.

그냥 눈물이 났다. 앞표지의 연꽃봉오리가 뒤표지에서는 서서히 벌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한다. 슬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마음을 묶고 있던 끈이 사르르 풀린다. 시간의 힘에 기대어 스스로를 잘 토닥이며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 조금은 힘이 들었나보다.

 

읽을수록 지식이 쌓이는 책이 있는가하면 비우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304페이지의 책장을 넘기면서 304번 마음을 비웠다. 진공청소기로 휘리릭 청소하는 것과는 다른, 오래된 빗자루로 마음 구석구석을 정갈하게 청소하는 느낌이다.

차례를 본 순간,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본래 마음, 내려놓음, 무문관, 좌선, 스승, 도량, 발심, 묵언, , 자비, 비움, 수행, 무심, 공양, 공동체, 선업, 무아, 도반, 대의단, 깨어있기, 공생, , 무상, 깨달음, 초심. 25개로 이루어진 소제목은 화두가 되어 마음에 점을 찍는다.

 

이승우 작가의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가 생각난다.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가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관련된 이야기로 삶을 풀었다면, 이 책은 한자 구절을 제시하고 불교적 관점에서 삶을 말한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도 결국은 하나로 모아진다. 어느 것이 더 낫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기 매력적인 책들이다.

 

책 제목처럼 내용이 물 흐르듯이 마음으로 흘러든다.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를(p3, 270)’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종이의 원료가 된 나무들에게 미안(p7)’해할 수 있는 걸까. 무심코 지나치다 다시 되짚으며 그 의미를 되새겼을 때, 철렁했던 문장이다. 이제껏 읽어온 어떤 작가의 글에도 이런 관점을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물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용되었을 수많은 재료와 정성을 떠올린다. 어떤 물건이든 더욱 소중하게 다루고 아껴야함을 깨닫는다. 밥을 먹을 때도 생각난다. 한 톨의 쌀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 깃든 바람, , 햇살, , 농부의 손길을 상상한다.

사람마다 발 아래 맑은 바람 불고 있네.(p16)’라는 문장을 읽으니 어쩐지 내 운동화 아래에서도 맑은 바람이 한 줄기 흘러드는 것 같다.

손 모양과 마음의 상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p24)’고 한다. 합장하듯 두 손을 모아보고, 따뜻해진 두 손으로 스스로를 감싸본다.

깨끗하고 단정한 공간에 맑은 기운이 깃든다.(p67)’는 말씀이 마음에 흘러드니 곧바로 몸이 움직여진다. 한동안 미뤄왔던 불필요한 서류더미를 파쇄 한다. 얹힌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하다.

향은 불에 타고 차는 끓는 물에서 우러나옵니다.(p253)’는 글 앞에서는 스스로를 태워야 빛과 열을 낼 수 있는 별을 생각한다. 향기로운, 서서히 우러나는 차와 같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은 아픈 곳에 있다.(p153)’. 이 짧은 문장에서 오래 머무른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내 마음이 거기로 가 있는 것이구나.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 지 알 것 같다.

자연은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교과서이다. ‘지난해 가을의 열매를 생각하지 않는(p280)’나무,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행복한 시간(p10)’이 되는 봄 앞에 내 삶을 비추어본다.

문장을 따라 흐르다보니 마음에 소박한 꽃이 핀다.

 

참사람의 향기는 금강 스님이 계신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2005년부터 진행되어온 일반인 대상 참선 수행 프로그램이다. 1회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올해로 100회를 맞이했다고 들었다. 78일 동안 묵언하면서 수행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말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가끔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온다.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 말 수를 줄여본다. 말을 덜 하니 사람들의 말이 더 잘 들린다. 다른 감각이 깨어나 이제껏 말들에 가려 무심코 지나치던 새로움이 보인다. ‘참사람의 향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후기가 자꾸 나를 유혹한다. 버킷리스트 하나가 추가된다.

마음도 쉬어야 한다. (중략) 우리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이 순간을 보는 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다.(p282)’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쉰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이 순간의 나를 본다. 한결 가벼워진 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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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 창비아동문고 287
진형민 지음, 주성희 그림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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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주인공이 어린이이고, 아이들의 용어로 쓰였다는 점만 빼고는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성인 소설 못지않게 묵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투명한 문장 앞에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진형민의 동화는 언제나 개운하다. <기호 3번 안석뽕>을 시작으로 <꼴뚜기>,<소리 질러, 운동장>등 이제껏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일부러 이름을 검색해서 책을 찾는 몇 안 되는 저자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세 친구가 돈을 벌기위해 세상에 뛰어들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동화이다. 시종일관 유쾌함이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취향을 저격하는 문체이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우면서 직선적이다. 가벼운 촌철살인이랄까.

 

하루 종일 마늘을 깐 대가로 만 원을 받는 초원이의 할머니, 순진한 초등학생을 속인 대가로 이득을 챙기려는 전단지 사장, 먹이사슬을 연상케 하는 삥 뜯는 언니들, 돈 많은 부모님을 만나 영어 단어 한 개를 외우는데 200원을 받는 반장.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삶을 통해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어른의 모습이 부끄럽다. 초등학생인 줄 뻔히 알면서 일을 시키는 전단지 사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택배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떠오른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시급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청년들이, 백화점 입구에서 흰 장갑을 끼고 교통정리를 하는 청춘들이 생각난다. 그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알바천국이 되는 적나라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대학교 1학년 때, 과외를 하여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졸업 때까지 과외를 했다. 3학년의 어느 주말에는 세 탕을 뛴 적도 있다. 20세 이후 주말마다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주말이 싫었다. 내게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라 일을 하는 날이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식당 서빙을 하던 어머니 앞에서 힘들어하는 마음은 차라리 사치였지만, 힘든 건 힘든 거였다.

몸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마음이었다. 지겹도록 공부했던 영어나 수학을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 아이들에 속이 터졌던, 돈 많은 부모를 만난 그들이 부러워질 때마다 가라앉던 그 마음들이. 그 때 생각이 나면 가끔 울컥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일한 시간 대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월급날 즈음만 잠시 통장에 머물다 가는 숫자들을 볼 때마다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분명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가끔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들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일 때면 다른 일로 돈을 벌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6살 위의 직장 동료는 이 나이에 어디서 이만큼 돈을 버냐 하신다. 지금 그만 두면 어디 써주는 데도 없다며 힘닿는 데까지 다니라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신다.

2017년의 최저시급 6,470원을 생각하면 내가 하는 푸념은 너무나 배부른 소리임을 안다. 어쩌면 저쪽에서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채로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알바생은 그보다 훨씬 적게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낮 동안에는 수시로 열 받는 순간들이 난무하지만,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도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고 했으니. 퇴근 후에라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한편으로 다행인건 맞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 계속 재미있게, 거짓말하지 않고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오래오래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을 텐데.(p148~149)’라는 문장을 읽다 보니 꿈을 꾸고 싶은 거다. 생계형 맞벌이라 돈을 벌지 않으면 가정 경제가 무너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은, 글로 돈을 벌고 싶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글만 써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글짓기대회에서 1만원의 문화상품권을 받고 벅찼던 기쁨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는 꿈을.

욕심이 생겨서 문제인데, 이런 마음이 욕심이 아닌 것이 되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욕심이 또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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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이승우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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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나 청력이란 말은 있는데, ‘후력, 미력, 촉력은 왜 없을까. 오감을 떠올린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피부감각. ‘이 의미하는 미묘한 차이에 주목한다. 시력 검사나 청력 검사는 건강검진에서도 하지만, 후력이나 미력, 촉력 검사는 없다. ‘! 이 냄새가 얼마나 구린가요?’ 상상해보니 좀 웃기다. 측정하기 애매할 수 있겠다.

혹자는 인체 구조를 빗대어 보는 것듣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코와 입은 한 개인데, 왜 눈과 귀는 두 개나 있는지 아느냐며. 객관적인 말들을 차치하고라도 주관적으로도 눈과 귀는 중요하다. 좋아하는 책과 음악과 미술을 가까이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감각이니.

 

<사랑의 생애>를 읽고 저자의 작품에 호기심이 생겨 선택한 책이다. ‘보는 것에 대한 에세이로 읽었다. ‘신앙과 문학과 삶에 관한 사색이라는 부재가 붙어있지만,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서술어는 보다였다,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디를 보아야 할지,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상대를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영혼의 창으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1눈 맞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과 만난다.(p98)’며 영혼과 마주치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는 부딪쳤을 뿐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 모르는 사람들이다.(p37)’ 인용된 김광규의 시에서 진정한 존재의 마주침을 생각한다. <아는 여자>라는 영화 제목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본다고 해서 상대를 진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다고 해도 알지 못하는 관계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시간은 물과 같다. 흐르는 물과 같아서 반복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막 낼 수도 없다.(p58)’는 문장에서 소설 한 편을 떠올린다. 김중혁의 단편 소설 <요요>에서 시간에 대한 내용을 읽고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이런 시각으로 먼저 시간과 시계를 바라보았구나.

 

2신의 일식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포함되어있다. 1,2,3부의 전체적인 구성이 성경 구절에서 시작된 일화와 서술이라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이지만, 종교가 없는 내가 읽어도 거북하지 않다. 성경과 비슷한 무게감으로 곳곳에 인용된 시나 문학 작품의 영향 때문일까. 성경과 시의 구절이 공명하면서 일상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마르틴 부버의 <신의 일식>이라는 관점에 놀란다. 달에 의해 태양이 가려지는 일식처럼 신의 존재도 여러 장애물에 의해서 가려져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흐린 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볼 때마다 그 위에 여전히 빛나고 있을 태양을 상상하곤 했는데, 이런 현상을 종교와 결부시킨 사람도 있다니.

정현종의 시을 인용하면서는 창이 부재에 가깝게 투명할 때, 우리는 창을 잃는 대신 그 창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다. 창이 투명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창을 얻고 그 대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p140~141)’라 쉽게 풀이해준다. 내 영혼에 대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는 마음을 생각한다.

하늘은,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에만 하늘이다.(p159)’라는 문장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세상이 갑자기 넓어진다.

 

3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인용된 이 문장은 사막으로 비유되는 삶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황량하고 건조하고 막막한 사막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샘이라니. 힘을 내어 삶을 걸어갈 수 있게 다독여주는 말이다.

남극 대륙 빙하의 4km 아래에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가 있다고 한다. 보스토크 호수. 영하 60의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수백 만 년 단절된 230km 길이의 호수. 학자들은 지열에 의해 빙하의 하단부가 녹아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호수가 만들어지는데, 우리의 삶에도 샘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이 많다. ‘전시가 삶이 되었다. 가진 것을 전시하고, 전시하기 위해 가지려 한다.(p245)’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있던 몇 년 전이 생각난다. 음식을 먹기 전, 접시를 재배열하고 가장 먹음직스럽게 사진을 찍은 후에야 젓가락을 들 수 있던 때도 있었지. 그 때를 회상하며 잠시 웃는다. 맛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는데. 전시용 사진에 맛이 담기는 것은 아니었으니.

 

드라마용으로 구매했던 안경을 일상에서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노안이 오고 있는 건가 싶어 살짝 우울해하는 중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임을 알고 있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게 될 원인이 눈이 피로해서일까봐. 가능하다면 오감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라는 감각이기에.

오래도록 시력이 유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향일 것이다. ‘시선의 방향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p264)’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 문장이다. 내 삶의 방향은 내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일 것이고,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은 옮겨질 것이니.

어디를 바라볼까. 어디를 향해 갈까. 샘을 찾고, 샘을 바라보며, 샘을 향하고 싶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자그마한 샘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선 나의 샘을 찾고, 그 샘이 얼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저마다 품고 있을 샘을 찾고 싶다. 혹시나 얼어붙어 있다면 나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녹여주고 싶다. 그렇게 만들어질 샘이 곧 내 삶의 샘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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