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문학쪽을 좀 뒤져보니 작가 몇 사람의 행보가 두드러져보였다. 그 중 김보영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멀리 가는 이야기]는 그녀가 2000년대에 쓴 단편과 중편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기이하게도 표제작일 것 같은 '멀리 가는 이야기'는 없다. 작품집의 제목으로 쓰인 것일 뿐. 그럼에도 SF 작가로서 초기 작품들을 모은 하나의 '유작' 작품집의 제목으로는 기막히게 좋은 제목 아닌가. 언제, 어디까지 멀리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떻게' 멀리 갈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도 하니까. 시간여행자가 되어 돌아올지 모를 시간, 장소에 동력 삼을 씨를 뿌려놓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당히 재밌다. 읽게 하는 힘이 있다. SF라는 장르를 의식하는 작가로서 인식의 지평을 개척하면서 상상력을 이야기로 조탁해내는데 힘쓴 점이 돋보인다.
클론은 나의 꿈을 꾸는가? 인간의 감각 중 하나를 봉쇄당한 세상에서 그 하나를 가진 '초인'임을 알게 됐을 때 어떠할까? 99%가 1%를 위해 사는 세상이, 더 지독해져서(?) 다른 종들인 것처럼 완전 분리된 채 살아가는 세상이란? 스카이돔과 원시촌락 같은 키바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반전을 통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우수한 유전자>.
로봇종만의 세상에서 유기생물의 탄생과 기원 연구에 드리워진 창조자들의 광기 또는 히스테리? <종의 기원>.
시간여행자로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자'의 피로감과 고독감을 지닌 시간여행자 '(예수)성하'의 스페이스 오딧세이? <미래로 가는 사람들>.
솔직히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광속이니 뭐니 물리적 설명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뭔가 장엄하고 '판타스티카'스러운 분위기를 담뿍 담은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것만은 알겠다. 우주SF, 거기다 판타지는 아직까지 좀 부담스럽다.
어쩌면 역전, 뒤집기를 통해 질문을 하면서 시작됐을지 모를 작품들을 읽으면서 뭐랄까, 전체적으로 과도한 무게감과 감탄, 놀라움, 경이로움이 과장된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 <종의 기원>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 같은데, 로봇이 녹색식물의 향연과 인간에 대해 갖는 감정은 클리셰 같았고, 거기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같은 꿈을 꾸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차라리 외설적 표현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 이게 또 케이의 파괴적 히스테리에 대해 이해시키는 중요한 요소라해도 고급스러운 장치는 아닌 것 같았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에서 초반의 발랄함이 점점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
작품 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질문에 지레, 뭔가 장엄한 느낌에 젖어 있는 SF는 재미 없지 않은가.
한국 SF작가들의 작품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어봐야겠다.
고장원은 한국 SF 작가 10인에 대한 작가론을 시작하는 모양인데(사이언스타임즈),
한낙원, 복거일, 이영수(듀나), 백민석, 김영래, 배명훈, 김보영, 박성환, 윤이형, 박민규
나는 이제 김보영의 작품집 하나 본 거다.