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도 없이 5월이 왔고, 벌써 8일째를 맞는다.

내가 할 일은 끝났지만 책임은 내게도 있기에 좋은 소식 없는 나날들은 괴롭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에 대한 결과를 듣는 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훈식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될 공공영역마저 이익집단에 팔아버린 정부들을 줄줄이 잉태한 우리의 사정을 제대로 보게 된다. MB와 그네같은 대통령을 갖는 건 로또를 사는 것과 같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

그들과 같은 대통령을 뽑아놓고, 새누리같은 당을 대대손손 여권으로 만들어놓고, 사회가, 나라가 정상이길 바라는 건 로또를 구입하고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로또에 당첨되는 몇 사람 빼고 로또를 아예 사지 않았거나 로또를 산 사람들 대부분은 얇은 옷 몇 벌 입고 거리에 나앉아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옷 몇 벌도 하나씩 하나씩 벗어야 할 것이다. 가릴 것, 뭐 천막하나 치고 살기도 힘든 세상을 맞을 것인데 그래도 그 옷이 명품 브랜드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뭐, ... 할말 없는 거 아닌가.

마땅한 대안 하나 키우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찬란한 -게다가 조금 춥기까지 한다-5월이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도 삶은 지속되기에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 일을 보고 다음 일거리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는 날들의 연속인데,

늙어가는 눈 때문에 책 읽기도 쉽지 않다. 안과와 치과의사를 가까운 벗처럼 사귀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젠장...젠장....젠장,,,젠장.

나이들어 죽는다면 부끄럽지 않는 죽음이었으면 한다. 뭐 한 게 없이 세상을 헛살다 간다는 생각이 든다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일까. 육체만 낭비하여 쇠하다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면 ... .

 

정리해보자.

지난 포스팅에 쓴 jtbc 드라마는 거의 보지를 못했다. 엊그제 보긴 했는데... 몰입이 쉽지 않았다. TV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잠깐 잠깐 이동중 DMB로 jtbc 보도나 팟캐스트 뉴스들만 챙겨 보았다. 돌아보니 정신없는 4월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팟방송들이 일찍 두드러지는 전선을 형성하며 나섰다. 생각보다 일찍.

볼라뇨를 집어들었고, 버즈북부터 읽으며 [2666] 1권에 빠져들었고, [야만스러운 탐정]과 [칠레의 밤]도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꼽아놓는다. 

 

 

 

 

 

 

 

 

 

 

 

 

 

 

 

독일의 제3제국과 관련한 책들도,

 

 

 

 

 

 

 

 

 

 

 

 

 

 

 

 

국내연구자 안진태 교수의 [제3제국의 비극]은 이미지가 뜨지 않네.

 

[작가란 무엇인가]에서는 특히 밀란 쿤데라의 인터뷰가 재밌었는데, 질문자는 아무래도 쿤데라가 생각하는 소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듯 싶었다.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쿤데라식 소설은 좀체 읽기가 쉽지 않은데, 그만큼 매혹의 세계이기도 할 것 같다.

 

 

 

 

 

 

 

 

 

 

 

 

쿤데라의 플롯에 대한 생각은 곱씹어볼만하고, 그래서 카프카의 [실종자]는 꼭 읽어볼 일이다.

 

소극이라는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시는 거죠?

쿤데라 : 소극은 플롯과 예기치 않은,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우연들이라는 장치들을 강조합니다. 소설에서는 플롯이나 소극에서 사용되는 가장들만큼 수상하고 우스꽝스럽고 구식에다 진부하고 몰취미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없지요.

플로베르 이후에 소설가들은 플롯이라는 인위적인 계획을 없애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소설은 제일 지루한 삶보다도 더 지루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플롯이 받는 의심이나 닳아빠진 측면을 우회하는 방법이 있지요. 그것은 플롯을 그럴듯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해방시키는 거예요. 일부러 그럴듯하지 않은 요소를 선택해서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는 거지요.

카프카카 [아메리카](실종자)를 구상할 때 바로 이런 방법을 썼답니다. 첫 장에서 칼이 숙부를 만날 때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들이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여기서 카프카는 처음으로 플롯을 패러디함으로써, 즉 소극이라는 문을 통해서 '초현실'적인 우주로, '꿈과 현실의 융합'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밀란 쿤데라, 304~305)

 

'플롯을 패러디함으로써, 즉 소극이라는 문을 통해서 '초현실'적인 우주로, '꿈과 현실의 융합'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멋진 세계 아닌가? 익숙하지 않은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봐야 한다.

 

볼라뇨의 [2666]의 내 식대로 독서는 1권을 읽고, 5권을 읽는 것이다. '비평가들에 관하여'에서 '아르킴볼디에 관하여'로.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보를레르의 시에서 인용한 제사대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또 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