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야르의 이른바 추리비평 3부작 [누가 로저 얘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셜록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을 모두 읽었다, 일단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코난 도일의 추리탐정소설을 텍스트 삼아 모호하고 이상하며 심지어 잘못된 범인지적(체포)까지 조목조목 수사해나간 끝에 새로운 범인을 지적하는 바야르식 수사는 [햄릿]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나는 그랬다는 말) 범인이 발표된다.
물론 이 재수사를 따라가는 건 ... 쉽지 않으나(기본적으로 정신분석학이 깔리며 각종 이론들과 수많은 저작들을 비교하고 분석해 적용한 글들), 읽다보면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햄릿]을 또다시 읽어봐야할 이유가 생겼다. 언제나 새롭고 전혀 새로운 독서다.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까지. 또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어떤 작품이 재수사 대상이 될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다. 일단 범죄를 다룬(또는 범죄가 발생한) 저명한 작품들이 대상이 될 것은 분명한데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가며 독서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나 작가의 권위를 무조건 믿고 따르지 않는 독서. 피에르 바야르의 재수사도 다시 재수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지만,
일단은 한번 힘들게 따라가며 읽어본 뒤라 또다시 읽어볼 힘이 생길 때까지는 좀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햄릿을 수사한다]의 맥락에서 일본 근대문학의 리얼리스트이며 '소설의 신'이라 불린다는 시가 나오야라는 소설가의 단편 [클로디어스의 일기](1913)가 소개되는데(클로디어스는 아버지 햄릿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햄릿의 삼촌,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의 현 남편), '작품의 모든 사건이 다른 의식을 중심으로 굴절되어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놀라운 텍스트'(175)라는 바야르의 찬사를 받고 있다.
시가 나오야는 1883년 생이니 1867년 생 나쓰메 소세키보다 한세대쯤 어린 작가인데 사소설 전통에 서 있는 1인칭 중심의 섬세한 심리탐구와 묘사력으로 주로 가족간의 갈등에 현미경을 댄 작가로 여겨진다.
창비에서 나온 그의 유일한 장편 [암야행로]가 궁금해지기도 하다. 단편과 초고의 형태로 집필을 이어오다 25년만에 완성된 소설이라고 하며, 아버지와의 오랜 불화와 화해가 중심 모티브라고 한다.
[클로디어스의 일기]와 관련해서 국내 연구서 [일본문학과 종교](김청균,2008) 1부 2장, [클로디어스의 일기]와 [한의 범죄]에 나타난 종교와 윤리, '자기중심주의와 기독교와의 관련을 중심으로', 에서 볼 수 있는 듯하다. 종교...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다. ....
[햄릿]에 대한 우리 연구 또는 연극에서 이런 식으로 해석한 게 있는지 궁금해졌다. 시가 나오야의 [클로디어스의 일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흥미로운 해석을 우리에게서 못봤다는 건 조금 심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