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 농부 시인 봄날샘과 산골 아이들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2
서정홍 엮음, 산골 아이들 시감상 / 단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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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고?” 친정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들려오는 첫마디이다. <밥 문나>를 읽은 순간, 엄마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때에는 이 질문이 얼마나 식상해보였던지.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아이도 아닌데 매번 물으신다며 참 싱거우시다 했다. 그런데, 갈수록 밥이 소중해진다. 밥이 감사하고 밥을 물어보는 순간이 행복해진다. 소박하고 따뜻한 여러 편의 시 중에서 <밥 문나>가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다.

 

이 책에는 봄날 샘으로 불리는 농부 시인이 지은 67편의 시와 그 시를 읽고 느낀 11명 산골 아이들의 짧은 글이 담겨있다. 식구, 동무들, 목숨, 생태, 더불어 사는 삶, 농부, 농사를 그려낸 정겨운 시와 이에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솔직 담백한 감상평이 조화롭다. 각각의 콜라보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먹먹한 느낌으로 가슴 한 복판을 조용히 두드린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19세는 그 나이에 걸 맞는 시각으로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돌아보고 문장으로 표현한다.

 

<겨울 문턱에서>를 읽은 고2 민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한 자신을 반성한다. ‘아버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p23) 라 말하는 마음이 울컥하고 대견스럽다. 민호를 바라보며 고2 때의 나를 떠올린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다니시느라 고생하셨던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후회는 늘 시간을 지난 후에 따라오는가. 좀 더 도와드렸더라면 좋았을걸. 불현듯 아쉬움이 올라온다.

농사를 짓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시는 자연스레 생명과 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한다. 작은 생명에게조차 저절로 머리를 숙이는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넉넉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는 김혜진의 소설 어비에 실린 단편 <치킨 런>를 연상시킨다. 죽기보다 살기가 두려운 사람들.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아리다.

<손금을 보면서>에서는 여러 갈래로 나 있는 손금을 사람이 사는 길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p122)라 표현한 시인의 발상이 놀랍다. 손금을 고작 잎맥으로나 비유하며 아이들에게 말하는 나를 본다. 같은 손바닥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표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임을 절감한다.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면서 좋은 일을 한 거 같았는데 오히려 죄책감이 들었다.’(p79)는 민호, ‘친구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친구를 인간 난로’(p81)라 표현한 경락이, ‘잘난 것들보다 못난 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시인의 체온은 몇 도쯤 되는 걸까’(p89) 궁금해 하는 심정이,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p91)이라 하신 봄날 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시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p173)고 말하는 기범이, ‘시가 길이 되고 위로가 된다.’(p123)는 수연이는 시인 못지않게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나와 함께 모든 것이>에 나온 나와 살던 모든 것이 / 나와 함께 늙어가나니’(p130)라는 문장은 깊은 중년으로 향해가는 나에게 토닥토닥 위로의 말이 되었다. 햇볕이 잘 드는 시골길을 천천히 걷는 듯했다. 함께 하는 내내 느린 화면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갓 지은 밥을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바라본 시인은 그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그 시를 바라본 아이들은 그 마음을 감상평으로 표현하고, 그 글들을 바라본 나는 그 마음을 또 다른 글로 표현하니, 도미노처럼 마음이 전달되면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냥 했어요.” 싱겁게 웃으며 말을 꺼내니, “밥은 먹었고?” 오래도록 듣고 싶은 소중하고 찡한 말이 귓가로 느리게 흘러들어왔다.

 

 

*오타

p150, <이름 짓기>12행에서

아침부터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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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혼자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정말 가족 없는 1인 시대가 된다면 ‘밥 묵고 다니냐?’라는 사소한 말 한 마디 나누면서 전화 통화하는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암울한 상상을 해봅니다.

나비종 2016-10-22 06:10   좋아요 0 | URL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만의 세상을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세상의 소리보다 스스로 선택한 소리를 듣고 싶은 거겠죠.
저 역시 자주 그러고 다니지만^^; 갈수록 대화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삭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