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오케스트라의 협연과도 같다. 저자, 편집자, 표지 디자이너 등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특히, 이 책은 편집자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라틴어순으로 배열된 감정의 순서, 철학적인 해석이 들어가 다소 어려워질 때 '이게 무슨 감정에 대한 내용이었더라?' 할 때마다 페이지 옆에 쓰여었던 감정의 이름, 감정과 관련된 그림, 감정의 깊이를 더하기위한 소설과의 연관성, 소설을 지은 작가나 책 탄생의 소개, 쉬운 이해를 돕기위한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연도별 나라별로 배열된 소설리스트와 그림리스트 등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땅, 물, 불, 바람' 에 배치된 감정들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분노나 질투는 '불꽃처럼'에 어울리지만 감사는 좀 그렇다. 또, 라틴어의 순서대로 배열된 감정의 성격이 4개의 부와 12개씩 딱 맞추어 일치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읽는 이를 배려하는 세심함이 책을 읽은 느낌 못지 않게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48개의 감정들 중에서는 '끌림'에 대한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이라나.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는 것과 입맛이 맞아서 맛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사랑에 허기질 정도로 불행한 상태는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p406)"

살면서 만나왔던 수많은 친구들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과거의 어느 시점의 나는 허기졌던 걸까? 그래서 때마침 나타났던 사람들에게 끌림이 느껴졌던 걸까?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을. .
한 사람의 연애 패턴이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경우도 이런 '끌림'으로 이해가 되었다.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말만 한 줄 알았던 스피노자.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흥미있게 이끌고 가더니, 책 속에 등장할 때마다 점점 더 매력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이대로 몇 번 더 등장했다가는 <에티카>를 사서 읽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기쁨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슬픔을 주는 대상이라면 단연코 그것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여기서 '변덕'이나 '변심'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평판에 대해서는 '쿨'해질 필요가 있다.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없으니까.
그냥 지금 내 앞에 있는 타자가 기쁨을 주는지, 그렇지 않은지에만 집중하자.(p488)"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변화시켜가야 하는지에 대해 살짝 고민하던 나에게 이 문장은 좋은 지침서가 되어주었다.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과 악'이다.
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 준칙은 '좋음과 나쁨'이다.(p513)
내 삶에 경쾌함을 준다면, 그것은 '좋은'것이다. 반대로 삶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켜 내 삶을 우울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p514)"

이 책을 통해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 기쁨과 슬픔으로 양분되는 관계들, 사랑, 책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철학의 깊이가 다소 얕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점도 장점으로 다가왔다.

좋음과 나쁨은 사람에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리라. 한 권의 책에는 인간들처럼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를 얼마나 생각하게 하고, 내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참 좋은' 책이었다.

좋은 책은 주관적이다,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