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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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뚜둑! 기지개 한 번에 관절이 존재를 알린다. 크게 펼친 두 팔. 손가락 끝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새삼스럽다. 쭉 늘어난 몸에 생긴 느슨한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민다.

 

매일 뭔가를 쓰기 시작한지 이십일 째다. 독후감을 한 편씩 쓰는 게 이상적인 그림이지만,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불가능의 영역임을 안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독후감은 나의 속도로 쓰고, 책을 읽는 중이면 주로 시를 쓰기로 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의 기록, 일종의 시 일기랄까. 초라한 작품들이 난무했지만 무모한 도전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중이다. 감히 작..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바탕 위에 우뚝 설 위대한 작품이 언젠가는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시적인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책을 만났다. <은유의 힘>은 은유에 대한 임금님 수라상이다. 외국 시부터 우리나라 시에 이르기까지 상다리 부러지도록 다양하고 고급 진 은유가 그득하다. 책을 읽어가면서 시를 짓다보니 나의 시가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듯 착각이 일었다.

실전으로 적용해볼만한 팁도 발견했다. ‘대상과 은유 사이가 벌어질수록 은유의 효과는 커진다.(p31)’ 좀 더 멀리, 더 멀리. 이 문장을 읽은 후로 나의 시에 반영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식상한 표현은 저리 가라! 새로운 시도를 찾아야 해. 나만 표현할 수 있는 팔딱거리는 횟감이기를. 마음을 조금씩 스트레칭 했다.

 

시인이 할 일은 이름이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르고, (중략) 이를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다.’(p5, 살만 루슈디) 이름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른다는 문장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버스, 아파트, 우산, 목백합, 꽃병, 어머님, 아이들, 친구. 사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들과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문장으로 나타냈다. 폐지 할아버지,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노점상 할머니. 존재에 걸 맞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대상들이 새털구름이 되어 마음속에 둥둥 떠다닌다.

좋은 시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 답을 얻었다.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꺼내는 것이다.(p18)’,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다.(p31)’ 나를 둘러싼 다양한 몸짓들이 순간적으로 들어와 마음속에서 버무려졌다. 때론 선명하게, 때론 뭉글하게, 뾰족하거나 포근한 향기를 내며.

 

시로 표현하는 대상이 내안에서 새롭게 탈바꿈되어 나온다면, 나의 시들은 누군가에게 눈물이기를 바랐다.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하는 이에게는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에게는 맑게 솟아오르는 눈물로, 홀로 감싸는 두 팔이 유일한 위안인 이에게는 가만가만 떨어지는 눈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게 바다를 줄 필요는 없다. 그에겐 차가운 물 한 잔이면 족하다.(p172, 울라브 하우게)' 생명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물은 아니더라도 대신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로 작은 토닥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두 가지가 불편했다.

첫째, 시도 은유, 해설도 은유. 기발한 은유는 철철 넘치는데, 저자가 시인이다 보니 소개하는 시들에 대한 해설까지 온통 은유라서 꾸역꾸역 소화하려다 배탈이 날 지경이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 내 눈은 몇 번씩 왕복달리기를 하며 헉헉 댔다.

둘째,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노시인에 대한 존경이 담긴 문장들이었다. 20177월에 출간된 책이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 발생 전이다. ‘삶과 시가 각각의 길로 따라 가지 않고 동일한 궤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p269)’는 문장으로 설명된 존재와의 괴리감을 느꼈다. 삶과 일치하는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직은 뱁새라서 종종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우두둑 굳은 뼈 벌어지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너무 거리가 벌어져서 당최 무슨 풍경을 묘사한 건지 알기 어려운 미스터리 시도 가득했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자꾸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유연해졌다. 벌어진 마음의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은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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