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로 이사오면서 미래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곧 다가올 시간들.

식구가 늘 수도 있어서 냉장고도 큰 걸로, 식탁도 큰 걸로 장만해 늘어놨다.

장서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늘어나기만 했던 책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수없이 여기저기 메모해둔 종잇장들, 파일들, 노트들, 자잘한 메모지들까지.

온통 짐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입지 않는 옷이나 신발들은 쉽게 버려야 할 짐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종잇장들이다.

그동안 내가 시간들여 만들어놓은 많은 것들이다. 내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지금 내게까지 이어져 있는 것인데 절단하여 내다 버릴 수 있을까.

일하면서 필요한 자료들을 열심히 복사해뒀고, 끊임없이 노트에 뭔가를 적어놓았으며, 자잘한 종이조각들에까지 내 메모는 행해졌다. 수정해서 또 다시 출력해 놓은 것들, 그것을 다시 또 수정한 것들, 다시 출력한 것들.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가고 있었다.

일기 또한 하드커버 노트에 쓰여져 쌓여있고, 그 일기를 쓸 때에도 나중에 이 일기들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늘 미뤘고 여기까지 이르렀다.

일기는 당분간 안고간다 해도 나머지 종잇장들을 버릴 수 있을까.

책들은 내가 꼭 나중에라도 읽으려고 일단 구입해놓았던 것들이 많다.

버릴 수 없는 책들이다. 읽고 버릴만한 그런 책들은 아예 구입하지도 않았으니까.

버릴 수 없는 책들이다...고 붙잡고 있는 한 나는 내 시간을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

고작 책상 위 정리만 했을 뿐인데 벌써 지쳤고 버릴 자신이 없어졌다.

 

미래로 이어질 턱이 없는 내 시간이라면 지금 버려야 할 것 같다.

욕심일 뿐이야. 미련일 뿐이야. 쓰잘데기 없는 애착이자 가엾은 연민일 뿐이야.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한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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