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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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재난 문자 왔는데, 밖에 나가지 마세요.” “다 저녁 때 나갈 일 없지. 근데 퓨마가 뭐냐?” 지난 달, 동물원이 위치한 장소와 같은 동에 사시는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대전, 동물원, 퓨마. 세 단어가 순서쌍으로 번갈아 조합되어 인터넷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를 몇 시간동안 도배한 날, 자신의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알린 동물은 생애 첫 자유를 4시간 반 동안 누리고 8년의 생을 마감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p198)’ 작품 해설에서 축사란 말이 언급되어서일까. 뜬금없이 지난달에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나의 아이들이 오버랩 되어 마음을 잡아당긴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p11)’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미래를 설명할까. 이 땅에서 너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 글짓기, 그림그리기, 리코더 불기. 좋아하기도 했고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잘하는 축에 속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는 짐짓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토록 잘하는 것이 많은데 나중에 뭐를 하면서 살지? 4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미술이나 음악 계통을 전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어릴 때 살던 동네에 가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살던 곳이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스러웠다. 쓸데없는 우려였다는 건 몇 걸음 채 걷지 않아 드러났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면 번쩍이지는 못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흔히들 하는 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동네의 진입로만 포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골동품 같은 집 안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p103)’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던 건지,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 이 모두가 섞인 이유에서였는지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친정아버지께서 사업 실패로 10년 남짓 집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파출부, 공양주, 식당서빙, 공장 일부터 자잘한 일감까지 얻어 오셔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일을 하셨다.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p125)’ 어머니가 떠올라서 울컥한다. 실업계를 갈까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을 넘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버텼던 대학교를 넘어, 졸업하자마자 취직하기 위해 통신공사 공부를 하던 대학교 4학년을 넘어, 마음을 바꿔 임용고시를 보았다. 그리고 27년 째 이 자리에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기본적인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은 없으니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빨리 돈을 벌게 해야지 없는 형편에 자식들 4명을 다 대학에 보낸다고 이상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디뎌온 덕분에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종종 나는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나태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어머니의 40대50대를 생각하며 나를 추스른다.

 

이제 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어쨌든 큰 딸은 올해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고 두 달의 인턴생활을 거쳐 10월부터 정식 출근 중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금융회사를 다니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호주로 떠난 20대 청춘. 나의 아이가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영화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닥치게 될 수많은 불합리에 넘어지거나 힘겨워하지 않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뒤엉켜서 취준생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 상황이 마음 편하게 좋지는 않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다. 주말에도 학원을 몇 탕씩 뛰며 제대로 쉬지 못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모의로 진행하는 UN 행사에도 참여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장애인 단체에 봉사활동도 참여한다. 순수하게 좋아서 참여하는 마음도 있지만 썩 괜찮은 생기부를 구성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지금도 피곤함을 안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걸어가는 이 아이 앞에 어떤 커다란 장벽이 가로놓일지, 그것이 노력으로 넘을 수 있는 종류의 고난인지, 혹시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길은 아니었는지.

벼룩에 대한 실험이 있다. 벼룩이 뛸 수 있는 높이를 계속 제한하면 나중에 높이를 확장한 공간에 두어도 늘 뛰던 높이 이상을 뛰지 못한다는. 곰곰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결과이다. 계속되는 좌절로 혹시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 버릴까봐, 책표지 그림의 제목처럼 <방향도 목적도> 갖지 않게 될까봐, 나는 그게 겁이 나는 거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 속에서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p200)’ 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녀가 진짜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한국을 벗어나 호주로 떠나서가 아니다. 호주에서의 삶이라고 딱히 무지개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생각의 방점은 바로 스...에 찍힌다. 어디에 있든 그녀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걸어갔다는 점이다. 그 자발성이 행복을 자라게 하는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줄기와 잎이 사그라지는 혹한이나 혹서기가 다가와도 다시 새순을 돋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 말한다.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p184)’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억으로 만드는 행복과 순간순간을 살면서 만드는 행복이다. 나는 어느 쪽일까. 두 가지 다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성 행복이 더 크다. 주인공과 같다. 나 역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적어도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p186)’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퓨마 호롱이4시간 반은 어땠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 마음이 아픈 사건 아닌가. 이렇게라도 생각하기로 한다. 문이 열렸을 때 우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스... 자유를 찾아 걸어 나왔으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유로 잠시나마 행복했으리라, 행복했기를 감히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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