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1853~1890)가 남긴 어마어마한 편지를 이렇게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 만들어 낸 역자이자 엮은이 신성림(그리고 출판사)의 신들린듯한 편집 내공에 감탄했다.

 

고흐는 27세에 화가로의 진로를 택했고 그리고 죽기전까지 딱 10년을 그림에 생을 걸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지. (306)

(고흐 사망 당시 지니고 있던 편지 중)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테오의 답장이나 테오의 편지는 책 끝부분에 이를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고흐의 편지만 넣은 건가, 했다.

그러다.. 고흐의 절망이 더이상 제대로 된 이성을 버티지 못할 때, 테오의 형에 대한 지극한 우애를 담은 편지가 나오기 시작한다.

고흐가 발작으로 쓰러지면서 본격적으로 절망과 슬픔에 사로 잡힐 때 테오의 형에 대한 걱정과 어떻게든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간절한 편지들을 실은 것이다.

 

1889년 4월 21일('요양원으로 가고 싶다') 고흐의 편지와 1889년 4월 24일('다른 방법을 찾아서') 테오의 편지에서 급기야 나는 눈물을 쏟았다.

이어 4월 30일('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편지에 고흐는 이렇게 썼다.

 

 이제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243)

 

이 즈음의 편지를 읽고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융단 위에서 노니는 사람일 것이다.

좋은 인생이다. 부디 그렇게 계속 살 수 있길 기도하고 싶다. 복받은 인생이다.

 

고흐의 절망의 편지들을... 아마 내가 조금 더 어렸었다면 이토록 절절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고흐는 요양원을 떠나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옮긴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편지에

 

어쨌든 여기서도 내겐 아무런 행운이 없다는 느낌이 들곤한다. (266)

 

... 인생의 운이 다함을 절감한다는 건... 인생의 대운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갈 그 무언가가 있는가를 생각했던 지난 날이 생각나 잠시 책읽기를 멈춰야 했다.

 

동생 테오의 편지들, 1889년 5월 2일('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거야') 편지에서 형의 절망을, 자신의 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자신의 그림들이 한점도 팔리지 못했고, 그래서 동생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그림에 생을 걸었건만 원점으로 되돌아 간 듯한 허무함에 시달리며, 이성이 망가져버린 형에게 어떻게든, 그렇지 않다고, 형이 얼마나 많은 화가들의 부러움을 받는지 아느냐고, 우리 희망을 갖기로 하자고 편지를 보내지만..

이미 그런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형이 도대체 왜 절망하는거야? (247)

 

고흐의 편지들은 오지 않는다.

 

형, 아팠던거야?

 

계속 테오의 편지 몇 편만 실린다. 드디어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 칭찬이 쏟아졌다는 소식, 그림 한점을 400파운드에 팔았다는 소식.. 들을 알리는 편지들...

 

고흐가 총으로 자신을 쐈는지 또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불행히도 총을 맞고 치료를 거부했는지 아직도 여러 얘기가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고흐는 끝내고 싶어했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동생 테오는 그로부터 6개월 뒤, 1891년 1월 25일 건강 악화로 3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다시 말하지만, 부디 무덤덤하게 읽을 수 있기를, 그런 생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길.

그렇지 않고 뼛속깊이 울음이 난다면..

별까지 걸어갔을 고흐처럼,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조용히 바라며 당분간 잊고 살기를...

이책을 읽게 해준 루시드폴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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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5-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절절하네요. 저도 이 책 다시 책장에서 꺼내서 읽어봐야 겠 습니다.

포스트잇 2015-05-13 19:17   좋아요 0 | URL
고흐 편지 자체가 힘이 있습니다만..그걸 잘 엮어낸 기획력이 좋더군요.
그리고 책과도 때를 만나야 하는듯합니다. 아마 제가 더 어린시절 읽었다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구요..
지금은 고흐의 절망이 너무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