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마무리된 것 같다. 1983년과 딱히 맞아떨어지는 건 없지만,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3년과 2003년은 내게 모두 중요했던 해였다. 한 사람에게 30년 주기란 대단히 의미있는 것일 수밖에 없고, 시대적으로도 한 세대가 정리됐다고 본다.
군부의 내란으로 열린 80년대는 역으로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진보해왔고 30년 동안 다시 진보세력은 주춤하고 보수(이렇게 부르기도 민망하지만)가 승하게 됐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냉혹하고 가차없으며 뻔뻔한 보수세력은 제 얻을 것을 위해서라면 아주 단호한 기세로 토대를 허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들을 구축한다. 그들의 욕망이 지금 보다 많은 대중들의 욕망과 일치하는 모양이다. 저항은 약하다.
영화 <관상>에서 나는 김종서 세력과 수양대군 세력 간의 차이를 보며 예기치않게 지금을 읽었다. 그렇게 보고 있는 내가 우스웠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겐 그렇게 다가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일 뿐이다.
오늘따라 마음이 싱숭생숭하기가 이를 데 없어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집에도 읽을 책을 쌓아놓고 새로나온 책들을 뒤졌다. .......그래서 더 마음이 산만한가?
김기협의 [해방일기]가 어느새 5권과 6권까지 나왔다. 4권까지 구입해놓고 거의 읽지 못했다. 작년에 조선말 망국의 과정을 좀 살펴봤는데 올해는 내 독서가 소설 쪽으로 기울다보니 여기까지 힘이 미치지 못했다. 해방일기 연재는 이미 끝났고 김기협은 민족주의에 대해 좀더 천착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는데 그런 생각으로 이끌린 노정을 살펴보고도 싶다.
[이것을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없다, 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긴 한데, '관리되는 민주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의 유령
'이 부제이자 이 책을 요약한 한 줄인 것 같다.
한동안 정치관련 분야 책도 뜸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놓친 게 많다. 언제 맘 잡고 읽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외에 관심가는 책들
김윤식 교수가 한국문학사의 주요 장면과 문제적 개인들을 '라이벌 의식'을 통해 그려내는 글이라는데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을 엮었다.
양주동vs조윤제, 김수영vs이어령, 김윤식vs김현, 문학과지성사vs창작과비평, 김동리vs이문구vs박상륭.
대충 아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지만 김윤식이라는 개인을 통해 보는 광경은 어떨지 궁금하다.
마이클 더다의 [코난도일을 읽는 밤]을 읽다가 (그 시대의)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코난도일과 그 명예를 나눌 수 있는 작가로 러디어드 키플링을 들고 있는 걸 보고 이 사람이 누군가 했다. 그 유명한 [정글북]의 작가. [정글북]이야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나 봤던 것 같은데, 이 분이 그렇게나 대단한 분이었나 싶었다. 아, 무식.
그러다 우연히, 또, [헤겔 레스토랑] 때문에, 사놓고 몇 페이지 보다 그대로 책꽂이 행이 된 [까다로운 주체] 인덱스를 보다가 이 키플링을 또 발견했다.
지젝이 쓴 문장은 이렇다.
"(브레히트가 몹시도 흠모했던) 키플링은 자유와 정의를 지지하면서도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필요한 더러운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아무 말 없이 보수주의자들에게 기대는 영국 자유주의자들을 경멸했다."(4장 정치적 주체화와 그것의 부침, 387)
키플링이 그랬다잖아.
바로 윗부분은 이렇다.
"진정한 레닌주의자와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유주의적 좌파적'무책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연대, 자유, 등등의 거대 기획들을 지지하지만, 구체적이고 종종 '잔혹한' 정치적 조치들의 형태로 그런 기획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때 회피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처럼 진정한 레닌주의자는 행위로의 이행을,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실현하는 것의 모든 결과들을 아무리 불유쾌한 것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삼 흥미롭다. 물론 시대착오적 석기 같은 류도 나올 수 있다. 늘 위태롭고 복잡하다. 이런 책들이나 지젝의 책들을 읽으려면 번잡하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은 머리 복잡한 일이 많다.
[킴]은 노벨상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한다. 미스터리 단편집도 있는데 마이클 더다가 인정한 '천부적 이야기꾼'의 솜씨를 보고 싶다.

신형철 평론가의 북캐스트 [문학동네 채널1:문학이야기]에서 언급한 존 치버의 단편집과 손보미의 단편 등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단편이야 오다가다 한 편씩 읽을만하니까. 우리나라 신춘문예의 단편들도 보려고 한다. 요즘 등단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한달은 읽는다는 [LA컨피덴셜]은 한달을 넘겼어도 여태 반왔다. 정말 '하드hard'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가뜩이나 인물들도 많고 얽히는데 간격을 두고 읽다 중단하다를 반복하면서 오다보니 정말이지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도 헷갈리고 어떤 것과 연관되는지도 막막하여 하드 막대만 쥐고 있는 꼴이다. 끝을 볼테다.
그나저나 무슨 소설도 아니고 [헤겔 레스토랑]은 인덱스도 없이 이게 뭔 짓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