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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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었습니다. 점심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잠을 잤습니다.’8세 때 썼던 그림일기의 문구이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 생각 없이 살아도, 생각을 하며 살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시지프 신화>를 읽어본 적은 없다. 돌을 굴리며 반복되는 형벌을 받는다는 신화. 도서 보를 찾아본다. 돌만 굴리는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서야 내용이 이리 길 수 없다. 돌덩이와 관련된 철학적 사유가 궁금해진다.

 

책을 볼 때마다 겉표지를 유심히 살핀다. 한 권의 책이 시작되는 지점은 1페이지부터가 아니라 표지부터라는 생각 때문이다.‘ : ’. 콜론. 그 다음에 무슨 말인가 쓰고 싶어지게 하는 기호. 표지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다. 동양화의 여백이 연상된다. 오직 글씨로만 이루어진 표지, 무채색의 구성. 조선 백자를 본 듯 솔직한 소박함이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했고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선택에는 '만약'이 남는다. (중략) 그 모든 '만약'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라는 답. (p91)’

좋은 사람과는 나와 공통점을 찾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는 차이점을 찾게 된다. ? 악을 좋아하네? 사진 찍는 것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작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 작가 마음에 든다. 사람의 일상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기록에 뭉클할 줄이야! 순간순간 삶에 뛰어드는 열정적인 모습은 수작업으로 만든 퀼트 작품을 연상시킨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삶의 걸음 사이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자유롭다.

 

우표를 모으고, 껌 종이를 모으고, 빵 봉지를 묶는 금속 끈, 봉지를 묶는 하얀 플라스틱, 냥갑과 편지지를 모았다.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나 기억도 안 나지만 꽤 진지했고 신상을 득템 했을 때 느꼈던 뿌듯한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대가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유는 하나다. .. 작가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동료의식을 느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냥이라는 말은 순수를 연상케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타당해보일 때가 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상상을 한다. 베토벤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장금이처럼 갑자기 미각을 잃는다면, 웹소설 주인공처럼 밀가루 알러지를 갖게 된 제빵사라면,...... 상상이 부챗살처럼 펼쳐질수록 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참 다행인 삶에 감사한다.

눈을 감고 걸을 때가 있다. 몇 걸음 못 가서 눈이 떠진다. 눈부시다. 이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머리 뒤 커다란 방에서 쿵쿵 울리는 음들이 심장을 두드린다. 나이 들면서 감각 기관은 무뎌지지만 시각과 청각은 제일 더디 쇠퇴했으면 한다.

 

카피라이터가 쓴 글 이어서일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15초로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광고는 단 몇 줄로 감성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와 흡사하다. 광고의 특성이 배어나오는 심플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록에 내 삶을 돌아보고 자꾸 움직이고 싶어진다.

도자기 만들기에 도전하고, 벽 사진을 찍는 작가를 상상해본다. 일상적인 수필인데 가슴이 뛴다. 연필 초상화를 배우고 싶던 20대가, 오카리나를 불고 싶던 30대가, 작사가가 되고 싶던 40대 초반이 생각난다. 좋은 가사는 와 같다는 생각에 요즘 시 쓰기에 도전 이다. 산문과는 또 다른 작업이다.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이 주는 무게감은 같다. 의 가치만큼 살점을 떼어준다 하고 무게를 재어보니, 사람이 온전히 저울에 올라가서야 수평을 이뤘다는 이야기처럼. 시는 단 한 줄의 행만으로도 마음을 울려야 한다. 서투르고 투박할 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열 번을 실패했다는 것만큼 가슴 뛰는 열정이 있을까.’자신감을 잃은 아이에게 이런 기를 해준 적이 있다. ‘여기에서 방점은 실..가 아니라 열..이야. 열 번을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해보았다는 얘기니까. ’아이는 뭔가를 얻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조만간 다시 시도를 할 것이고, 아마도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과 삶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리라. 경험과 시간은 손을 잡는 이에게 뭔가를 안겨주니까.

 

작은 감성의 떨림까지도 줄에 얹어 울리는 기타 소리와 같은 삶. 그런 삶을 글로 쓰고 싶다. 그래서 쓴다. 되도 않는 리뷰나 시일지라도, 지가 쓴 글에 지가 감동받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할지라도 개의치 않기로 한다. 고마운 책이다.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며 다독여주는 친구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김민철의 글이 주는 힘이다. 시지프처럼 인내의 시간을 통과하면, 마음에 새겨진 기록들이 눈처럼 쌓일 것이다. 마음이 화해진다. 어쩌면 나도, 쩌면 좋은 토양이 만들어질 어느 날엔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건네주는 글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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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지음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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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편하게 수업을 마친다. 매시간 실실 웃으며 주변 친구들과 속닥거리는 녀석의 책상 위에 교과서가 없는 것은 이미 당연한 일이다. 웃는 모습만 이쁜 녀석! 점심시간에 팔씨름을 하다가 팔이 잘못되어서 병원에 갔단다. 한 이틀 학교에 못나오더니 한동안 기브스를 하고 다닌다. 삼일천하가 된 수업시간, 녀석과의 실랑이가 다시 시작된다. ‘좀 더 푹 쉬어도 될 텐데, !’다친 아이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에는 청소년들이나 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수업을 방해하는 그 녀석보다 더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거나, 부모님이나 세상을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거나 어른들에 의해 상처를 입고 있다.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 가출 청소년, 오토바이 폭주족, 미혼모, 성폭행으로 죽은 아이,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는 아이, 섹스가 아무렇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도 무감각해진 아이들이다.

 

죽음, , , 섹스, 담배, , 냄새, 쓰레기. 책 속에서 줄줄 꿰어져 곰팡이처럼 떠다니는 단어들에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무 위에 뒤엉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매번 장식하는 전등이 생각난다. 전등에 꽁꽁 묶인 채 생기를 잃어가는 나무가 아이들과 겹쳐진다. 이런 단어들에 둘러싸여 눈물 대신 마음의 피를 흘리며 축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설이라는 표지에 둘러싸인 다큐적인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내게 온 작은 단어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지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p262)라고 한 말처럼, 김 봄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꼭꼭 씹어 드러낸다.

 

세상과 부모와 어른들은 절대 온도처럼 차갑다. ‘유일하게 자신의 붉은 속살을 제 몸에 붙여주는 녀석이었으니까요.’(p38, 무정) 라 하며 가족이 아닌 자신을 핥는 개에게서 온기를 찾고, ‘그러니까 차가운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아무리 추워도 너도 딱 거기까지만 차가워질 거야.’(p191, 절대 온도)라며 273에서도 위안을 찾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겨울 성냥팔이 소녀를 보는 듯 애처롭다.

 

그들에게 세상은 더럽고 잔인하다. ‘세상이 다 화장실 같다면서 말이다. 수완의 말이 맞았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만 가득하다.’(p97~98, 내 이름은 나나) 화장실만을 찾아서 나나와 섹스를 하는 수완의 행위는 세상에 대한 배설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삼촌은 씨방만 남은 사과를 빼앗아 들고 어금니로 으깨 먹었어요. 그 순간 삼촌이 짐승 같았어요. (중략) 왠지 모르게 삼촌의 모습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뜯어먹는 것처럼 보였어요.’(p119, 아오리를 먹는 오후) 성폭행으로 죽기 전에 엄마의 애인인 삼촌이 사과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소녀의 모습이 연두빛 아오리와 겹쳐진다.

 

엄마의 눈에서 파리지옥을 연상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천적과 같은 존재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조차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아닌 게 없는 방이었지만 나인 것도 없는 방이었다.’(p161, 문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먼 남인 것 같다.’(p230, ! 해피) 엄마를 남으로 느끼는 딸에게 엄마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없을 때, 부모는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p267)라는 말이 아프다.

 

이 책의 인물들에게 죽음은 허무하리만큼 쉽고 대수롭지 않다. ‘납작한 종이 인형이 죽은 것처럼 여자의 테두리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죽음 자체도 그렇게 간단해보였다.’(p41, 림보) 죽음의 현장을 일상의 공기처럼 들이마시는 형사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지하실은 유일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다. 제목이 왜 림보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여자의 모습, 낮게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실에서 림보를 할 때 취해야 할 자세가 연상된다.

그냥 등지고 나가면 되는 거야. 뭐가 어려워.’(p198) 팸을 결성했다가 의도치 않게 죽은 가출 청소년을 버려두고 몰래 도망가려는 아이들은 그들을 등진 세상과 섬뜩할 만큼 닮아있다.

 

작품을 해설을 하는 문학 평론가 강유정의 관점은 이 책의 핵심을 제대로 관통한다. ‘문제는 이 아이들의 속도가 파괴하는 것이 그들이 조종하는 세계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p271) ‘아이들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세상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p283)

어른들이 읽어야하는 책이다.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서정홍, p91)이라던 봄날 샘의 말씀도 생각난다.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무난하게 모범생의 길을 걸어온 교사의 시야를 넓혀준다. 부모들이 읽으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보는 순간, ! 이쁘다! 했던 책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얼마 전, 사이버 폭력에 대해 연수했던 강사가 한 질문이 생각난다. ‘수박은 초록색일까요, 빨간색일까요?’ ‘바나나는 노란색일까요, 흰색일까요?’표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책 안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상처를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문장도 생각난다. ‘스키드 마크 대신 수완의 피가 길게 수완의 그림자를 만들었다.’(p100, 내 이름은 나나) 자신의 존재를 피로 남길 수밖에 없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리더. 아이가 세상의 차가운 바닥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죽는 순간은 내 마음 속을 할퀴고 지나가며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학교에서의 그 녀석이 떠오른다. 이제껏 녀석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판단해왔던 건 아닐까. 녀석의 웃음 뒤에 또 다른 상처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마음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순간, 갑자기 녀석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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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 농부 시인 봄날샘과 산골 아이들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2
서정홍 엮음, 산골 아이들 시감상 / 단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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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고?” 친정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들려오는 첫마디이다. <밥 문나>를 읽은 순간, 엄마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때에는 이 질문이 얼마나 식상해보였던지.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아이도 아닌데 매번 물으신다며 참 싱거우시다 했다. 그런데, 갈수록 밥이 소중해진다. 밥이 감사하고 밥을 물어보는 순간이 행복해진다. 소박하고 따뜻한 여러 편의 시 중에서 <밥 문나>가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다.

 

이 책에는 봄날 샘으로 불리는 농부 시인이 지은 67편의 시와 그 시를 읽고 느낀 11명 산골 아이들의 짧은 글이 담겨있다. 식구, 동무들, 목숨, 생태, 더불어 사는 삶, 농부, 농사를 그려낸 정겨운 시와 이에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솔직 담백한 감상평이 조화롭다. 각각의 콜라보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먹먹한 느낌으로 가슴 한 복판을 조용히 두드린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19세는 그 나이에 걸 맞는 시각으로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돌아보고 문장으로 표현한다.

 

<겨울 문턱에서>를 읽은 고2 민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한 자신을 반성한다. ‘아버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p23) 라 말하는 마음이 울컥하고 대견스럽다. 민호를 바라보며 고2 때의 나를 떠올린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다니시느라 고생하셨던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후회는 늘 시간을 지난 후에 따라오는가. 좀 더 도와드렸더라면 좋았을걸. 불현듯 아쉬움이 올라온다.

농사를 짓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시는 자연스레 생명과 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한다. 작은 생명에게조차 저절로 머리를 숙이는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넉넉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는 김혜진의 소설 어비에 실린 단편 <치킨 런>를 연상시킨다. 죽기보다 살기가 두려운 사람들.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아리다.

<손금을 보면서>에서는 여러 갈래로 나 있는 손금을 사람이 사는 길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p122)라 표현한 시인의 발상이 놀랍다. 손금을 고작 잎맥으로나 비유하며 아이들에게 말하는 나를 본다. 같은 손바닥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표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임을 절감한다.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면서 좋은 일을 한 거 같았는데 오히려 죄책감이 들었다.’(p79)는 민호, ‘친구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친구를 인간 난로’(p81)라 표현한 경락이, ‘잘난 것들보다 못난 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시인의 체온은 몇 도쯤 되는 걸까’(p89) 궁금해 하는 심정이,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p91)이라 하신 봄날 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시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p173)고 말하는 기범이, ‘시가 길이 되고 위로가 된다.’(p123)는 수연이는 시인 못지않게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나와 함께 모든 것이>에 나온 나와 살던 모든 것이 / 나와 함께 늙어가나니’(p130)라는 문장은 깊은 중년으로 향해가는 나에게 토닥토닥 위로의 말이 되었다. 햇볕이 잘 드는 시골길을 천천히 걷는 듯했다. 함께 하는 내내 느린 화면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갓 지은 밥을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바라본 시인은 그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그 시를 바라본 아이들은 그 마음을 감상평으로 표현하고, 그 글들을 바라본 나는 그 마음을 또 다른 글로 표현하니, 도미노처럼 마음이 전달되면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냥 했어요.” 싱겁게 웃으며 말을 꺼내니, “밥은 먹었고?” 오래도록 듣고 싶은 소중하고 찡한 말이 귓가로 느리게 흘러들어왔다.

 

 

*오타

p150, <이름 짓기>12행에서

아침부터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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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혼자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정말 가족 없는 1인 시대가 된다면 ‘밥 묵고 다니냐?’라는 사소한 말 한 마디 나누면서 전화 통화하는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암울한 상상을 해봅니다.

나비종 2016-10-22 06:10   좋아요 0 | URL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만의 세상을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세상의 소리보다 스스로 선택한 소리를 듣고 싶은 거겠죠.
저 역시 자주 그러고 다니지만^^; 갈수록 대화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삭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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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불이 있다. 10여 년 전 생일 선물로 받았던 이불이다. 맨질맨질한 표면과 피부에 닿는 부드러운 면의 감촉에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었다. 여름에는 보송보송한 느낌에 좋았고, 겨울에는 내 체온이 고스란히 맴돌아 보온병 안에 들어앉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10년이라는 기간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여름이나 겨울이나 줄곧 덮어대니 어느덧 너덜너덜해졌다. 가장자리가 터져 솜이 삐져나온 부분을 꿰매고, 중간에 타진 곳을 또 기워 이제는 보수의 한계를 넘어서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덮고 싶은 이불이다. 뭐라도 되겠지가 딱 이 느낌이다. 포근하고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이불처럼 책을 읽는 내내, 읽고 난 후에도 여운처럼 남아있는 온기가 마음을 감싸준다.

 

사람의 일상이란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 한동안 수필을 멀리 했다. 내 삶을 돌아보기에도 벅찬 시간을 굳이 남의 넋두리나 자랑 질을 구경하는 데에 쏟고 싶지 않았는데 이 책은 달랐다. 통통 튀는 간결한 문체가 꿍얼꿍얼 괄호 안에 적힌 문구와 잘 버무려져 있다. 각주까지도 매력적인, 한 마디로 웃긴 책이다. 차례부터 일반적인 체계를 벗어나더니 352페이지의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장이 만화책을 읽듯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쉬는 코너처럼 끼어있는, 작가가 직접 그린 발명가 김씨의 카툰은 생크림 케이크에 놓인 미니사과처럼 상큼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까. 기발한 아이디어에 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요즘 보는 드라마 <판타스틱>에는 암에 걸린 여주인공과 역시 암에 걸린 그녀의 주치의가 등장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우울한 분위기에 눈물만 질질 짤 것 같은데 예상외로 유쾌하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함을, 삶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 있는 드라마이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글 중에서 삶에 대한 문장이 유달리 마음에 들어온다. 소제목 <낭비해도 괜찮아>는 소설쓰기에 있어 선택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삶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소설 속의 선택과 현실 속의 선택은 분명 다르지만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p40)’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삶이란 것도, 나를 주인공으로 인물만 주어지고, 사건과 배경은 끊임없는 선택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배경은 있지만, 본인의 의지에 따라 환경 역시 변화를 시킬 수 있으니.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인생을 써내려가는 소설가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p103)’

포기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무언가를 선택을 해놓고 그 절실한 결과물의 소중함을 등한시하고, 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자꾸만 돌아본 순간이 많았다. 어정쩡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까.

죽음을 앞둔 주인공에게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조차 너무나 소중하다. 소중함이란 이렇게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순간에도 담겨있음을. ‘, , ㄷ …’10칸 공책에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 글씨 쓰던 정성스런 시간도 있었건만, 언제부터 삶을 헐렁하게 듬성듬성 보내게 되었을까.

작은 스티커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수백만 명의 마음을 뒤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사건은 스티커처럼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p65)’

얼마 전, 강연에서 들었던 말처럼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을. 작은 순간도 작은 마음도 작고 소외된 사람들도 외면하지 않고 소중한 감동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작가는 뭐라도 되겠지라는 제목이 체념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게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제목만으로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웅크린 사람은, 뛰려는 사람이다.(p18)’

이 짧은 문장에 왜 그리 울컥했던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문장이다. 따뜻한 책이었다. 쌀쌀한 거리를 홀로 걷는 기분이 들었을 때, 시도한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우울했을 때,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로 마음이 복잡했을 때, 쏟아지는 일거리를 감당하기 버거웠을 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내 삶의 순간들을 책장 켜켜이 끼워 넣으며 읽다보니, 몸만큼이나 마음이 지쳤던 내게 빈티지 이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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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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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글씨일까. 며칠 동안 책표지만 바라보았다. ‘’? 아니다. 한글이라 하기엔 오른쪽의 획이 다소 어색하다. ‘’? 이번에는 왼쪽 획이 짧고 경사가 심하다. ‘’? 그나마 이 한자가 제일 비슷한데, ‘작을 소가 책의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책을 읽어본다. 이번에는 3명의 주인공으로 구성된 팀 이름 알렙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있는 이름일까. 검색해본다. 한글로 검색하고, 알파벳으로 검색하면서 드디어 며칠 동안 안고 있던 궁금증이 풀린다. ‘aleph(알레프)’.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자, 숫자로는 1에 해당하는 글자란다. 이 발견이 뭐라고! 은근히 뿌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답답함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이 글씨가 책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한 번 더 책을 읽어야했다. 세 번째 읽고 나서야 글씨가 상징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게 된다.

 

독일 나치스 정권의 요제프 괴벨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다가왔던 오묘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의 의지가 과연 조작하는 대로 움직여질 정도로 나약할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로 행동했다 하기에는 비인간적인 기록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한꺼번에 움직였던 거대한 군중의 힘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바보스럽게 각인된 채로 내 관심에서 잊혀졌다.

세 편의 영상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른 자료를 검색하다 알게 된 사회과학 실험이었다. 나치에 의해 움직였던 이들이 바보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나약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중을 교묘하게 움직이는 상황의 힘은 섬뜩한 전율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환상적인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지식채널e를 통해 방영된 영상이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사 존 론스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세 번째 물결이라는 실험이다. 10%의 나치로 홀로코스트를 일으킬 수 있었던 집단의 힘을 보여준다.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본능과 그 속에서 찾게 되는 안정감을 이용한 무서운 힘이다.

두 번째는 <상황의 힘>이라는 소제목으로 EBS <인간의 두 얼굴>에 소개되었다. 1971,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가 실시한 가짜 교도소 실험이다. 교도관과 수감자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상황의 지배를 받는지 알아보는 내용이었는데,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했다고 한다. 권위에 쉽게 무너지고 상황에 지배되는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는 <3의 법칙>과 관련된 실험이다.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한다. 역시 지나치는 사람들은 반응이 없다. 세 사람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제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세 사람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며 하늘을 바라본다는 내용이다. 세 명으로부터 출발되어 집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2세대 댓글부대 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인터넷 심리전에 관한 소설이다. 작가가 차례에 적힌 문장을 언급하면서 요제프 괴벨스를 말한 순간, 예전에 보았던 세 편의 영상들이 바느질을 하듯 차례로 꿰어지며 떠올랐다. ‘부대전쟁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이제는 빛의 속도로 달리는 댓글들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인간의 마음을 공격하는 시대이다. 그 댓글들은 ‘3의 법칙에 따라 의도를 품고 접근하는 3명에 의해 적절한 순간에 조작된다. 그리고 움직여진 대중은 묵직한 파도가 된다.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중략) 그게 언제인데요? 자기가 다수가 됐을 때요. (중략)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세 개만 연속으로 달리면 돼요.’(p77~78)

바닷물 싱겁게 만들겠다고 물을 퍼부을 수는 없어. 백만 명, 2배만 명을 한꺼번에 움직여야 해.’(p159)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해. 두려움과 죄의식. 백만 명, 이백만 명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p164)

 

첫 번째 읽었을 때에는 오아시스처럼 군데군데 심어져있는 야한 장면이 집중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침을 꿀꺽이며 하이틴 로맨스를 몰래 읽는 청소년처럼 숨을 죽였다. 당최 뭐가 빠르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땀 한 땀 박음질을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오아시스만 바라본 나는.

상당히 빠른 소설이라는 것은 두 번째 읽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스르륵 움직여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나타나는 사막의 사구가 보였다. 가까이서 본 모래 알갱이의 미세한 움직임은 숨 막힐 듯 긴박했다. 임상진과 찻탓캇의 인터뷰 내용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이야기의 흐름은 현실감을 주는 상황과 버무려져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치밀하면서도 깔끔했다.

세 번째는 다시 느리게 읽혔다. 아니, 느리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촘촘하고 묵직했다고나 할까. 그 사이로 영화 <베테랑>이 주던 시원함이 느껴졌다. 장면의 구성과 배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통쾌함이 아니라 전율이 일만큼 적나라하게 투영된 현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후련함이었다. 소설로 포장된 다큐 느낌이랄까.

 

인터넷 뉴스나 알라딘 서재에 올라온 글을 읽을 때, 본문만큼 댓글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은밀하게 숨어있는 메시지에 의해 나의 의지가 조작된 방향으로 흐를 지도 모른다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n분의 1의 댓글로 무수하게 매달리는 이들도, 그로 인해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시대라니! 세 번째로 읽었을 때, ‘aleph’를 바라보며 소설 <주홍 글씨>에 나오는 ‘A’를 떠올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댓글처럼, 현실에서 올리는 수많은 댓글이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투명한 주홍 글씨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댓글은 무거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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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3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폐쇄적인 성향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우물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문제가 `친목질`입니다.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심해지면, 소수의 의견이 무시당합니다. 그리고 서로 상반된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편을 갈라서 행동할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노리는 사람들이 더 무서워요. 갈등을 부추기면서 자신은 슬그머니 빠져 나와서 구경해요.

나비종 2016-09-30 20:16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서도 그런 상황들이 등장합니다. 여러 사례에서 어찌나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해서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자극하던지 몇 번이나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다름과 틀림을 명확히 구분하고,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알며,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더 깊고 넓은 내공을 쌓아야겠죠?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요?^^;

cyrus 2016-10-1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리뷰대회 당선 축하합니다. ^^

나비종 2016-10-19 12: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cyrus님도 2배로 축하드립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