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브는 감성이 중요하지만 멜로디에 글을 입히는 작업은 감성과 구조적인 스킬, 즉 이성 또한 중요하다.

(작곡가 김형석 추천사)

 

멜로디와 가사를, 가수와 콘셉트를 밀착시키는 능력은 작사가에게 중요하다.

(작사가 양재선 추천사)

 

김이나가 누군지 이번에 알았다. 2005년 2만여 명의 음저협(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회원 중 저작권료 수입 1위인 작사가에게 수여한 KOMCA 대중 작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녀의 작사곡들 중에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아이유의 <좋은날> <잔소리>, 토이의 이번 앨범 《Da Capo》중 <인생은 아름다워> (다이나믹 듀오 & 자이언티),  그리고 <시크릿가든> OST <나타나>(김범수)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유명곡이랄까.

지금은 작사가만이 아니라 A&R(Artist & Repertoire)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작사법과 관련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하여 관련 서적을 찾아 읽어 본 적도 없다.

가요에 관심갖고 있는 시점에 떡 하니 이런 책이 나와주니 고맙게 읽었다.

 

작사가가 될 것도 아니어서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일을 맡게 된 과정과 가사분석, 가사쓰기 팁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서 설렁설렁 넘겼다. 가요의 90%는 곡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곡에 가사를 붙이는 순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싱어송라이터나 특별한 경우 가사나 시가 있어 거기에 곡이 붙는 경우는 그만큼 흔치 않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건 A&R에 대한 소개 때문이었다. A&R란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해당 가수와 맞는 음악들(레퍼토리)을 뽑아내고 정리하는 업무들의 책임자를 일컫는다. 작사,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즉 곡 섭외를 담당하고 정리하며,곡이 픽스되면 녹음현장을 책임지기도 한다. 녹음 스케줄을 조정하고, 작곡가가 선호하는 세션맨 섭외, 믹싱과 마스터링 스케줄을 조정한다.

대개 프로듀서가 전체 기획 등을 잡아가지만 A&R 역시 프로듀서와 협의된 전체 그림 하에서 세부 사항들을 이끌어 가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큰 회사 같은 경우 프로듀싱 팀에 배속되는 것 같고, 김이나처럼 능력이 입증된 경우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도 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SM의 프로듀싱팀 이성수 실장과 울림Ent.의 정병기 총괄본부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SM의 경우는 A&R만 19명이 있다는데 놀랐고, SM은 음악산업계의 대기업이 맞는 듯했다.

부서와 직무도 그렇거니와 직원들의 학벌도 만만치 않다.

 

이성수 실장의 인터뷰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A&R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에요. 정말, 많이 힘듭니다. 단순히 '음악 일을 해보고 싶다' 정도의 열정만 갖고 입사하신 분들은 그래서 빨리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요. 어떤 곡이 너무 좋아요, 하는 취향 보다는 어떤 곡이 왜 좋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좋은 A&R이 될 재목이라고 봅니다.  (74)

 

정병기 같은 경우 그의 이력이 재미있었다.

정병기는 PC통신 시절에 음악이 좋아서 음악에 대해 이런 저런 글을 음악게시판에 쓰다가 강헌과 교류하게 되고,여기 저기 글을 기고하면서 평론가로 활동한다. 서태지가 그의 글을 보고 연락해오면서 서태지컴퍼니의 콘텐츠 업무를 맡게 됐다고 한다.

이때가 스무살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일에 매달렸을지 짐작이 간다.

이후 박근태 작곡가의 개인 A&R로서 저 유명한 애니콜의 "Anymotion"이라는 광고 프로젝트를 차은택감독, 박근태 작곡가와 함께 광고음악을 만들게 된다.

이후 박진영이 그를 캐스팅하면서 JYP에서 크리에이브팀을 이끌며 A&R 역할을 한다. 이때 탄생한 곡이 원더걸스의 <Tell Me>.

엔터테이먼트쪽은 끌리면 가야 한다. 타고난 재능과 뚝심(주로 어려워도 밀고 나갈 줄 아는 인내와 고집)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게 오래 하다보면 ... 어느 사이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게 된다.

 

정병기가 생각하는 A&R.

 

4, 5년은 옆에서 보고 듣고 배워야 비로소 아티스트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A&R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들을 직접 상대한다는 게 생각보다 예민한 작업인데다가, ... 그냥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돼요.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내든데, 그중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것들을 가려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들을 현실화하는 것은 하나하나 경험치가 필요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A&R로서 느끼는 성취감은, 배우는 시간 동안에 느끼는 힘듦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83)

 

딴따라 일을 하는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기가 세다. 여리여리 보인다고 만만하게 보아서는 절대 안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거, 역시 기센 사람들이다. 한번 거쳐간 사람들이 쉽게 말할 수 있다. '그 바닥..' 어쩌구. 튕겨져 나간 사람들은 그 사람들 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세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타고난 팔자와 운이 함께 해야 한다. 포스가 그대와 함께 하기를. ...

 

김이나는 가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작사가다. 팬심으로 가수를 본다. '내 가수'에게 이런 곡을 줄 수 있다면... 이란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 가사도 내 가수의 말을 대신해 주는 듯한 가사를 쓸 수 있다.

임재범과의 작업을 예로 들면, 그에 대해 김이나식의 정의는 "슬픈 호랑이 같은 남자"이다.

"사납지만 어딘가 상처를 입은 호랑이" 같은 느낌.

김형석 작곡의 발라드 데모(미완성단계의 곡으로 '스케치' 정도의 곡)에 임재범이 가이드(가사가 완성되기 전, 멜로디진행만을 보여주는 녹음상태)를 해서 보내온 것을 듣고 김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다친 호랑이가 자기를 치유하는 얘기. 거기에 얼마전 김훈의 [칼의 노래]까지 읽은 뒤였다.

그래서 나온 가사가 <어떤 날, 너에게>(임재범)의 '칼날 같은 날 품어 울던 너 기척조차 더이상 들리지 않아'...

이렇게 나왔다. 이노래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 노래였다. .. 판단은 각자가...

마초 임재범을 인정하면서 '전쟁같은 사랑'을 키워드 삼아 만든 또 한곡이 <길Road> (김형석. 임재범 작곡/ 임재범).

이 곡 역시 이번에 처음 들어본 노래.

이런 식으로 '내 가수'의 노래 레파토리를 잡아 나가며 한 가수의 노래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그게 임재선 추천사에 나오듯 "가수와 콘셉트를 밀착시키는 능력"일 것이다.

 

이밖에 최백호와 아이유와의 작업( <아이야 나랑 걷자>) 등. 이런 경우 지나치게 폼잡는 인생 이야기로 흐른듯하여 아쉬움이 있었다. 김이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에 특히 예민해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꼰대처럼 되어 가는 건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대가 젊은가? 노래 좋아하고 어느 가수를 '내 가수'라고 생각할만큼 깊이 빠져있는가?

미친 척하고 빠져 들어가 보라. 함정은 곳곳에 있다. 그놈의 열정페이도 있을 거고, 상대방은 고사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 ...등등.

 

그때 '이 곡이 너무 좋아요.' 보다는 '왜 이 곡이 좋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인지 한번 보라.

 

 

 

 

 

 

 

 

 

 

 

 

 

 

 

"곡이 얼굴이라면 가사는 성격"이라는 말처럼 오랜 기간 사랑받는 곡의 가사는 좋을 확률이 높다.

싱글 뿐만 아니라 앨범에 참여하는 수많은 전문가들. 작사, 작곡가, 가수, 프로듀서, 편곡자, 엔지니어, 세션. ..

윤상과 오랜 기간 작업해온 작사가 박창학에 대해서도 이번에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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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하는사람 2015-05-1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비현실적인 창작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pastparty 검색 해 주십시오.
놀라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댓글이 보기 안 좋다면 죄송합니다.

포스트잇 2015-05-17 12:30   좋아요 0 | URL
대단하시네요^^ 색과 형태, 몸, 소리..다 이용하셔서 작업하시는 그 창작의 세계 부럽네요..
상상력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서..ㅎㅎ ...계속기대하겠습니다.

mjsim0704 2015-10-3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해서 이 포스팅 하나로 읽고 또 읽게 됩니다. 마음이 끌리나봅니다.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포스트잇 2015-10-30 16:56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읽고 또 읽으신다니..태어나서 이런 칭찬해주신 분 만나기 쉽지 않겠죠? ㅎㅎ 오후가 환해집니다~가요와 음악에대해 어느때보다 관심갖고 들여다볼때 쓴글이라 정성은 쪼금 들였던거 같아요. 저도 다시보고 그때 생각했네요..고맙습니다.

mjsim0704 2015-10-3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맙습니다 ^^ 음악쪽 일하시는건 아니시구요? 요즘 책읽거나 음악들을 시간이 많아져서 쓰신글들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음악쪽 관심도 많아졌구요~ 밑에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포스트잇 2015-10-31 09:38   좋아요 0 | URL
일을 하는 건 아니고요, 가요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관심이 가서 들여다봤네요. 최근엔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강헌이 더 읽어보길 권하는 책들 찾아 읽어보고 ... 뭐 그렇게 하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mjsim0704 2015-10-3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요즘 대중음악과 앨범 아티스트 관련해서 책을 찾아보고있는데 강헌님의 책은 피할수가 없겠더라구요! 저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포스트잇 2015-11-04 12:30   좋아요 0 | URL
강헌 책 읽다가.., 가요라는 명칭이 일제시대 일제가 지침으로 한 국민가요에서 나온거라네요, 우리가 썼던 말은 유행가였다고하니..우리가 미처 모르고 그냥 쓰는것들이 많아서 조심스럽네요ㅜ

mjsim0704 2015-11-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참고해야겠네요~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시나바요!다방면으루.. 우리나라 독서량도 많이 줄고 그런걸로 아는데 대단하신듯... 저도 많이 읽고싶은데 습관이 안되서인지 잘 읽혀지지않아요 ㅜㅜ 세상이 여유없이 각박해진 영향도 클듯 하구요~

포스트잇 2015-11-04 01:16   좋아요 0 | URL
ㅎㅎㅎ제가 읽는 독서량은..평균보다는 좀 높겠지만 정말 많이 읽는 사람들에 비하면 명함도 못내밀 수준인걸요. 독서는 확실히 습관인듯요~매일 분량을 정해서 습관을 들이는 방법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