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 죽는 줄 알았다,   꽤 오래전 김형곤의 "공자 가라사대"였던가  그런 개그프로야말로 이 논어의  패러디였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역자 조광수는 자신도 논어를 보다가  나처럼 웃었던 경험이 있어서 아마 이런 책을 내리라 맘 먹었으리라.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자를 알고 싶어서 골랐던 책인데 [논어]에 나온 공자의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를 알게 해준다. 책세상문고의 [논어]를 보면서 포복절도했던 것들이 슬그머니 쑥스러워지는 대목이 많다. 아, 세상 알기의 어려움이여.

 post it :                                  

출판된 하고 많은 [논어] 책 중에서 하필 책세상 문고를 선택한 것은 우선 다른 해설 없이 오로지 논어 내용만을 죽 실었다는 점에서 중단없는 독서를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알지 못하는 한문 원문까지 실어놓은 책들이 내게 지금으로서는 개발에 편자격이니. 해설 없이 주를 통한 짧은 지식만을 들춰보며 읽는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책세상 문고의 [논어]는 상당히 색다른 독서경험을 줬다고 하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떼구르르 굴렀다. 

저자(이 경우엔 엮음인데)가 '공자의 문도들'이다. 대개 [논어]의 저자를 공자로 표기하고 있거나 아예 저자를 쓰지 않고 옮긴 이(역자)만을 밝히거나 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책세상의 이 책은 '공자의 문도들'이다. 웃기지 않는가? 물론 처음에는 전혀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새삼스럽게 쳐다보았을 때 난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역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미리 경고(?)를 했다.

"직역을 하면 도저히 뜻이 통하지 않는 구절에서는 나의 느낌을 섞어 풀어서 번역했다. 아마 이런 점이, 좀더 많은 독자가 고전을 접하기를 희망하는 '책세상 문고 . 고전의 세계'가 나에게 [논어]의 번역을 맡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구절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단어 하나하나에 연연해 전체적인 뜻을 경직되게 만들지 않는 자연스러운 번역을 하고자 했다. 공자님 말씀을 바이블로 여기는 분들은 어쩌면 질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은 늘 해석되고 또 재해석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 역자의 '재해석'이 어째 김형곤의 '공자 가라사대' 의 대본으로 읽혀지고 말았으니.  아마도 나는 역자의 '느낌'을 잘 소화한 독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비록 공자님 말씀을 바이블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더욱 이 책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논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 및 당대 주변 인물들과 나눈 대화들을 후세 제자들이 정리해 만든 책이다. 그래서 공자왈(공자가 말했다)이 늘 앞에 붙곤 한다. 이렇다보니 이 대화가 어떤 배경에서 나온 말인지 알지 못하면 선문답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할 만큼 [논어]의 대화들은 경구이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나는 [공자평전]을 보면서 [논어]의 대화 하나하나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공자평전]은 대개의 평전과는 다르다. 학술서에 가깝다.

[논어]의 말을 공자의 생애로 풀어놓는 제1부를 책세상의 [논어]와 함께 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해설이 붙은 [논어]를 읽으면 간단하겠지만 말이다. 1부를 통해 공자의 생애를 일괄한다면 이후 책 내용은 공자학, 유가의 사상에 대한 해설과 사상적 배경, 그리고 중국 역사를 통해 공자학이 지닌 의미, 현대에서 이 중국 사상사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유해야 하는지의 문제들을 아우르며 논하고 있다.

유학이 한반도 역사와 정신에 끼친 영향의 중차대함을 십분 헤아리면서도 이에 대해 자세히 천착해 볼 욕구를 가지지 못했다가 이제사 막 눈 돌리기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세상의 [논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니 만큼 반드시 다른 관련 서적을 함께 읽어야 한다. 공자의 제자들-문도들-에 대한 지식도 함께 아우르지 못하면 잘못 인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싶다.

나의 경험으로 그 대표적 예가 자로에 대한 것이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책세상의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가 감당하지 못한 제자였거나 혹은 어지간히도 싫어했던 제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공야장>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고 있어 뗏목을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갈까 하는데, 나를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용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보다 낫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취할 것이 없다."

이대로 읽으면 자로의 캐릭터는 단순무식함으로 정리되는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일정한 수업료만 내면 문하로 받아들여졌던 터라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있었지만, 자로는 '공문십철孔門十哲'중의 한명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제자였다. 그런데 책세상의 [논어]에서 역자는 이 자로를 철저히 코믹한 배역으로 삼았다.

자로와 관련해서는 또 이런 예도 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어째서 [감히] 내 집에서 [잘 타지도 못하는] 비파를 타는건가?"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공자에게 야단맞는] 자로를 공경하지 않으니 공자가 말했다. "자로의 학문은 마루까지는 올라왔지만 아직 방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선진> 편)

[ ] 안에 든 말은 역자의 '느낌'으로 첨가된 것이다. 이 대목을 읽자면 저 멀리서 자로가 엉터리로 비파를 타는 소리가 들린다, 악에도 밝은 공자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엉터리 연주다, 평소에도 못마땅해 하던 자로를 공자가 여지없이 비하하며 혀를 차는 장면이 그려진다. 제자들은 또 어떤가, 서로 얼굴을 감추며 킥킥 거리는 철없는 제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런데 [공자평전]에 따르면,공자는 악 역시 예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에 맞는 음악과 예에 맞지 않는 음악을 구분했다. 자로가 연주한 곡이 바로 공자가 예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한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자로의 연주실력을 가지고 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한 모양이다. 책세상이 선택한 해석은 바로 위와 같은 것이었다.

<공야장>의 에피소드도 공자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한탄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은 제후국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자는 주유천하를 하면서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가의 개'처럼 쫓겨다니기도 하고 전쟁이 벌어진 제후국들 사이에 갇혀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곤란을 당했던 때도 있었다. 이 말을 했던 때가 정확히 어떤 시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신의 주유가 결실을 얻지 못할 것임을 짐작한 때쯤이 아니었을까. 이제 더 이상의 주유가 무의미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내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 때 제자들마저 스승의 사상이 비현실적이라고 논하며 자신들을 부르는 제후들 곁으로 떠나버린 상황에서도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자로를 보며 한 말이었을 것이다.

자로는 성격이 불같은 자였다. 원래도 협객이었다 한다. 공자를 철저히 지켰고 그럼에도 그의 곧고 급한 성격 때문에 공자에게 조롱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공자 보다 9세 연하였고 말년에 위나라 대부의 가신을 지내다 정변에 휩쓸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그의 시체는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졌다고 한다.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면서 집 안에 있는 젓갈 단지의 뚜껑을 모두 덮어버리라고 명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자로가 책세상 [논어]에서는 등장할 때마다 공자와 자로의 대화는 거의 '공자 가라사대' 한 장면이 되곤 한다.

(글이 날아갔다....)

 

 (내 머리를 대신 복구한다. 에구,에구)

자로 캐릭터의 결정판은 희대의 사건, 남자(南子)부인과 공자가 만나고 돌아온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공자가 남자를 만나러 갔더니 자로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잘못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옹야> 편)

스승이 제자들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고 문제의 남자부인을 만나고 돌아온 것이다. [논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뒷얘기가 있다. 공자는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난 원래 그녀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딱 한번 예의상 갔다온 것 뿐이다." 다른 제자들은 별말이 없는데 괄괄한 자로가 나서서 노발대발한 것이다. 아, 스승이 여자를 좀 만나고 왔기로서니 그걸 꼭 집어서 들춰내는 자로가 공자는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동양의 대스승이라는 공자가 하늘에 대고 내가 잘못했다면 하늘이 버리실 거라고 외려 큰소리를 치며 설레발을 떠는데 제자들이 더 이상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하늘을 우러르며 말한 뒤에 하늘에서 천둥치고 벼락이 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데 공자와 남자부인의 만남은 단순히 불륜 스캔들과 같은 사건이 아닌 것이다. 공자는 제후국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자와 그 문도들의 처지는 무척 위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도가 없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도를 펼치고 싶은 욕망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듯 하다. 공자와 문도들은 떠돌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왔는데, 남자 부인은 바로 위령공의 부인이었다. 남자부인은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여자였다. 부인을 만나는 것은 곧 정계 진출의 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남자부인이 공자를 초대한 것이다. 처음에 공자는 거절했으나 결국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이다. '벼슬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 [공자평전]의 저자는 말한다.

의심스러운 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진정 남자부인에 대한 공자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오로지 '벼슬', 순전히 자신의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는지 나는 확언할 수 없다. 도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위령공이 아닌 그의 부인을 만났다는 것에 제자들은 아연했을 것이다. 뻣뻣한 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자부인은 또 다시 공자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이번에는 위령공과의 행차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는 요청이었다. 공자는 이번에도 초대에 응한다. 공식행사 참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 행차에 함께 한 것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위령공은 오로지 공자와 자신의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한 것일 뿐이었다. 공자는 위령공에게 "나는 당신처럼 여색을 탐하고 도덕을 가볍게 여기는 위인을 본 적이 없다"라고 일갈하며 결국 위나라를 떠난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논어]에도 나온다. 공자와 남자부인의 스캔들은 공자에게 심한 열패감만 안겨준 채 쓸쓸하게 마무리된다.

차라리 인간적이다. 인간 공자의 모습을 [논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책세상 [논어]의 역자는 이런 인간 공자를 좀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웃을 수 있었으리라.

 공자와 남자부인, 위령공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공자의 사상과 공자의 주장은 제후들에게 실천하기엔 너무나 우원한 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공자는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권위와 세를 지닌 인물이었으니 제후들로서는 그를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 정치에서는 소외시키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공자는 2000천년 이상 동아시아를 지배한 사상가이자, 스승으로서 영생의 길을 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09-03-2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논어와 공자를 읽고싶지만 그럴만한 역량이 안되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리뷰를 보고나니 게으른 제자신이 참으로 낮춰보입니다..

포스트잇 2009-03-22 12:26   좋아요 0 | URL
누추한 서재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님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이 글을 다시 읽었네요. 적잖은 나이에 방황할 때 썼던 겁니다. 그래도 그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제법 길게 끄적거릴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나름 악전고투 중이라 집중이 쉽진 않네요. 관심가는 대로 읽자구요.안타까울 일이 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