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의 달인 좋은책어린이 고학년문고 2
윤해연 지음, 안병현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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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없던 봄맞이꽃이 렌즈 시야에 담긴 것은 우연이었다. 다른 꽃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 찍혀버렸다. 배경이라 생각했던 주변이 선명하게 찍힌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 중간에 하얀 색 점들이 있는 거다. 뭘까? 가까이 가서 직접 들여다보았다. 말끔하게 생긴 다섯 장의 하얀 꽃잎. 작은 꽃들이었다. 다시 초점을 맞췄다. 사진을 보고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봄맞이꽃과 함께 봄을 맞았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으로 구입했을 때, 퇴근만 하면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배회했다. 동네에 피는 야생화를 폭발적으로 많이 알게 된 시기였다. 봄꽃은 개나리, 진달래, 목련, 영산홍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야생화는 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도 아니었다. 가까이 가서 무릎을 굽히고 초점을 맞추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디지털카메라 관련 초보 입문서를 읽고 나서야아웃포커싱이라는 촬영 기법을 얼떨결에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웃포커싱을 떠올렸다. 봄 언저리에서 배경으로만 자리했던 야생화들이 초점을 맞추는 순간 렌즈 안으로 들어와 주인공이 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주인공이고 누구나 주인공이 아니기도(p127)’한 동화들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에는 주인공이 한 명만 있지 않았다. <엉뚱한 발레리나>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윤아와 엉뚱한 발레리나 수지가, <뽑기의 달인>에서는 뽑기의 달인이 된 영찬과 짝꿍 수호가, <화해하기 일 분 전>에서는 주인공과 동생 은지가, <빵빵 터지는 봉만이>에서는 빵빵 터지게 된 봉만이와 늘 화가 나있던 찬수가, <비밀 편지>에서는 진구 오빠와 주인공이, <나중에 할게>에서는 아람이와 민구가. 뮤지컬의 더블캐스팅처럼 번갈아가며 막상막하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세상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지 않다.’(p127)는 작가의 말은 삶에 적용되었을 때 더욱 적절했다. 실수하고 질투하고 실망하고 미워했지만 서툰 손짓을 하는 아이들은 점점 주인공으로 선명해져갔다. ‘분명한 건 여기에 나온 친구들 모두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거야.(p128)’ 이들을 주인공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함께 걸어가 주는 친구들과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는 맑은 용기였다.

 

그저 있었을 뿐인 동매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나만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핵심은 대상을 향하는 초점인 거다. 수학에서의 여집합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된 부분의 안이 되기도 하고 밖이 되기도 한다. 수묵화에서 먹으로 그려진 대상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는 것은 여백이다. 백색의 공간에 시선을 두면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봄맞이꽃을 알게 된 후로 작은 꽃들이 점점 많이 눈이 띄었다. 아웃포커싱으로 보지 못했던 대상들은 초점을 옮기는 순간 주인공이 되었다. 우리도 각자 삶의 무대에 초점을 맞추고 맑은 용기로 도전을 한다면 조금 더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띄지 않던 꽃들이 찬란한 주인공으로 흐드러지게 된 나의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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