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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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재난 문자 왔는데, 밖에 나가지 마세요.” “다 저녁 때 나갈 일 없지. 근데 퓨마가 뭐냐?” 지난 달, 동물원이 위치한 장소와 같은 동에 사시는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대전, 동물원, 퓨마. 세 단어가 순서쌍으로 번갈아 조합되어 인터넷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를 몇 시간동안 도배한 날, 자신의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알린 동물은 생애 첫 자유를 4시간 반 동안 누리고 8년의 생을 마감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p198)’ 작품 해설에서 축사란 말이 언급되어서일까. 뜬금없이 지난달에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나의 아이들이 오버랩 되어 마음을 잡아당긴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p11)’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미래를 설명할까. 이 땅에서 너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 글짓기, 그림그리기, 리코더 불기. 좋아하기도 했고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잘하는 축에 속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는 짐짓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토록 잘하는 것이 많은데 나중에 뭐를 하면서 살지? 4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미술이나 음악 계통을 전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어릴 때 살던 동네에 가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살던 곳이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스러웠다. 쓸데없는 우려였다는 건 몇 걸음 채 걷지 않아 드러났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면 번쩍이지는 못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흔히들 하는 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동네의 진입로만 포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골동품 같은 집 안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p103)’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던 건지,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 이 모두가 섞인 이유에서였는지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친정아버지께서 사업 실패로 10년 남짓 집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파출부, 공양주, 식당서빙, 공장 일부터 자잘한 일감까지 얻어 오셔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일을 하셨다.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p125)’ 어머니가 떠올라서 울컥한다. 실업계를 갈까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을 넘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버텼던 대학교를 넘어, 졸업하자마자 취직하기 위해 통신공사 공부를 하던 대학교 4학년을 넘어, 마음을 바꿔 임용고시를 보았다. 그리고 27년 째 이 자리에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기본적인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은 없으니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빨리 돈을 벌게 해야지 없는 형편에 자식들 4명을 다 대학에 보낸다고 이상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디뎌온 덕분에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종종 나는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나태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어머니의 40대50대를 생각하며 나를 추스른다.

 

이제 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어쨌든 큰 딸은 올해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고 두 달의 인턴생활을 거쳐 10월부터 정식 출근 중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금융회사를 다니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호주로 떠난 20대 청춘. 나의 아이가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영화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닥치게 될 수많은 불합리에 넘어지거나 힘겨워하지 않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뒤엉켜서 취준생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 상황이 마음 편하게 좋지는 않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다. 주말에도 학원을 몇 탕씩 뛰며 제대로 쉬지 못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모의로 진행하는 UN 행사에도 참여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장애인 단체에 봉사활동도 참여한다. 순수하게 좋아서 참여하는 마음도 있지만 썩 괜찮은 생기부를 구성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지금도 피곤함을 안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걸어가는 이 아이 앞에 어떤 커다란 장벽이 가로놓일지, 그것이 노력으로 넘을 수 있는 종류의 고난인지, 혹시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길은 아니었는지.

벼룩에 대한 실험이 있다. 벼룩이 뛸 수 있는 높이를 계속 제한하면 나중에 높이를 확장한 공간에 두어도 늘 뛰던 높이 이상을 뛰지 못한다는. 곰곰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결과이다. 계속되는 좌절로 혹시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 버릴까봐, 책표지 그림의 제목처럼 <방향도 목적도> 갖지 않게 될까봐, 나는 그게 겁이 나는 거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 속에서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p200)’ 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녀가 진짜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한국을 벗어나 호주로 떠나서가 아니다. 호주에서의 삶이라고 딱히 무지개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생각의 방점은 바로 스...에 찍힌다. 어디에 있든 그녀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걸어갔다는 점이다. 그 자발성이 행복을 자라게 하는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줄기와 잎이 사그라지는 혹한이나 혹서기가 다가와도 다시 새순을 돋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 말한다.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p184)’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억으로 만드는 행복과 순간순간을 살면서 만드는 행복이다. 나는 어느 쪽일까. 두 가지 다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성 행복이 더 크다. 주인공과 같다. 나 역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적어도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p186)’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퓨마 호롱이4시간 반은 어땠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 마음이 아픈 사건 아닌가. 이렇게라도 생각하기로 한다. 문이 열렸을 때 우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스... 자유를 찾아 걸어 나왔으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유로 잠시나마 행복했으리라, 행복했기를 감히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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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내게 묻다 - 당신의 삶에 명화가 건네는 23가지 물음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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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해서 펼쳐든 책에 대한 예전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몇몇 그림은 좋았지만 결들인 글들이 몰입을 방해해 도록을 사느니만 못했다는 씁쓸함을 안았던 기억이다. 요즘 들어 피곤한 날들이 이어졌다. 특별히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유달리 몰려드는 피로감에 점점 무기력해졌다. 재미가 없어.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단조로운 음으로 만들어진 배경음악이 깔렸다.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갈라진 강처럼 마음은 원인모를 갈증에 시달렸다. 가슴이 뛰지 않아. 사람이든 일이든 두근거리는 대상이 지금 내 앞에 없다는 것.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바로 이것이었다.

기대감이 제로인 상태에서 읽어서였을까. 기차여행을 하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는데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난 듯 신선한 책이었다. 무엇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날이 계속 되면 비행기 표를 끊고 먼 나라 미술관으로 여행을 간다는 <프롤로그>에 호기심이 일었다. 시선을 끈 부분은 무엇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날이라는 문장이었다. ! 요즘 내 상태와 싱크로율 100%인 표현 아닌가! 미술관을 순례하는 테마 여행이라. 콘서트나 뮤지컬의 현장으로 나를 데려다놓는 방법을 시도하곤 했는데 미술관도 꽤 멋진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런 여행도 괜찮겠다 싶었다. ‘자기 발견의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설고 새로운 상황과 처지에 스스로를 던져놓고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것(p70)’이란 말에 공감했다.

 

저자는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책을 뚫고 나와 나를 툭툭 건드렸다. , , 관계, 마음의 네 파트로 나누어 관련된 그림과 함께 독자에게 물었다. 살아가면서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스스로 질문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많은 질문이 던져졌다. 인터뷰이가 되어 책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공간에 나만의 대답을 올려놓았다. 때로는 자신 있게, 때로는 고민하며 나만의 답을 떠올렸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질문은 에 관련된 물음이었다. 옅어지던 일상의 색깔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Part 1, 나라는 물음표>에서는 당신을 설명하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떠올려보세요.(p61)’라는 질문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라... 나를, 나를. 50, 과학교사, 어깨보다 조금 긴 머리, 딸 둘의 엄마, 엄마의 둘째 딸. 외형적인 것이나 객관적인 데이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더라? 글쓰기, , , OST, 로코 드라마, , 콘서트, 베이스 기타소리, 드럼 소리, , 시리우스, 바다, 만화, , 핑거스틱, 케잌 위의 크림, 호박잎, 청국장, 그림, 클림트의 키스, 보라색, , 중저음의 목소리, , 제트스트림 1.0 파란색 볼펜, 엘라스틴 샴푸, 베이비파우더 향, 카리스마, 유머, 하늘, 햇살.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Part 2, 일이라는 물음표>에서는 지금 하는 일은 어때요? 재미있어요?(p88)’, ‘당신은 왜 그 일을 하나요?(p89)’라는 질문에 답을 했다. 지금 하는 일은 재미있는 것 하나, 재미없는 것 하나씩이예요. 직장 일은 재미없고, 퇴근 후에 글 쓰고 책 읽는 일은 재미있어요. 직업은 서글프게도 생계유지를 위해 하나 봐요.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진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글 쓰고 책 읽는 일은 그냥 좋아서 하구요. 그저 좋다는 이유로 하는 일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Part 4, 마음이라는 물음표>에서는 나는 나를 위해 꽃을 사본 적이 있던가?(p272)’라는 질문에 아니요.’ 라 답한다. 친구의 생일이나 각종 축하를 위해 꽃을 선물한 적은 많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나를 위한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었다. 조만간 꽃집에 가야겠다.

 

자기만의 방에는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없어야 한다.(p187)’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나서 가방 속에 넣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때문이다.

9월 말부터 지난주까지는 삼행시부터 시조, , 독후감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모전에 글을 응모하였다. 1학기가 지난 후에 올해의 목표를 점검해보니, 글쓰기대회에 한 번 밖에 안 나갔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 노출되면 안 된다고 하여 결과가 발표되면 올릴 작정으로 저장만 해놓고 스탠바이 중이다. 아침에 큰딸에게서 카카오 톡이 왔다. ‘엄마, 등교했어?’ ‘.. 출근이라고 해줘ㅋㅋ’ ‘ㅋㅋㅋㅋㅋㅋㅋ글짓기 지난주 아녔어?’ ‘떨어졌떰ㅠㅠ 2ㅠㅠ’ ‘오구오구, 고생해써.’ ‘이제 7개 기다리는 중.’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하나는...^^’

뒷부분에 생략된 딸의 말은 뭐 하나는 건지지 않을까?’정도일 거다. ‘아기는 걸음마를 배울 때 평균적으로 2천 번 넘어진다고 해.(p119)’ 지난 주 발표결과로 잠시 좌절했지만, 이 문장을 보고 힘을 얻는다. 과학을 전공한 내가 근본도 없이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아가만큼은 시도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떨어진 글을 공개한다는 것은 다소 뻘쭘한 일이다. 상 받은 것만 기분 좋게 올리고 싶던 것도 사실이다. 실패한 글, 서툰 글도 모조리 올린 것은 모든 경험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이다. 무모하지만 계속 도전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온기어린 글을 쓰는 멋진 사람이 되리라 기대한다. ‘하나의 없음을 용기 있게 드러낼 때, 누군가의 없음이 반응하기 때문이다.(p25)’ 이런 글도 라 말할 수 있을까. 알라딘 서재에 시를 업로드 할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 문장으로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시를 써볼 용기를 얻을 지도 모르므로.

 

<Part 3, 관계라는 물음표>에서는 대화에 관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대화를 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문장은 (중략) 3인칭 주어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략) 1인칭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와 마주하고 앉은 눈앞의 그대다.(p215~217)’ 이 문장을 읽고 난 다음 날에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3인칭 주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보였다. 계속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친구도 떠올랐다. 대화 장면을 떠올려보니 1인칭과 2인칭이 주를 이루었고, 대화의 끝에 나의 생각을 자주 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에 대한 취향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가. 예전에는 풍경화가 좋았는데 인물화의 매력이 확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은 인물화이다. 저자의 해설을 따라, 혹은 나름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았다. 고요함과 다이내믹함과 장조와 단조의 느낌이 다채롭게 뿜어져 나왔다. 뒷모습조차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소개된 그림 중에는 걸음마 하는 아기를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First Steps>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요즘은 꿈틀거리는 선과 따스한 색채가 좋아지나 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 나갈 삶의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많은 문장들이 비타민제가 되어 기운 없이 비틀거리던 마음에 조금씩 힘을 실어주었다. 그림에 관한 책인데도 인용된 문구가 좋아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받는 기분도 들었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를 읽고 싶은 책으로 메모했다. 인문학적인 사유가 담긴 글들이 그림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림은 다만 거들 뿐이었다.

특별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해서 특별해졌음을.(p344)’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지만 이 문장이 가장 좋았다. 이 생각 저 생각 일관된 주제 없이 적힌 독후감이지만, 이 글은 기록되면서 나만의 느낌이 담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글로 특별해졌다.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 준 이 책처럼. 시를 쓰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냥 스쳐 가면 잊힐 새벽 3시가, 날 좋은 일요일 아침이, 서운하거나 상처받은 순간들이 시에 담기는 순간 사진에 담기듯 저장되었지. 글로 붙잡히면서 날카로움은 더 이상 내 심장으로 날아들지 못했고, 따스함은 심장 너머 주변의 공기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가슴이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했다.

 

p327, 돗단배 돛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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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8-10-0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궁금했었던 책인데 덕분에 갈피를 잡았습니다. 이번달 책주문 할 때 같이 주문하기로 했어요. 고마워요 ^^

나비종 2018-10-09 02:09   좋아요 1 | URL
글과 그림의 균형이 잘 맞는 책입니다. 각각의 주제에 들어맞는 그림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구요. 저는 좋았습니다^^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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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뚜둑! 기지개 한 번에 관절이 존재를 알린다. 크게 펼친 두 팔. 손가락 끝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새삼스럽다. 쭉 늘어난 몸에 생긴 느슨한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민다.

 

매일 뭔가를 쓰기 시작한지 이십일 째다. 독후감을 한 편씩 쓰는 게 이상적인 그림이지만,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불가능의 영역임을 안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독후감은 나의 속도로 쓰고, 책을 읽는 중이면 주로 시를 쓰기로 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의 기록, 일종의 시 일기랄까. 초라한 작품들이 난무했지만 무모한 도전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중이다. 감히 작..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바탕 위에 우뚝 설 위대한 작품이 언젠가는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시적인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책을 만났다. <은유의 힘>은 은유에 대한 임금님 수라상이다. 외국 시부터 우리나라 시에 이르기까지 상다리 부러지도록 다양하고 고급 진 은유가 그득하다. 책을 읽어가면서 시를 짓다보니 나의 시가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듯 착각이 일었다.

실전으로 적용해볼만한 팁도 발견했다. ‘대상과 은유 사이가 벌어질수록 은유의 효과는 커진다.(p31)’ 좀 더 멀리, 더 멀리. 이 문장을 읽은 후로 나의 시에 반영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식상한 표현은 저리 가라! 새로운 시도를 찾아야 해. 나만 표현할 수 있는 팔딱거리는 횟감이기를. 마음을 조금씩 스트레칭 했다.

 

시인이 할 일은 이름이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르고, (중략) 이를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다.’(p5, 살만 루슈디) 이름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른다는 문장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버스, 아파트, 우산, 목백합, 꽃병, 어머님, 아이들, 친구. 사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들과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문장으로 나타냈다. 폐지 할아버지,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노점상 할머니. 존재에 걸 맞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대상들이 새털구름이 되어 마음속에 둥둥 떠다닌다.

좋은 시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 답을 얻었다.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꺼내는 것이다.(p18)’,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다.(p31)’ 나를 둘러싼 다양한 몸짓들이 순간적으로 들어와 마음속에서 버무려졌다. 때론 선명하게, 때론 뭉글하게, 뾰족하거나 포근한 향기를 내며.

 

시로 표현하는 대상이 내안에서 새롭게 탈바꿈되어 나온다면, 나의 시들은 누군가에게 눈물이기를 바랐다.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하는 이에게는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에게는 맑게 솟아오르는 눈물로, 홀로 감싸는 두 팔이 유일한 위안인 이에게는 가만가만 떨어지는 눈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게 바다를 줄 필요는 없다. 그에겐 차가운 물 한 잔이면 족하다.(p172, 울라브 하우게)' 생명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물은 아니더라도 대신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로 작은 토닥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두 가지가 불편했다.

첫째, 시도 은유, 해설도 은유. 기발한 은유는 철철 넘치는데, 저자가 시인이다 보니 소개하는 시들에 대한 해설까지 온통 은유라서 꾸역꾸역 소화하려다 배탈이 날 지경이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 내 눈은 몇 번씩 왕복달리기를 하며 헉헉 댔다.

둘째,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노시인에 대한 존경이 담긴 문장들이었다. 20177월에 출간된 책이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 발생 전이다. ‘삶과 시가 각각의 길로 따라 가지 않고 동일한 궤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p269)’는 문장으로 설명된 존재와의 괴리감을 느꼈다. 삶과 일치하는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직은 뱁새라서 종종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우두둑 굳은 뼈 벌어지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너무 거리가 벌어져서 당최 무슨 풍경을 묘사한 건지 알기 어려운 미스터리 시도 가득했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자꾸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유연해졌다. 벌어진 마음의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은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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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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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지났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잔뜩 적힌 열 두 장의 종이는 달력인 양 펼쳐져있다. 이 모든 문장들을 앵무새처럼 나열할 수는 없고, 화룡점정이랍시고 엄청 좋았다, !’이라 쓰기에는 심히 허무하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p201)’이라는데, 조각천만 잔뜩 가져다놓고 꿰맬 바늘조차 찔러 넣지 못하고 있으니. ‘천장의 높이가 높을 때 정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p217)’길래, 2.4미터 아파트보다 훨씬 천장이 높은 커피숍에 앉아있단 말이다. ‘하루 중에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판단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그때 해야 한다.(p378)’길래, 잠도 충분히 자고 아침밥도 배부르게 먹고 나와 이 절묘한 시간을 선택했다. ‘두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다른 과제를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p334)’길래, 잠시 시도 쓰고 돌아왔건만.

여전히 노트북 화면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데 주변에 있는 나의 뇌는 오른쪽 반원에 들어가 있다. 이 생각 저 생각들이 뒤엉켜 소용돌이친다.

 

이런 결정 장애 같으니라고. 뭐라도 써, 쓰란 말이야! 뇌에서는 계속 명령을 쏟아내는데 당최 아름답게 정리되지 않는다. 어릴 때 흐리멍텅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다. 자라면서도 여전히 우유부단하다 독서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어느 순간 말끔하게 치유가 되었건만. 예전의 흑역사가 슬금슬금 떠오른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p93)’는데, 막상 죽는다 생각하면 적어도 리뷰를 쓰다 생을 마감할 수는 없으니. 에잇, 이건 아니구나.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잠시 접어둔다.

공급된 에너지의 23%나 쓰인다는 뇌를 뭐라고 쓸까 고민하느라 써서 그런지 몇 시간 지나니까 배만 다시 고프다. ‘결핍이 욕망을 만든다.(p81)’더니 당 결핍으로 뭐라도 먹고 싶다는 욕망만 생긴다. 머릿속은 이미 빵 이미지로 빵빵하다.

태풍이 지나 간 듯 적나라하게 생생하던 마음을 사진처럼 보여줄 수는 없을까. 언젠가는 생각을 이미지화시킬 수 있다던데. ! 지금은 아냐. 잠시 산책하다 1차적인 식욕부터 해결하고 다시 뇌 속을 탐험해야겠다.

 

12시만 되면 호박마차로 전력 질주하는 신데렐라. ‘오늘이 되었음을 확인하면 나는 재작년 다이어리를 후다닥 펼친다. 한구석에 적어놓은, 지금은 없어진 Daum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140개 매뉴얼의 물레방아 돌리기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불과 관련된 것에 행운이 따릅니다.’라면 신호등도 불이라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오늘처럼 친구, 동료들과의 교제에서 해를 볼 우려가 있으니 인간관계에 주의하세요.’라면 카카오 톡 한 건을 보내는 데에도 손을 사리게 된다.

<여섯 번째 발자국,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에서 정재승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내린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p168)’ 때문이라고. 미신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찔리는 한편 안도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소소한 행운이 생기면 으흠, 그럴 줄 알았어.’라며 미리 알고 있던 점쟁이가 되고, 운이 없다는 문장을 맞는 날이면 종일 신경이 쓰인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p179)’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행복도 불행도 예측할 수 없을 때 맞이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공감을 했으면 이제는 과감하게 오늘의 운세를 끊어야 하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탈이다. 미리 확보한 140일치의 운세를 저금이라도 해놓은 듯 뿌듯해하고, 내일은 평소 원하던 사람이나 연인을 만나게 되는 운이라니 벌써부터 설렘에 입술이 실룩거리는 나는 과학교사다, .

 

과학교사로서 가끔 아이들에게 미래사회의 전망을 말하면서 답답했다. 어렴풋이 감은 오지만 어떤 말을 해주어야 아이들의 진로 탐색에 도움이 될까 늘 고민되었다. <여덟 번째 발자국, 인공지능 시대, 인간 지성의 미래는?>을 읽으니 속이 후련하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맞이해야 하는가를 얘기해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과학 시사뉴스를 소개해주고 의견을 발표시키면,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그들의 발표를 듣다보면, !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라는 무언의 외침을 듣는 것 같았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은 인공지능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데이터 자체를 검토하거나 결과를 해석하는 고등한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p240)’ 교육과정이나 현실의 제도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은 무겁지만, 이런 답이나마 제시해주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아홉 번째 발자국, 4차 산업 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를 통해 제4차 산업혁명의 정의를 명확하게 이해했다. ‘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p251)’

출연하신 TV프로그램이나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참 깔끔하고 스마트한 설명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걸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p261)’하는 것이고,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p270)’라는 것.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p278)’하므로 파격적으로 바뀔 시대에 살아갈 우리들은 뇌와 몸의 균형을 향한 갈구(p278)’를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매년 1231일과 11일에 올해의 반성과 내년의 계획을 세운다. <다섯 번째 발자국, 우리 뇌도 새로고침할 수 있을까>에서는 새해결심을 계획대로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한다. 올해 계획한 일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점점 깨닫게 되는 요즘, 타들어가는 한여름에 소나기를 만난 듯 했다. 계획이 너무 많았다. 내년에는 개수를 대폭 줄여야겠다. 계획을 어떤 식으로 세워야할지 감을 잡았다.

새로운 삶을 위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절박함새로운 환경이 포인트이다. ‘메멘토 모리는 나도 가끔 이용하던 마인드컨트롤이라 반가웠다. 주문을 외듯 몇 번 자기 암시를 하면 못할 게 뭐 있냐는 용기가 생긴다. 새로운 환경은 몇 년 전부터 시도하는 방법이다. 평소 가지 않던 길, 쓰지 않던 방법, 보지 않던 공연, 접하지 않던 책, 만나지 않던 사람 등 스스로에게 신선한 선물을 준다는 기분으로 도전한다. 분위기를 일부러 전환시키면 그 효과가 글에 묻어나온다. 놀랍도록 문장이 풍성해질 때가 많다.

 

안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특히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p219)’라는 문장을 마음에 새긴다. 독서는 꾸준히 해오고 있으니 계속 하면 될 것이고, 내년에는 여행을 중점적인 화두로 삼기로 한다.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는 알라딘 서재를 이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시나 리뷰쓰기로 나의 서재에 집중했는데, 이제부터는 다른 이들의 리뷰나 페이퍼도 많이 읽고 댓글도 열심히 달아야겠다. 글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댓글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알라딘 서재의 주인들은 댓글에 대한 답글을 성의껏 달아주므로 읽다보면 그들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보다 책을 훨씬 많이 읽으며, 글도 잘 쓰고, 지적인 이들이므로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아주 즐거운 소통이 된다.

 

일요일 밤 불을 끄고 누울 때 종종 생각한다. ‘학교가기 싫다.’ 마침 안방에 들어온 딸에게 삐까! 학교 가기 띠러염.”해본다. “, 열시까지 야자, 주말마다 학원 두 탕!” 누구 앞에서 투정이냐는 듯 시크하게 돌아오는 고2의 답변이다.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p45)’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작가가 조언한다. 열심히만 한다면 당장 그만 두고 글 쓰고 책만 읽으면서 먹고 살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마음이 다시 속삭인다. ‘섣불리 창업하지 않고 위험을 잘 관리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결국 창업에도 성공한다는 겁니다.(p319)’, ‘모호한 상황에서는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p322)’는 냉철한 답이 쏟아진다. 머쓱해진다. , 안다. 지금 그만두고 글만 쓰면 그지 꼴을 못 면한다는 사실을.

그래도 걸출한 성취가 인생에서 40대 이후에 더 많이 나타난다.(p324)’고 했으니, 아직 희망은 있다. 많은 위안이 된 문장이다. 올해 50세가 되면서 너무 많이 늦은 것은 아닐까 내심 왜소해지는 마음이 커지던 터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p349)’이 되기 위해, 지난 91일부터는 뭐든 계속 쓰면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글만 쓰며 살 수 있는 삶을 위하여! 아자!!

 

완전히 혼자 있는 시간,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p384)’이다. 글을 쓰는 데 자주 영감을 주는 음악만 귀를 통해 마음으로 흘러들고 있다. 행복하다. 해야 할 업무를 잠시 치우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즐겁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일을 잘 미룬다.(p344)’는 말에 기대어 잠시 창의적인 인간으로 빙의하여 과감하게 미뤄본다. ‘마감효과의 효능은 학창시절부터 벼락공부로 단련해온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에.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p124)’ 작가의 말에서 답을 얻는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p102)’한다던데 나의 경우에는 글을 쓰는 일이 위 모든 조건들을 아우른다. 글을 쓰고 나면 운동하고 땀을 쫙 뺀 것처럼 온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감이 몰려오지만, 마무리한 후에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이 있다. 그 느낌은 예전에 미친 듯이 했던 테트리스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매번 힘들어도 노트북을 두드리게 한다.

 

한 번 더. ! 아니, 한 번 더. 한 번 더?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림을 한 번 더 보여 달라는 말이었는데쩜쩜쩜.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주인공들이 드디어 뽀뽀를 했다. 여주인공의 말을 착각한 남주인공은 무척 고맙게도 내리 세 번 뽀뽀를 한다. 맥락이 없지는 않다. 그의 뇌 속은 방금 한 뽀뽀 생각으로 온통 가득할 거라서 어떤 말이든 이와 연관되어 받아들여질 것이니.

요즘 나의 관심사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이다. 뇌 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라서 책을 읽는 족족 글 쓰는 삶과 연결을 짓고, 글쓰기와 관련된 문장만 눈에 쏘옥 들어온다. 글쓰기와 관련된 문장이 아니라도 글쓰기 관련 문장으로 해석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독후감에 대한 변명이다. 책의 내용을 통찰하는 균형 잡힌 시각 따위는 없다.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책을 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이 문장이 이 맥락에서 쓰인 거였어? 이 책 읽고 독후감 쓴 거 맞아? 하면서.

 

과학자가 쓴 책이 나의 성향과 잘 맞을 때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탐구의 기본은 가설 검증을 위한 근거 제시인데, 과학자는 글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다양한 실험 데이터를 제시한다. 숫자가 포함된 적절한 예는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뇌과학이 흥미로운 분야로 다가왔다. 복잡계 물리학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특수한 언어들을 과시하듯 나열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문장은 쉬웠다. 일반인들에게 쉬운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상대성 이론을 이해시킬 수 있는 강사가 명강사라 생각한다. 그가 그랬다. 창의성의 고수임을 드러내주는 유머는 적절한 포인트에서 방향제처럼 칙칙 뿌려져 분위기를 매끄럽게 했다.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딛는 열두 발자국>(p11)을 따라가면서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존재를 생각했다. 리더에게, 교사에게, 엄마에게 의미 있는 문장들의 숲을 만났다. 삶을 돌아보고, 나를 바라보고, 미래를 상상했다.

 

어쨌든 1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 마음에 특히 들어온 문장들, 추리고 추려낸 문장들을 어떤 식으로든 모조리 담아냈으니. 책의 내용을 그나마 짐작하려면 작은따옴표로 인용된 문장만 독립적으로 읽은 다음 천천히 음미하시라 권한다. 한 가지 팁을 더하자면, 이 문장들은 책이 담고 있는 얘깃거리에 비한다면 바나나 표면에 있는 갈색 점 두어 개일 뿐이라는 거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지도는 여러분 스스로 그려야 합니다.(p59)’라 했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오솔길을 그렸다. 직접 펼쳐보든 요약된 다른 글로 짐작하든 책에 대한 느낌의 지도는 당신이 직접 그려야 할 것이다. 당신만의 오솔길, 궁금하지 않은가?

 

 

p267, 밑에서 8째줄 : 겁입니다. 겁니다. 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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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09-08 20:23   좋아요 0 | URL
견해를 펼치는 분야가 자리하는 시점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뇌과학은 실험 데이터를 근거로 과거와 현재의 뇌를 분석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데이터의 신뢰성이나 양과는 별개로 어쨌든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는 거죠. 미래에 우리의 뇌가 어떻게 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비트코인은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도 없고 미래에 거래될 화폐로 적절하냐 부적절하냐를 판단하는 것이라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겠죠.

JTBC의 토론은 찬반 토론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 것으로 그쳤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경제학자, 컴퓨터공학자, 뇌과학자, 거래에 몸 좀 담가본 사람들로요. 비트코인이든, 블럭체인이든 관련 지식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를 떠나서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하는 거죠.
현재 경제를 기점으로 화폐로서의 활용 가치를 말한다면 부정적인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도입기에서의 과도기적인 혼란의 시기이니까요.

이 책 <10장,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와요. 혁명은 테크이상주의자와 실천가와 많은 사람들의 동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구요.
비트코인을 O,X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의 극히 개인적인 견해는 이상주의자와 가깝습니다. 컴맹이고 기계치이고 인터넷뱅킹을 한 지도 불과 몇 년 안되었지만, 그래서 이런 용어들이 참 두렵고 무섭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쪽으로 흐르게 되지않을까요? 다만 시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으로 저는 절대로 안할 거지만요.^^;;
 
뽑기의 달인 좋은책어린이 고학년문고 2
윤해연 지음, 안병현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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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없던 봄맞이꽃이 렌즈 시야에 담긴 것은 우연이었다. 다른 꽃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 찍혀버렸다. 배경이라 생각했던 주변이 선명하게 찍힌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 중간에 하얀 색 점들이 있는 거다. 뭘까? 가까이 가서 직접 들여다보았다. 말끔하게 생긴 다섯 장의 하얀 꽃잎. 작은 꽃들이었다. 다시 초점을 맞췄다. 사진을 보고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봄맞이꽃과 함께 봄을 맞았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으로 구입했을 때, 퇴근만 하면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배회했다. 동네에 피는 야생화를 폭발적으로 많이 알게 된 시기였다. 봄꽃은 개나리, 진달래, 목련, 영산홍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야생화는 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도 아니었다. 가까이 가서 무릎을 굽히고 초점을 맞추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디지털카메라 관련 초보 입문서를 읽고 나서야아웃포커싱이라는 촬영 기법을 얼떨결에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웃포커싱을 떠올렸다. 봄 언저리에서 배경으로만 자리했던 야생화들이 초점을 맞추는 순간 렌즈 안으로 들어와 주인공이 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주인공이고 누구나 주인공이 아니기도(p127)’한 동화들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에는 주인공이 한 명만 있지 않았다. <엉뚱한 발레리나>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윤아와 엉뚱한 발레리나 수지가, <뽑기의 달인>에서는 뽑기의 달인이 된 영찬과 짝꿍 수호가, <화해하기 일 분 전>에서는 주인공과 동생 은지가, <빵빵 터지는 봉만이>에서는 빵빵 터지게 된 봉만이와 늘 화가 나있던 찬수가, <비밀 편지>에서는 진구 오빠와 주인공이, <나중에 할게>에서는 아람이와 민구가. 뮤지컬의 더블캐스팅처럼 번갈아가며 막상막하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세상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지 않다.’(p127)는 작가의 말은 삶에 적용되었을 때 더욱 적절했다. 실수하고 질투하고 실망하고 미워했지만 서툰 손짓을 하는 아이들은 점점 주인공으로 선명해져갔다. ‘분명한 건 여기에 나온 친구들 모두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거야.(p128)’ 이들을 주인공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함께 걸어가 주는 친구들과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는 맑은 용기였다.

 

그저 있었을 뿐인 동매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나만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핵심은 대상을 향하는 초점인 거다. 수학에서의 여집합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된 부분의 안이 되기도 하고 밖이 되기도 한다. 수묵화에서 먹으로 그려진 대상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는 것은 여백이다. 백색의 공간에 시선을 두면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봄맞이꽃을 알게 된 후로 작은 꽃들이 점점 많이 눈이 띄었다. 아웃포커싱으로 보지 못했던 대상들은 초점을 옮기는 순간 주인공이 되었다. 우리도 각자 삶의 무대에 초점을 맞추고 맑은 용기로 도전을 한다면 조금 더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띄지 않던 꽃들이 찬란한 주인공으로 흐드러지게 된 나의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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